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범죄학을 공부하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당연히도) 영어로 강의를 듣고, 깨알같이 박혀 있는 수많은 페이지의 리딩자료를 읽고, 다시 영어로 과제를 제출하는 일 등, 정말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바로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 겪게 되는 생소함이었다.
처음 범죄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경찰관으로 수년 근무하면서 그래도 범죄에 대해서는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들은 것들이 많이 있었고, 그러니 내가 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자만감까지 있었다. 하지만, 일부 흉악범 개개인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문제가 개인을 범죄의 길로 이끌었는지 공부하는, 이른 바 "사회학 (sociology)"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더크하임 (Durkheim), 머튼 (Merton), 푸코 (Foucault) 와 같이 사회학계의 거장들의 고전 (classics)을 읽을 때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도 어려웠고,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많은 글들을 읽고 논의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냉소적인 생각이 들때도 많았다. 도대체, 이들의 주장을 공부하는 것이 진정 범죄를 공부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공부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아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한 학기 한 학기를 지내면서, 이 사회학적인 측면에서의 범죄 연구도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하기위해서는 당연히 사회가 어떤지 연구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니 미국 사회가 (범죄학과 관련한 측면에 있어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공부해야 했다. 그러니, 미국 사회에 대해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약간씩 이해되는 점들이 많았고, 범죄를 연구하면서 지역이나 인종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 Nature of Crime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것이 있는데, 범죄를 교수님의 전문 분야인 life course 라는 측면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살피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범죄로 이끌었고, 무엇이 범죄로부터 벗어나게 했는지를 밝히는 방법이다. 리서처에 따라 개인의 과거를 추적하는 방법 (retrospective)이 있고, 지금 시점에서부터 그 개인을 앞으로 계속 쫓아 가면서 연구하는 방법 (prospective)이 있고, 각기 장단점이 있음은 물론이다.
<학교 학사정보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MyGateway라는 시스템에는
과목별로 리딩자료를 스캔해서 올려 놓아 큰 불편없이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난 주 수업을 위해서 읽어야 할 리딩자료를 보면서, 아주 흥미로운 설명을 봤다. 그 글에서 인용한 것은 개인사를 연구하면서 한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 (satisfaction)했던 순간을 그래프로 보여준 것이었다. 리서치 방법 중의 하나를 설명하는 것인데,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40, 50, 60, 70, 80, 90 (너무 욕심인가?)세에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웠던,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돌이켜 보게 만드는 그래프였다.
<인생에서 행복 혹은 만족스러웠던 순간을 그려 본 차트>
그 자료에서도 말했듯, 그리고 개인의 과거사를 연구하는 방법의 약점이 그렇듯,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볼 때는 현재 갖고 있는 가치와 환경이 많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인 데이터라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웠던 순간도, 지금 돌이켜 생각하게 되면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미화되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주 행복했을 일도 지금 생각하면 그저 그런 것으로 기억될 수는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패턴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 나는 아직까지는 그래프의 바닥 (Rock bottom)을 칠 정도의 순간은 생각나지 않는다. 약간 하향 곡선일 것 같은 순간들도 (아직까지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위에 말한 그 리서치 약점, 즉 과거의 미화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웬만한 것은 좋게 생각하려는 나의 "물에 물탄듯"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다. 훌륭하신 부모님과 형제, 나의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 덕에 큰 고생을 하지 않은 나의 환경 탓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들에서도 내 삶의 만족도가 10점 최고치로 계속 이어지기는 힘들 수 있더라도, 간혹 이 그래프를 생각하면 삶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공부하면서 이렇게 인생까지 생각하는 기회를 주니, 범죄학 공부가 꼭 부정적인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을 돌아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런 순간들도 내 인생 만족도 그래프로에서 좀 높은 곳에 위치하는 순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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