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Denver) 정착기

발 뻗고 자려면 닦고 기름칠!

남궁Namgung 2015. 6. 3. 08:32


방학이 시작된지도 어느덧 3주차다. 애들도 오늘부터 방학이라고 해서 반일만 갔다가 일찍 돌아 왔다. 


집 앞에 늠름히 자리하고 있는 나무는 얼마 전에 푸릇푸릇한 새잎을 내었다가 철없이 내린 눈과 한파로 모두 죽어 버렸었다. 설마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겠지... 하고 걱정했더니 다행이 며칠 전부터 다시 싹이 나고 있다. 벌써 6월인데 올해는 얼마나 오래 푸른 잎을 달고 있을지 모르겠다. 



방학 시작하기 전부터 세운 계획이 몇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지하에 임시방편으로 막아 놓은 파이프를 고치는 것이었다.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놓아 둘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파이프는 집 안의 주된 물 파이프에서 빠져나온 "가지 파이프(?)"로 집 뒤로 빠져 데크 쪽에 있는 수도꼭지와 연결되어 있다. 


여름에는 집 뒷뜰에 물을 쓸이 잦기 때문에 꼭 고쳐야하는 것이긴 했는데, 부품을 사서 지하로 내려가 다시 집 마루 바닥 밑으로 나 있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 작업할 생각에 선뜻 내키지 않아 이렇게 늦게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여간 일을 시작하기가 귀찮았다. 며칠째 "내일하자, 내일하자..." 미루었듯이 또 내일할까 생각을 하다가 며칠 후 여행 계획이 있는데다가 물을 잠궈야 하니 애들이 없을 때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애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일을 시작했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 상태를 확인하고, 어떻게 다시 연결할지 디자인을 고안하고 집에서 차로 3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로이스 (Lowes')에 가서 몇몇 부품을 사왔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생각한 예상 작업 시간은 최장 1시간. 


허나, 그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 세시간 넘게 걸려서도 완성을 못하고, 점심을 먹고난 후에도 한시간 정도 더 투자해서 마칠 수 있었다. 


이전의 것보다 좀 더 세련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중간에 스위치를 넣으려고 계획했던 것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일전에 파이프가 터졌던 것은 밖에서부터 물이 얼은 것이라는 판단하에 중간에 스위치를 넣고 겨울이 다가오면 밖으로 물을 잠글 수 있게 하려는, 아주 핸디맨 다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 같은 "초짜 핸디맨"의 창의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설치를 해서 접착제까지 모두 마른 후에 물을 켜면 자꾸 한쪽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두번이나 그러는 바람에 로이스를 아침에만 세번을 왔다갔다 했고, 결국 그 같은 계획은 철회하고 원래 있던대로만 설치해야 했다. 


<저렇게 중간에 스위치를 달아서 겨울에는 물을 잠그게 한다는 것은 내 스스로 생각할 때 정말 대견할 정도로 좋은 생각이었는데... 

결국에는 모두 잘라내야했다.>



<결국에는 원래와 거의 비슷하게 달아 놓았다. 이제는 누가 부탁해도 간단한 것은 처리해 줄 수 있을 정도의 노하우(?)가 생겼다. 

뒤로 나오는 파이프를 뒷뜰 잔디에 물을 주거나 데크를 청소하거나, 애들 물장난 할때 등 여름에 쓰는 일이 많다.>


아직도 그 실패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전대로라도 작동이 되게 해 놨으니 다행이다. 뒤 데크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왜 그리 시원하고 강력해(?) 보이는지... 


일을 시작한 김에 겨울 동안 잠가 놓았던 스프링클러 파이프에도 물을 채웠다. 이것도 벌써부터 작동시켜서 물을 줬어야 잔디가 좀 더 푸릇푸릇 했을텐데, 저 파이프 작업을 한 후에 같이 시작하겠다는 게으른 생각에 오늘에서야 물을 켰다. 


스프링클러로 나가는 파이프도 지하에 있어서 그것을 틀어줘야 하는데, 물을 틀어 놓고 차고에 있는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아무리 작동 시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 손잡이를 이쪽으로도 해 보고, 저쪽으로도 해 보고, 집 옆쪽에 붙어 있는 이런 저런 손잡이도 모든 경우의 수를 살려 작동시키려 해도 도대체가 물이 나오지 않는다. 


작년 가을에 전문가가 와서 파이프의 물을 모두 뺄 때 별다른 조치를 해 놓은 것 같지 않은데, 왜 일까... 왜 일까... 지하실과 차고, 집 옆에 설치된 파이프 손잡이 등 이 세곳을 계속 왔다 갔다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혹시 해서 지하에 다시 내려가 손잡이를 틀었더니... "쏴악..." 하면서 빈 파이프로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세게 잠겨져 있는 손잡이를 완전히 개방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왼쪽 것이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메인파이프이고, 오른쪽이 집안으로 왔던 수도가 다시 밖의 스프링클러로 나가는 파이프>


<그래도 한번 배워 놓으면 매년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 다행이다. 

왼쪽에 아래 위로 두개의 부속(이름을 모르겠다)이 달려 있는데, 위의 것이 좀 낡아서 고체했다>

생각난 김에 집 옆쪽에 붙어 있는 스피링클러 시스템(?)의 오래된 부속도 사와서 교체했고, 그간 한번도 주지 않았던 잔디 비료도 사와서 줬다. 


<잔디에도 비료(fertilizer)를 주는지 몰랐다. 얼마 전에 지인과 얘기하다가 비료를 주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오늘 부품을 사러 나간 김에 중간 정도 사이즈의 비료를 사와서 저녁에 뿌려 주었다.>


옆으로 난 풀이 많아 저것들도 모두 뽑거나 약을 뿌려야 하는데... 정말이지 집안 일은 끝이 없다.


한두개 둑탁거려서 뭔가를 고치거나 설치해 놓으면 또 다른 곳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기니 집안 일에 자신감이 생기려다가도 오늘 같은 일을 겪고 나면 또 다시 겸손(?)해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어떻게든 일을 처리한 후에 이전과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서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오늘처럼 부단히 고치고 기름칠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같은 말 달리 표현하자면, 계속 손보고 고쳐야 내 집에 편안히 발뻗고 잘 수 있다. 


오늘도 이렇게 아주 평범한 진리를 아주 힘들게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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