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아버지와 나, 나와 아들

남궁Namgung 2013. 4. 2. 04:52


아마도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와 함께 부여에서 가까운 논산에 가서 컴퓨터를 사 왔던 기억이 엊그제부터 머리 속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님을 얼마나 졸랐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부여에서도 구입할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논산까지 갔었다. 


돌아 올 때는 그 전자제품 가게의 조그만 트럭에 컴퓨터를 싣고, 기사 아저씨와 아버지, 그리고 나 셋이서 트럭의 앞자리에 앉아 집에까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150만원 혹은 200만원 가까이 되는 정말 고가의 컴퓨터였으니 그 전자제품 가게에서 직접 배달을 해 준 것이었고, 기사 아저씨가 내 방 책상 위에 설치를 모두 해 놓고 가셨던 것 같다. 


80년대 후반 정도였으니 150만원정도라고 해도 (우리 집 형편에는) 정말 비싼 것이었다. 지금에야 부모님이 사 주신 그 컴퓨터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에 대한 놀라움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내가 갖고 싶은 컴퓨터를 드디어 "획득"했다는 기쁨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MS 윈도우니 맥과 같은 기본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기도 전이었고, 마우스라는 것도 없었다. BASIC이니 하는 어려운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서 작업을 해야 했던 것 같다. 아마 컴퓨터를 구입하고 한달 정도는 부여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했는데, 그마저도 시들해져서 금새 그만 두었고, 그 고가의 컴퓨터는 내가 심심할때 게임이나 하는 덩치 큰 게임기로 변했다. 


그 후에 그 컴퓨터를 어떻게 처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계속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면서는 아예 관심도 없어져 부모님께 어디에 두셨는지,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여쭤 보지도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당시 내가 썼던 것과 거의 비슷 (혹은 동일)한 컴퓨터의 사진을 구할 수가 있다. 

모니터 밑의 본체는 두개가 아니라 하나였을 것이다.>*



왜 갑자기 그 기억이 떠 올랐는지 모르겠다. 당시의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무뚝뚝하셨고, 아들들과 대화하는 일이 많지 않으셨다. 약주 한잔이나 걸치셔야 기분 좋으셔서 가끔 농담을 던지시곤 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종종 나곤 한다. 젊으신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대단히 안타깝기도 하고, 어머니, 누나 형, 그리고 손자들과도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신 것이 한이 되기도 해서일지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 그렇게 크게 보였던 아버지. 


그 당시의 그 아버지 나이에 내가 다가 가면서 그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이셨을까, 그때 아버지는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까, 얼마나 삶이 녹녹치 않으셨을까 하는, 아버지로서의 "공감"이 요즘들어 부쩍 늘어나서가 아닌가 싶다. 


유빈이가 뭔가를 사달라고, 뭔가를 해 달라고 졸라댈때 마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매몰차게 혼내면서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해 보면 큰 검정색 대우 컴퓨터를 책상에 올려 놓을 수 있었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들이었는지 이제사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지 못하는 나의 저 아들은 나중에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와 함께 했던 것 들 중 어떤 기억을 갖게 될지도 사뭇 궁금하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시험에 나올 것이라는 예상 문제라서 억지로 공부하게 된 그 한자 숙어가 이제는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니, 나는 이제사 조금씩 철이 드는 것이다.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불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불대) 자식은 보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 노계(蘆溪) 박인로









*이미지 출처: http://bbs2-api.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hobby/312/read?articleId=8243143&bbsId=G005&itemId=110&pageIndex=22>

'남궁현 사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벤트  (0) 2013.04.11
경찰관이 아닌 삶  (0) 2013.04.06
선택 2013  (0) 2013.04.01
Memphis  (0) 2013.03.24
Dallas Fort Worth  (0) 201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