남궁현 사는 법

영화의 면류관

남궁Namgung 2011. 3. 4. 10:12

 

살아 계실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젊음을 농담투로 가끔 자랑하시곤 했었다. 동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항상 즐겁게 사시려고 해서서인지, 내가 보기에도 다른 친구분들에 비해 젊어보이신 편이셨다. 키도 크셨고, 몸도 홀쭉하신 편이었는데, 그런 점도 젊어 보이시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중학교 때 학교를 다녀오면, 바로 앞집에 있던 친구분 (내 친구의 아버지)네 이발소에서 염색을 하시는 것을 자주 보곤 했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바짝 뒤로 넘기시고, 혹 옷에 묻으실까 가볍게 내의 차림으로 있으시거나, 아니면 다른 천을 목에 감고 꽤 오래 계시다가 머리를 감으시곤 했었다. 사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머리가 허옇게 있었던 모습을 뵌 적이 없다. 그리고, 그때, 그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그것을 검게 하려고 염색을 하시는지도 몰랐다. 그저, "어른이면 당연히 염색을 해야 하나 보다"하고 생각했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아버지의 연세가 40대 초반부터 중반이셨는데, 그때 이미 염색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 훨씬 더 젊은 나이부터 염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아버지의 염색하시는 모습을 떠 올리면 "비교적 젊으신 나이부터 염색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몇달전부터 나의 머리 속을 우연히 보다가 아내가 나의 머리 속에서 흰 머리, 즉 흔히 말하는 새치를 찾아 내는 빈도가 늘었고, 한번 발견할 때 마다 색출되는 흰 머리들도 그 숫자가 계속 두개, 세개씩 된다. 다행, 그냥 봐도 흰머리가 보일 정도는 아니고, 내가 거울을 볼 때는 잘 찾지 못할 정도였으니,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없었던 "희귀현상"이다.

 

아... 이 어린나이(!)에 이렇게 흰 머리를 보고 있으니, 세월의 부질없음에 슬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도 그랬으니 나도 그런 것이라고 유전을 탓해야 하는 것인가. 엄청나게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나의 "과로"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한국에 있을때에 비하면 여기서의 스트레스는 거의 비교불가 정도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으니 그런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인데...

 

아내가 유빈이, 혜빈이를 낳고서부터 흰머리가 많이 생겨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된 것이 꽤 되었는데, 그때는 그냥 애들을 출산한 여성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내 머리에서 몇 가닥씩 흰머리가 나온다고 이렇게 신경쓰는 것 보면,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도, 참으로 당연스럽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고, 그에 따른 이런 저런 "증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잘난체 해도 이렇게 나이에 따른 현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 하나라면 이런 aging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람이 나이를 들면서 (대개는) 성숙해지고, 원숙해지고, 경륜이 있어지고, 지혜가 생기고, 한편으로는 약해지기도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흰머리를 더이상 새치로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듯, 자기의 몸에서 발견하는 이런 저런 "현상"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엊그제 교회 안에 앉아 우연치 않게 성경책을 뒤적이다가 이런 구절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는데, 지금 이런 생각들 때문인지 오랫동안 쳐다 보았었다.

 

Gray hair is a crown of splendor; it is attained in the way of righteousness.  (Proverbs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아마도 나처럼 흰머리가 조금씩 나면서 큰 의미를 두거나,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절망(?)하거나, 허무해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화의 면류관"이라는 다소 "큰" 단어를 쓰고 있다. 아마도 건강하고, "무사하게" 나이 든 분들에 대해서도 그 나이듦에 대해 격려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정말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 흰머리카락 몇가닥을 보고 생각하게 되고,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저런 글들이 자꾸 눈에 걸리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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