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말한다

토인 대통령?

남궁Namgung 2008. 10. 30. 23:46

 

 

때마침 미국으로 온 올 해에 미국에서 대선이 펼쳐지고 있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비교적 가까이 볼 수 있는 행운이라면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래봐야 뉴스, 신문을 보는 것이 전부고, 유세에 참가한다던가, 후보를 멀찌감치서라도 볼 수 있다던가 하는 일은 아예 없다. 그래도 신문, 뉴스를 가까이서 내가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개인적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는 주요 정당에서 흑인 후보를 처음으로 배출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당선 확률이 아주 높은 상태이다.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물론, 흑인 후보라고 하지만 하버드 법대를 나오고 로스쿨 교수까지 했던 고학력 소지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머리 속에 갖고 있는 평범한 흑인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노예제도를 금지하는 수정헌법(1865년)과 제도적으로 흑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1964년)이 생긴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젠 흑인 대통령을 준비하고 있다. (엄마가 백인이었는데, 그래도 흑인이라고 부른다. 전문적으로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양 부모 중 한명이라도 흑인이었으면 얘네들은 흑인이라고 구분짓나 보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24"의 초반기 시즌에 대통령 역으로 흑인이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모건 프리먼인가...하는 배우가 대통령 역할을 했던 영화가 있었기는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 일부 언론에서 미국이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식의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진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race)은 인종(race)에 관한 것인가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단지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능력을 많이 소지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가 흑인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분명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흑인을 "토인"이라고 하신다. 어떤 혼열 여가수가 나오면 "그애는 토인인데도 노래를 잘해..."라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물론 어머니 세대에서는 그 단어에 어떤 인종차별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시는 분은 별로 없으실 것이고, 단지 그 세대의 일부에서는 흑인을 "토인"이라고 불렀을 뿐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세대도 피부색이 다른 것을 적어도 호칭으로나마 차별했던 것 같다. 친한 친구 놈 중 피부색이 까만했던 그 놈의 어렸을 적 별명 중 하는 "토인"이었고, 지금도 자주 "깜딩이"라고 불린다. 어렸을 적에 주위에서 흑인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우리였는데도 단지 피부색만을 보고 그렇게 놀린 것을 보면 겉이 다르다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 듣고 있는 과목 중의 하나가 범죄학 이론 과목인데, 미국에서 발전한 많은 범죄학 이론들중 상당수가 바로 이 흑인들에게 유독 많이 발생하고 있는 범죄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것이다. 지역(neighborhood)에 문제가 있다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다거나, 혹은 스트레스(strain)나 가진자들의 낙인(labeling)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범죄의 원인을 따지고 있다. 지금까지 듣고 배우고 한 나의 미천한 의견으로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시행되었던 차별적인 정책(segregation)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만약 흑인 자체가 인종적으로 범죄나 다른 문제를 많이 갖는다면 지금 잘나가는 저 대통령 후보나, 다른 유명 연예인과 교수들도 모두 그래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웬만한 다른 인종들보다 더 능력있고, 더 인정받고 있다. 노예제 폐지 후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행되었던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흑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나 일할 수 있는 기회 등이 박탈되면서 범죄의 온상이 된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미국이 (범죄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높은 범죄율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이 반인륜적인 노예제를 시행했던 그 역사적 대가를 치르는 것 아닌가 하는 어설픈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인종, 생김새 등으로 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논하던 아주 오래 전 학자들의 논리는 이제 범죄학에서 잘 논하지 않는 것은 인종이 범죄나 다른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같은 인종이더라도 국가나 민족에 따라 약간씩 다른 성향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어떻다", "일본인은 이렇다", "영국인은 이렇지만 프랑스인은 저렇다"라는 등의 평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평가이다. 하지만 흑인은 이렇다, 아시안은 저렇다 하는 식의 평가는 전형적인 인종차별적(racist) 발언일 것이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미녀들의 수다"라는 텔레비젼 프로에 어떤 흑인 여성이 나와서 한국 학생들로부터 들었던 모욕적인 발언을 소개하며 눈물 지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발언이 얼마나 창피하고 화가 나는 일인지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간혹 당하는 무시와 차별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욕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 특히 앵글로 색슨족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끼리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백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 당하는 흑인들조차도 아시안들을 무시한다고...

 

세계가 좁아진지는 오래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제 전 세계 어디 살고 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결혼과 직업 등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다.

 

제발 얼굴색이 다르다고 사람 차별하는,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피부색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있고, 다른 사람도 나를 내 피부색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당연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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