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배운" 팝송은 비틀즈의 Yesterday였다. (음악적인 것보다는 영어를 배우기 위함으로 들었으니, 배웠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던 영어 교과서에 악보와 영어 가사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골 촌놈이라 팝송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비틀즈가 대단히 유명한 밴드였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 노래를 어디서 구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교과서에 있는 영어 가사를 보면서 가사를 거의 외울 정도로 듣고 들었던 것은 기억한다.
한번은 당시 국어 선생님께서 야외 수업을 한다고 우리 반 애들과 함께 학교 뒷동산에 올라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 노래를 배운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내게 그 노래를 시키셔서 선생님 앞에서 그 노래를 불렀던 기억도 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노래 중에도 그와 비슷한 감성이 있는 노래를 알려주셨는데 무엇인지는 잊었다. 아마 양희은 씨의 어떤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팝송을 손대기(?) 시작해서 비틀즈의 노래를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었고, 1990년대 초반을 떠들썩하게 하던 New Kids on the Block의 노래 테이프도 사서 참 많이 들었었다.
특히, 고 2, 고 3때는 머라이어 캐리에 푹 빠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와 함께했던 시기였다. 잘은 몰라도 그 당시가 머라이어캐리의 황금기이기도 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황금기이기도 했나? ㅎㅎ)
당시 부여 읍내에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머라이어캐리의 테이프를 사서 들었었다.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노래 테이프에는 양쪽 면에 노래 제목을 붙여 놓은 작은 스티커가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조그만 공간에 "넌 할 수 있어!" "꿈을 향하여..." 등등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찬란한 그런 나의 다짐들을 적어 놓고 테이프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카세트에서 꺼낼때마다 보곤 했었다. (지금은 머라이어캐리의 목소리가 "맛이 갔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한때 조용한 열렬팬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긴...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대학 입학을 기다릴 때 들었던 음악 중 기억나는 것은 단연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었다. 그때 나와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았던 친구와 함께 여기 저기 놀러 다니던 기억들...
그런데, 웬걸 대학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 치르던 그 훈련기간 동안에 들었던 음악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다. 아침에 일조점호를 위해 학생들을 깨웠던 음악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은 지금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정도로 지겨웠었다.
그리고, 대학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들은 얼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것들과 많이 겹친다. 그 중, 김광석의 여러 노래들, 우연히 알게 된 개리 무어 (Gary Moore)의 몇몇 음악들은 그 시절 나의 대표 음악 중 몇몇 것들이었다.
요즘에는 넷플릭스 (Netflix)에서 다큐멘터리를 종종 보곤 한다. (인터넷 등을 통해 동영상을 많이 시청하는 단어로 빈지 와칭 (binge watching)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었고, 이젠 이 단어가 사전에 정식으로 등록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빈지 와처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 (주로 범죄나 사회 문제 등)의 다큐 중 사용자들의 평이 좋은 것 (별 네개 이상)을 골라서 무작위로 시청하더라도 괜찮은 작품을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어제 저녁에는 "얼라이브 인사이드 (Alive Inside)" 라는 제목의 것을 봤다.
시청자들의 소감을 적은 평가에서 아주 괜찮다는 내용이 많아서 일찍 잠자기 전에 하나 보았는데...
간만에 정말 대단한 작품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노인들이 말년을 보내는 요양원 (nursing home)의 문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음악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주는 다큐였다.
어느 흑인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에 대한 기억이 있냐는 질문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나, 그 노인이 젊었을 때 즐겨 듣던 노래를 들려 주자 폭포수 떨어지듯 오래 전 기억을 쏟아내는, 정말 기적같은 장면도 있다. 역시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들도 당신들이 청춘일 때 좋아하던 노래를 헤드폰을 통해 듣자 치매 환자의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말 경이로운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치매환자에게 음악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음악과 관련된 경험이 저장되는 뇌는 치매의 영향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음악이 무엇이길래, 저 같은 놀라운 일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앨범 속에서 사진을 보거나 과거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단지 어렸을 적 들었던 음악을 우연히 듣고서 과거를 떠올리는 일도 적지 않다. "응답하라 1994" 속의 20년 전 유행가를 들을 때는 단지 그 음악만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그 음악 속에 있었던 20년전의 나를 같이 회상하게 되었던 것은 비단 나 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위에서 말한 비틀즈의 Yesterday란 노래를 찾아 들으면서 당시 국어 선생님과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점이다. 최근 몇년 동안 아니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한번도 그 경험을 돌이켰던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노래를 듣다가 퍼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에릭클랩튼의 노래를 듣다가도 당시 아주 친했던 (성은 다르지만 나와 이름이 같았던) 친구네 집에서 놀던 기억도 생각나고...
음악을 연구하는 그 학자들의 주장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경험은 경험대로 뇌에 따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나의 경험 (혹은 일상)이 한 묶음으로 같이 붙여져서 뇌의 구석구석에 저장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부러, 억지로 쥐어 짜내려고 하면 고 3때 짝사랑하던 여선생님께 매일 같이 편지쓰던 기억, 대학때 일없이 대전 지하상가를 친구들과 방황하던 일, 제주도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 두려움 없이 지내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 당시 듣던 음악 몇소절만 들어도 그 당시의 쐬었던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바람을 기억해 낼 수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지금 나는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가? 10년 후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할 음악은 무엇이 있을까...
5년, 10년, 아니 20년, 30년 후에 누군가 혹은 어디에선가 첼로로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를 연주하는 것을 듣는다면, 지금 위층에서 며칠 후 있을 교회 발표 때문에 같은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6학년인 유빈이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고, 네 식구가 찬 겨울 속에서도 히터로 덥혀지는 이 작은 집에서 오순도순, 옹기종기 살면서 저 음악을 "할 수 없이(?)" 듣던 2014년 이 겨울을 기억할 것 같다.
'남궁현 사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서양이 나를 부른다! (0) | 2015.03.05 |
---|---|
심심한 하루에의 감사 (0) | 2015.01.07 |
나쁜 학생 (0) | 2014.12.17 |
New Office (0) | 2014.12.17 |
San Francisco 2014 (0) | 201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