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남궁Namgung 2009. 11. 23. 12:25

 

이제 낙엽 긁기도 막바지다. 뒷마당을 약 2-3주 동안 그대로 놔 두었더니 발목까지 차도록 낙엽이 쌓였었다. 교회 다녀오면서 장을 다 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긁기 시작해서 좀 전에 모두 긁어서 큰 종이 봉투에 다 담았다. 큰 봉투로 10개 가까이 나오니 얼마나 많이 쌓였던 것인가. 잘은 몰라도 옆집 아줌마와 아랫집 할머니는 그 쌓인 낙엽들을 보며 한심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 한꺼번에 하는 것을 좋아하고,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스탈인데...

 

작업을 하면서 몇번이고 나무를 쳐다 봤는데, 낙엽들이 거의 다 떨어진듯 하다. 앞으로 한번, 많아야 두번 정도 더 작업을 하면 최소한 올 가을 작업은 마무리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레 짐작도 해 본다.

 

이번 주 목요일, 즉 11월 26일은 추수감사일 (Thanksgiving Day)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11월 네번째주 목요일에 지낸다고 해서, 날짜는 매해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이고, 캐나다는 10월에 추수감사일을 정해서 연휴를 지내나 보다. 미국에 처음 왔던 청교도들이 혹한기를 보내고 첫 수확에 감사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유래에는 아직도 다툼이 있다고 인터넷 자료로 올라 와 있다.

 

나와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젊은 친구 마이크는 추수감사절이, 그 이전 청교도들이 이곳 정착민 (Indian 혹은 Native American)과 사이 좋게 지냈다는 "거짓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던데, 아무튼, 그 정확한 유래가 어찌 되었든 "감사" 하기 위한 "명절"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가 추석이라는 명절을 갖고 있는 것도, (잘되었든 그렇지 않든) 가족들이 한데 모여 한해 농사에 대한 감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Jean Louis Gerome Ferris이 그렸다는 "첫 추수감사일 (The First Thanksgiving)", 출처: wikipedia.org> 

 


 

지난 해 이맘 때쯤 이곳에 쓴 내 글을 다시 읽어 봤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고마워하고 감사해 했는지 모른다. 이곳으로 오면서 준비하는 기간에도 그랬고, 이곳으로 온 첫 몇달 동안 큰 무리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모른다. 모두 가족과 이곳의 여러 좋은신 분들의 도움과 걱정, 염려 덕임은 말할 나위 없다. 

 

한편으로는, 지난 해 가졌던 감사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일전에 고맙고 감사했던 것들을 혹 지금은 내가 받아야 할 당연한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되새겨 봐야할 듯 싶다. 학교에서 받는 학비와 약간의 생활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내가 안팎으로 돕는 것을 아내됨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지, 유빈이가 학교 다니면서 공부 잘하고 생활 잘하는 것을 자식된 당연한 도리(?)라고 여기지 않는지, 혜빈이가 감기로 며칠을 앓아도 (이렇게 신종플루로 공황상태인 중인데도) 타이레놀만 먹이면서 며칠 후 깨끗하게 낫는 그 건강함에 익숙해져서 특별한 감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감사한 정도가 덜하거나 생각을 잘 안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고맙고 감사하고 혜택받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이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 우리의 안전과 행복과 성취를 위해 자나깨나 마음 써 주시고 위해 주시는 어머니, 장모님, 그리고 누나, 형 가족, 처가 형님 가족. 항상 감사한 일이다. 총각김치를 담으시고는 그것을 먹이고 싶으셔서 비싼 항공료 물으시고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그 마음, 감사할 뿐이다. 이제 팔순으로 향해 가시면서도 당신은 건강하시니, 걱정 마라시며 항상 몸 생각해서 공부하라는 장모님, 감사하다. 누나, 형, 처가 형님 가족 모두도 감사하다.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데,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공부한다고 여러 가족에게 신세지는 일이 많아 갚는 일 없이 부채만 느는 것 같아 항상 맘이 무겁고, 또 감사하다. 

 

이곳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고 있다. 특히나, 지난 여름에 이곳으로 이사하는데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 "큰 일" 치렀고, 같이 저녁을 하거나 맥주, 와인을 함께 하며 외국 생활의 애환을 함께 나눴던 여러 가족들이 있어주셔서 감사하다. 특히나, 다른 곳으로 옮기시면서 귀하게 쓰신 것들을 우리 가족 생각하고 흔쾌히 건네 주셔서 우리 가족 "삶의 질"을 높여주시기도 한 점 너무 고맙다.

 

아직도 교회가 낯선 내게 부담없이 대해 주시는 많은 주위분들에게도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로 챙겨주시지만, 특히 엊그제 B 집사님께서 빌려 주신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잔디깎이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자식 같은 우리에게 감사한 말씀 주시는 A교수님과 사모님도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다.

 

그리고도 많고 많다. 고마운 분들도 많고, 고마운 물건들도 많다. 모두 감사하다.

 

오늘 교회 주보의 목사님 글을 보니, 남과 비교하면 감사하기 어렵다는 말씀이 있던데, 절대 공감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 라는 농담투의 말도 있는데, 정말이지, 남과 비교하면 부러운 것 투성이고, 그러면 나는 지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모든 환경이 다른 나와 남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삶은, 적어도 나의 삶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많은가... 그리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건강을 갖고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늦은 저녁, 고마운 마음에 맥주 한 잔 하고 깊어가는 가을 밤을 마무리 해야겠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이 지역에 맥주 공장이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맥주 가격과는 상관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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