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어 조금 늦게 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항상 주차하던 주차장은 벌써 꽉 차 있다. 학생센터 옆의 주차장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것 같기에 이쪽으로 왔더니, 몇몇 자리는 비어있다. 다행이다. 그러지 않으면 또 주차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맬텐데... 학생센터 3층 홀에 볕좋은 자리를 잡아 컴퓨터를 켰다. 창밖을 쳐다 보니, 건물 앞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나 이리저리 헤매는 차들이 있다.
엊저녁에 수업이 좀 일찍 끝나 가방을 싸서 집으로 돌아 갔다. 집에 가서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로 유빈이 혜빈이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고 아내에게도 몇마디 묻고, 컴퓨터에 메일 확인할 것이 있어 잠시 앉아 있는 사이... 한 10분이나 되었으려나... 갑자기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다.
또 무슨 일이 벌어졌구만...
생각하면서도 별 일 아니겠거니 했더니, 유빈이 앞 잇몸에서 약간 피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앞 아랫니 두개도 흔들린다고 제가 말한다. 피는 그래도 많이 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혹시나 해서 아랫니를 가볍게 대었더니, 두개 모두 흔들린다...
순간,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흔든다. 별것 아닐 것이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만약 이를 뽑아야 하면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크지 않은 진료도 엄청 비싸다는데... 라는 부모로서 정말 쪼잔한 다양한 생각이 다 든다.
유빈이한테 물었더니, 처음에는 아빠 엄마한테 혼날것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벽에 부딪혔다고 말하더니, 몇번이고 솔직하게 말하랬더니 사실대로 말한다.
조그만 바구니에 혜빈이를 앉히고, 그 바구니에 묶여 있던 두껍지 않은 끈을 잡아 당기다가 잘 되지 않아서, 마치 제가 차력사인냥 이로 물고 당기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고, 애들이 그럴 수도 있을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때는 왜 그리 화가 나던지...
아무튼 외견상 상태가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서, 좀 지켜보기로 했다. 아내도 우리나라였으면 그냥 가까운 치과 가서 보여주고 치료를 받으면 그리 비싸지도 않고, 걱정할 일도 없는데, 심난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한다. 나도 말은 안했지만, 가장 염려하던 일, 바로 가족이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드디어 발생해서 걱정도 걱정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좀 답답했다.
뭐, 가까운 치과에 예약하고 가서 보여주고,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아주 단순한 일이겠지만, 앞에 말한대로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 단순히 병원에 가는 것 조차도 크게 고민하고 중대 결심을 해야만 하는 '가난한 유학생 부모'는 부모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애나 아내한테 미안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내는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보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나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병원을 뒤져봤다. 일전에 한국분이 하는 치과가 있다고 들어서 찾아 봤더니 북쪽에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치과가 있지만 약간 비싸고 (비싼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제값을 받는 것이지만), 옆에 붙어 있는 일리노이주에 있는 치과는 약 40분정도 가야하지만 원장님이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저렴하게 해 준다는 내용으로 이곳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에 정보가 올라 와 있다.
혹시나 해서 아내는 가까운 거리에 사시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더니, 가까운 보건소도 알려 주면서, 한국에서 치과를 운영하다가 공부하러 오신 분이 있으니 심한 것이 아니면 미리 보이고 병원에 가는 것이 어떻냐고 말하셨단다. 그래서 그분 연락처를 건네 받아 연락했더니 다행 시간이 되신다며 집으로 오셔서 봐주시겠다고 한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소아치과를 운영하셨었다는 그 여자 의사분이 잠시 후에 집으로 오셨고, 유빈이 치아 상태를 보더니 이제 이를 갈때가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신다. 유빈이 나이 또래(만 5세 반)면 이를 경우에는 벌써 새 이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그냥 나두었다가 빠지면 새 이가 나오도록 두면 된다고 하신다.
얼마나 안심되는 말씀인지... 잇몸이 약간 다치기는 했지만 잇몸은 금방 낫는 것이고, 크게 다치지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소견.
크게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고, 가까운 곳에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분은 유빈이를 봐주시고 아내와 꽤 앉아서 말씀을 나누고 가셨는데, 미국에 오신지도 6년 가까이 되셨다고 한다. 이제 새내기 유학생부부를 보니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아무튼, 정말 다행이고, 부모가 자식 이를 언제 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싶기도 하면서, '차력사 아들'을 둔 덕에 별의 별 걱정과 경험을 다 해보니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학교에 좀 늦었다. 과제며 시험이며 해야할 것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화창한 가을날,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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