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SL 얘기

"잘 돼야 될텐데..."

남궁Namgung 2010. 2. 1. 11:01

어... 하다 보니 또 1월이 벌써 지났다. 올해의 시간도 예전과 같은 주행속도로 브레이크 없이 계속 앞으로만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학기가 시작된지도 2주나 흘렀다. 뭐, 첫주야 대개 과정 소개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두번째 시간까지도 서서히 페달 밟으려는 시간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Qualitative Research 시간이 아무래도 만만치 않음을 절감하기도 했다. 이 수업은 다운타운에 있는 한 마약 치료소의 치료대상자들을 상대로한 인터뷰를 실시하고,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해서 페이퍼를 써 내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즉, 한 학기 자체가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고, 약 10여명의 학생들 (거의 Ph.D과정생)이 각자의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맞게 세명을 대상으로 세건의 인터뷰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화요일 수업은 그 프로젝트 진행의 인트로 시간으로, 그 기관을 방문해서 책임자를 만나 기관과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었다. 예기치 않게 전날 과음을 해야만 했기에(??)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다가, qualitative research 방법론 자체가 설명을 하는 거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고, 질문을 하고, 다시 대답을 적고, 돌아 와서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날 설명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이기도 했다.

 

 

<학업계획서 (syllabus) 중 그날에 해당하는 내용 부분.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 것인지 흥미 진진해지겠다>

 

미리 조그만 테잎 리코더를 가져가서 의자 밑에 놓고, 녹음을 하는 동시에 앞에서 그 기관 소장 (director)과 부소장 (assistant director)이 말하는 것을 부지런히 적는다고 적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내 리스닝이 완벽한지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 들면서, 과음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 오면서, 갑자기 리코더에 의지하고만 싶어졌다.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둘러 보니 나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조금씩 집중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받아쓰는 내용들도 적어 지는 것이 눈에 확 띈다. (당연히 '휴... 다행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집에 돌아 오는 차에서 그 테잎 리코더를 들어 보니... 아뿔싸! 녹음 상태가 "완전 꽝"인 상태다.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내 리스닝 실력을 떠나서 테잎 돌아 가는 소리가 녹음된 소리보다 더 크게 되어있다. 어쩔씨고, 저쩔씨고 고민하며 집에 왔고, 그때 받아 적을 것을 보니, '완성도 있는 과제'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고민 끝에, 나랑 친하면서 착하기도 한 티파니 (Tiffany)라는 흑인 여자애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부탁했더니 친절히도 자기가 받아 적은 것을 정리하면 참고하도록 보여준다고 한다. 고맙기도 하지... 그 전에 내가 받아 적어 온 노트를 바탕으로 필드노트 (fieldnotes)를 쭉 정리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또 나름대로 앞뒤 말이 맞으면서, (내가 보기에는) 그냥 봐줄만 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데드라인이던 엊그제 금요일, 티파니가 보내준 내용과 내가 적은 것을 비교해 보니 몇몇 부분 내가 놓친 부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선방"한 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한 건의 숙제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고,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찾아서 분석해야 하는 앞으로의 과제들이 좀 부담된다. 더구나, 기관의 특성상 마약과 관련된 문화나 속어 (slang)들이 많을 것이고, 그러려면 이 사회에서 그들이 겪었을 과정들을 적어도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 없이 과연 그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뭔가를 꼬집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또, 흑인들의 많이 쓰는 그들의 영어는 아주 독특한 억양을 갖고 있어서, 알아 듣기 어려운 경험을 아주 많이 했었는데, 내 인터뷰 대상자가 흑인이 된다면 (거의 그러겠지만) 그들과의 대화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도 부담되는 면이다.

 

하지만, 이전까지 그랬듯, 어떻게든 헤쳐나가지 않겠느냐는 낙관 (혹은 자조, 방관)적인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이전에 내가 가졌던 '편견'과는 달리 qualitative research도 상당히 매력적인 조사 방법이라는 것을 이런 저런 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고, 더구나 막연하게 이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나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공부하는 것이라 기대가 되는 면도 있다.

 

 

몇십년된 유머, 이제 고인이 된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유행시켰던, 그 유머가 갑자기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잘 돼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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