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적들의 공격

남궁Namgung 2010. 6. 27. 11:18

 

엊그제 토마토에 물을 주려다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물을 주며, 사진도 찍어 주며 기르고 있는, 내 가든 중에서 가장 값비싼 품중인 토마토가 적들로부터 공격을 당한 것이었다.

 

제일 먼저 열매를 달고 있었던 것이 얼마전부터는 벌겋게 색이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에, '아, 이젠 저 놈들을 오가닉으로 키운 은혜를 받으려나 보다...' 했더니, 그 사이에 어떤 놈이 와서 "홀랑" 베어 먹은 것이다.

 

그것도 다 먹은 것도 아니고, 못 먹게 찔러 본 것인냥  몇 입만 베어 물었었다. 같이 붙어서 정겹게 자라고 있던 형제 토마토는 아직도 푸르른 그 빛깔이었음에도 공격을 서슴지 않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오호, 통제라!"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 먹으려고 국어 시간에 그렇게 줄치며 따라한 것 아닌가 싶다.

 

일단 누구의 소행인지 밝힐 수 없는 것이 답답하다. 인근에서 노숙하는 어떤 동물 중 한 놈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추측하기도 쉽지 않다. CCTV를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불침번 서기에는 잠이 너무 좋다. 그래서, 정말 값싼 아이디어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다른 가지들에서 하나 둘씩 열매들이 더 보이고 있는데, 저 공격을 계속 방관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듯 하다.)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는 것이 울타리를 치는 것인데, 정말로 값싼 울타리다. 뒷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놀라서 떨어지는 나이 오래된 가지들을 바베큐할 때 불 붙이 위해서 모아 놓은 것이 있었고, 작년에 이사를 하기 위해 사 놓은 하얀색 끈이 남은 것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 두가지를 혼용해서 펜스를 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비실한 가지들 중 그나마 키가 좀 큰 것을 골라, 땅에 박고, 그 주위로 그 하얀색 줄을 "엉성하고 성의없게" 둘러 놓았다.

 

 

 

 

 

재료의 빈곤함으로 인한 것도 어느 정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내가 저렇게 하면서도, "야, 이 줄 무서워서 더 이상 공격 못하는 놈들이라면, 정말 머리 나쁜 놈들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성하다. 그래도, 혹, 저 하얀색 줄을 최첨단 방범 펜스로 오인하고 접근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갖고 있는데, 그 결과는 하루 이틀 사이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엉성한 농부 밑에서 크고 있는 저 농작물이 좀 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냐... 다, 주인 잘못 만난 너희들의 업보인 것을...

 

 

 

(**후기: 저 엉성하고 값싼 아이디어는 바로 다음 날 폐기 처분되었다. 그 동물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똑똑했던 것이다. 다음 날 나가 보니, 또 다른 빨간 토마토가 비참히 공격을 당한 채로 달려 있었다. 나의 괜한 "객기"로 불쌍한 토마토 하나만 더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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