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이 벌써 제 아비를 닮는지 학교에서 있던 일을 잘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는 상냥하게 말도 잘하더니 크고 나서는 그렇지 않다시며 "저 놈, 변했어" 라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유빈이 놈은 벌써 변했나? 아마도 교육을 핑계로 자주 혼냈더니 그것이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곤 한다. 그래도 제 엄마가 살살 친절하게 대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그때서야 마음을 열고 잘 말하고, 나도 침대에서 재우려고 어쩌다가 불을 끄고 옆에 누워 (평소와 다르게) 상냥하게 학교 생활을 물어 보면 그럴 때는 이전에는 잘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이 놈도 분위기를 타는 것 아닌가? 쑥쓰러움이 아주 많은데, 제 부모에게도 학교 생활의 이런 저런 면을 말하는 것이 쑥쓰러워서 그런가? 아니면, 제 생각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그런가... 혹시, 정말로 어쩌다 제 부모가 혼내는 것에 상처라도 받은 것인가...
그래도 제가 필요한 것 있을 때는 꼭 말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엊그제도 이곳 학교에서 운영하는 ESOL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프로그램에서 소풍 (field trip)을 간다고 하는데, 유빈이 한테 "너도 그 프로그램을 듣느냐?"고 했더니 갈팡질팡이다.
주로 외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아직 영어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학 과정인데, 유빈이는 혼자 말하고 글 쓰는 것 봐서는 ESOL을 듣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 온지 1년 밖에 안되어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 봐서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영어공부를 하기도 할 것 같은데, 정작 제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
소풍을 가니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 하는데, 정작 부모는 얘가 ESOL에 속한지도 몰랐다니! 때늦게 학교로 전화해서 그 담당 선생님과 통화를 했더니, 유빈이 영어가 수업 듣는데는 무리가 없는 듯 해서 ESOL에 참여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 몇번은 참여했다가 그 선생님 판단으로 그만 오라고 했다 본데, 아마 유빈이도 그래서 헷갈렸나 보다.
어쨌든, 그 얘기를 들으니 와서 1년 지내면서도 이제 여기 애들과 같이 수업듣기에 큰 지장없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니 부모로서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역시 제 아빠 닮아서...) 아직 갈길이 한참 멀지만, 뭐, 부모라는 것은 자식이 목표지점에 골인하는 것에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성과마다 기쁜 것 아닐까.
유빈이가 학교에 다녀 온 후 가방을 열어 보니, 매주 금요일에 (다음 주 일주일 동안 해야할) 숙제와 함께 오늘 학교 수업에서 한 듯한 결과물을 가져왔다. 아마도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대한 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인가 본데, wizard를 wizerd로, killed를 killd로, bottom을 bottem으로 썼지만 그래도 장하다. 몇년 더하면 분명 내 영어보다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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