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에게 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항상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종종 시도하기도 하지만 금세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고, 실제 운동을 하는 것보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는데 더 정신을 판다. 그래서 내 팔뚝이나 허벅지에 근육이 별로 붙어 있지 않듯이, 나의 글쓰기도 그저 마르고 힘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라는 것인데, 이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론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글쓰기의 실력이나 자신감에 상관없이 흰 종이에 혹은 컴퓨터의 빈 화면에서 공허하게 깜빡이는 커서를 밀어내며 무엇이라도 쓰기 시작하라는 것이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가장 첫 번째 충고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몸을 게을리한 결과로 지금 갖고 있는 몸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듯이, 보잘것 없는 글쓰기 실력은 무엇보다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글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이 지속되지 않는 것을 탓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무모한 변명이다. 재미로만 가득 차거나 전과 다른 "특별한 경험"이 지속되는 삶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지도 의심스러운 데다가, 설령 그런 삶이 있다면 재미에 정신을 팔려 글을 쓸 시간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재미가 전혀 없거나 특별한 경험이 지속되지 않는 삶 자체도 글쓰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영어로 글쓰는 일이 두배 정도는 더 힘든 것 같다. 글의 구성이나 논리의 전개 등은 한글로 글을 쓰는 것이나 영어로 쓰는 것이나 비슷한 일일 지언데, 이상하게 더 많은 시간과 공이 든다. 주위에 영어로 외국어로 사용하면서도 논문이나 다른 전문적인 글을 툭탁툭탁 잘 써내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계속 글 쓰면서 공부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지속해야 할진대 가끔 무거운 한숨이 쉬어지기도 한다.
그 와중에 어쩌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어 글로 옮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무턱대고 시작한 글이 조그만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지난 몇학기 동안 학과에서 가르쳤던 범죄지도 과목을 개설하던 과정을 옮긴 글이 그렇다.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 경험(혹은 과정) 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나름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보람도 있었기에 어떻게든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작년의 어느 날에 글로 옮기기 시작했고, 몇 주 걸려 마무리를 했다.
다행 이곳 범죄학회 뉴스레터의 부편집장에게 보낸 나의 짧은 글이 받아 들여져 The Criminologist 라는 곳에 실렸다. 대단히 저명한 논문집도 아니고 학회의 소식지와 비슷한 출판물이기에 그 비중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부지런하지 않고 큰 소질도 없으면서 이 정도의 글쓰기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랜만에 뿌듯하다.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을 글로 옮긴 계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앞서 말했듯) 특별한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도 특별한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