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휴일이 저물어 간다. 특별히 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유익하게 보낸 휴일이 아니었나 싶다.
낼 모레 있을 간단한 프리젠테이션 준비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애들과 영화도 보고 (도서관서 빌려 온 Iron Man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청소도 좀 하고... 암튼, 시간 잘 보냈다. 낼 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가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게 되겠지만, 이번 학기도 2-3주면 끝이 나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발표도 그렇고,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할 양 많은 페이퍼와 시험, 그리고 그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할 페이퍼 등 나머지 2주 정도를 (이번 학기 통털어 제일) 바쁘게 보내야 할 듯 싶다.
지금 막 이발을 하고 돌아 왔다. 저녁 먹기 전에 유빈이와 근처에 있는 이발소로 다녀왔다. 한국분이 하시는 이발소로, "한국 스타일"로 깎아 주시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온 이래 쭉 이 분에게 머리를 맡겼었다.
일전에 영국에 있을 때는 작은 동네인데다, 한국 분들도 많지 않아 거의 대부분의 한국분들이 집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었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큰 검정색 봉지를 뒤집어 쓰기도 하고, 다른 것을 두르기도 한 상태에서 욕실에 앉아 아내에게 머리를 맡겼었는데, "당연" 깎을 때마다 헤어스타일이 달랐었고, 다른 분들 사정도 비슷비슷했었다.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머리 모양이 익숙해지는데는 1-2주가 걸렸었고, 머리가 아주 길어 도저히 참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할 수 없이) 아내에게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런던 근처의 뉴몰든에 갈 일이 있으면 그때 한국분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반드시" 들러 머리를 깎곤 했는데, 한국 미용실에서 맛볼 수 있는 그 시원시원함과 익숙한 스탈!
이곳에서 이발사를 하시는 분은 더구나 전직 경찰관이시다. 경찰관을 수년 하시다가 다 접고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오셨다고 한다. 내가 그 이발소를 처음 갔을 때 다른 분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들으시고는, 나도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아신 후로 무척 친절하고 정답게 대해 주신다. 당신이 경찰관으로 일했을 때의 에피소드며, 수사권이라는 "웅장한" 주제서부터 그 분이 이곳에 오시기로 결정한 사연 등 마치 형제에게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주신다. 정확한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시느라 다른 분보다 좀 더 오래 시간을 들이시는 것이 아닐까 죄송스럽게 생각이 들 정도다.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좀 더 한가한 시간에 갔더니 더 친절하고 머리를 오래 만지시며, 역시 우리 "직업" 얘기를 하신다. 여기로 오신 것을 후회하지 않고 만족하신다는 말씀을 오늘도 하시는데, 하긴 그분 얼굴을 뵈면 역시 그래 보인다.
사실 그간, 학연, 지연, 혈연 같은 말은 아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는데, 조금씩 나이들면서, 조금씩 삶을 경험하면서 그런 면은 어쩔 수 없는 사회 생활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세상 물들어 가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오늘은, 같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더하게 정성을 쏟아주시는 그 분을 뵈면, 거기에 "직연"도 큰 몫을 하는 하나가 아닌가 생각도 해 봤다.
몇년이나 살았다고 이런 얘기 하기에는 한참 자격미달이겠으나, 새로운 만남의 공간이 한정되었던 "조직"을 잠시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며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또, 여기 오지 않았으면, 이런 모습이 있는지도 몰랐을 터이니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 같이 일할 때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옛 직장 동료분"을 만나고, 그 분의 따뜻함을 받으며 갖게 된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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