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찰 생각
레이와의 동행기 7
남궁Namgung
2004. 4. 28. 01:40
안녕하신지요?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됩니다. 그간 모두 건강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저와 여기에 있는 식구 모두 건강히 있습니다. 이제 돌아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 천천히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도 하고, 걱정(?)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 와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사는 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로 정리해 볼까 생각중인데,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바쁘고 분주하고 힘들게 살던 생활과는 크게 비교되는 것이어서 제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쨌든 시간은 빨리 흘러 제가 이곳에 온지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내 배속에 들어 왔던 제 아들은 이제 제 맘 대로 뛰어 다니고, 웬만한 의사 표현은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시간이 빠르다고 그 푸념만 하지 말고, 시간을 쥐어 잡고 살자는 생각도 자주 하는 편인데, 화살 같이 빠른 시간에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레이와 다니면서 겪었던 점에 대한 글입니다. 다시 분주히 글을 써 보자고 다짐하면서 오늘 글을 발행해 봅니다.
건강하세요. 또 뵙겠습니다.
이메일 (hyonyya@korea.com)
홈페이지 (http://hyonyya.netian.com)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 (2004. 4. 23.-25.)까지 2박 3일 동안에 마약과 알콜에 대해 피어 에듀케이션 (peer education)을 하고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수련회 (residential experience)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이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기에 우선 배경 설명부터 간단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주 (County)인 데본 카운티 (Devon County)에서는 작년 초, 정확히는 2003년 4월 1일 열린 전체 주를 상대로 ‘알콜과 청소년 (Alcohol and Young People)'이라는 주제로 회의가 열렸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제가 레이와 같이 일하던 때가 아니어서 그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회의 자료와 그 후의 몇몇 문서들에 의하면 그 회의는 데본의 마약 활동 팀 (Devon Drug Action Team)에 의해 열린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회의 이후 데본의 각 지역은 그 지역의 실정에 맞추어서 청소년을 상대로 알콜 관련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했는데, 레이가 일하고 있는 데본 중부지역 (Mid Devon)에서는 피어 에듀케이션 (Peer Education)의 방법을 사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피어 에듀케이션 (Peer Education)이라는 전문 용어를 교육 분야에서는 어떻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네이버 (www.naver.com)에서 간단히 검색해 보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어 피어 에듀케이션이라고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피어 에듀케이션의 피어 (peer)는 잘 아시는대로 친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피어 에듀케이션은 친구들이 친구를 가르치는 교육 방법을 말합니다. 즉, 전문 교육자나 강사, 교사 등이 특정 분야에 대해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청소년들에게 정보, 지식 등을 가르치면 그 청소년들이 피어 에듀케이터 (peer educator)가 되어 자신과 같은 다른 청소년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피어 에듀케이션은 그 기원이 1800년대의 영국 (정확히는 England)이고, 이런 교육 방법을 하게 된 주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상대로 전문적인 교육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중 몇몇의 구성원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고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피어 에듀케이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실시해서 다시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미국에서는 피어 에듀케이션이라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경우 교육을 하는 청소년 (peer educator)이나 교육을 받는 청소년 모두에게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연령차가 큰 성년 교육자 보다는 자신들과 동년배의 청소년들로부터 받는 교육은 그 거부감이 적고 친근감이 크며, 특히 교육을 하게 되는 학생들은 자신감이나 발표 능력 등에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런 교육 방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영국 더 넓게는 유럽에서 이와 같은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에이즈 (AIDS)나 성 (Sex), 그리고 흡연과 알콜, 마약 등 건강과 관련된 주제의 교육에 이와 같은 피어 에듀케이션이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제 전문 분야도 아닌데, 제가 소개해 드리려는 내용을 설명하려다 보니 어쩔수 없이 주제 넘는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미드 데본 지역에서 알콜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우선 1,000파운드 (200만원 가량) 가량의 자금이 지원되었고,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피어 에듀케이션이라는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드 데본 지역의 5개 고등학교 (우리나라의 중학교 정도 나이)에서 37명의 학생이 선발되어 피어 에듀케이터가 되었습니다.
이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단합하기 위한 첫 수련회 (residential weekend)가 작년 10월 24일 금요일부터 26일 일요일까지 2박 3일 동안 브릭스햄 (Brixham)이라는 곳에서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약 40분정도 떨어진 해안도시입니다.
레이가 같이 가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흔쾌히 간다고 했지만 실제 그곳에 가서는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었습니다. 저만 빼고 모두 화이트, 앵글로색슨, 잉글리쉬인 사람들 속에서 저 혼자 지내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고,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 동안 김치 같은 우리 음식 먹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이곳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본,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그 수련회는 앞으로 피어 에듀케이터가 될 학생들에게 알콜과 마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또 카누 (canoe)와 절벽 타기 (abseiling), 요트 타기 (yachting) 등의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두가지 효과를 노린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기회에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카누, 절벽 타기를 해 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같이 절벽타기를 했던 학생들입니다.>

<제가 절벽 타기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당시 수업 시간입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모든 학생들이 그 수련회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화재 발생시 대피하는 요령과 대피 통로를 설명해 주고, 실제로 경고음을 울려 그 통로 그대로 따라서 모임 장소 (collection point)에 모두 집결하는 것을 직접 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화재 발생시 대피하는 방법은 제가 레이와 함께 다녔던 모든 회의에서 전부 설명해 주곤 했었습니다.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회의에서는 직접 대피 훈련까지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회의 시작 전에 항상 설명해 주는 것은 화재 경고음이 울렸을 경우 대비 경로와 모임 장소, 그리고 화장실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한 것은 숙소에서 지켜야 할 규칙 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규칙도 어른이 정한 규칙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 학생들에게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어떻게 설정해야할지 의견을 물어 그것을 규칙으로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참여하는 성인들을 상대로 한 사전 가이드라인 설정은 그 전에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같이 정했던 규칙으로 벽에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제가 제 분야가 아닌 피어 에듀케이션과 다른 세부 절차 등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요즘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이 일하게 된 것은 계기로 레이는 제게 그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이해 관계인이 아니니 독자적인 평가 보고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해서 제가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피어 에듀케이션과 관계된 많은 자료를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영국과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 이런 교육 방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집을 떠나 밖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수련회라는 방법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 권장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학생들입니다.>
수련회 장소는 엑시터에서 가까운 다트무어 국립공원 (Dartmoor National Park) 안에 있는 수련원이었습니다. 이곳 주정부 (County Council)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인데, 다른 수련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고, 가격은 둘째치더라도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도 교육 프로그램과 야외 활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야외 활동인 마운틴 바이킹 (mountain biking)과 동굴 타기 (caving)를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마약을 다루는 기관 (Drug Action Team)의 직원 둘이 나와 청소년들에게 마약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인체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밖에서 마약과 관련한 수업 중인 학생들입니다.>

<같이 마운틴 바이킹 하던 (뒷)모습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와 같은 수련회의 프로그램이 지금도 다양한 행태로 이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명 그와 같은 수련회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제 성장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대부분 긍정적인 영향이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이곳 청소년들의 수련회와 우리의 수련회의 차이점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우선 우리는 안전에 대한 장치가 너무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간단히 말씀드렸던 화재시의 대피 방법이나 다른 안전과 관련된 측면에 우리는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수련회의 화재에서 참사를 당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이 아닌 것을 보면 지금도 그리 낙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 설정에 있어서 교육과 야외 활동에 대한 균형이 잘 조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수련회건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그 내실에 있어서 얼마나 청소년들을 위한 것인지, 야외 활동의 전문가가 직접 참여해서 교육하는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충분한 성인이 참여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더 노력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프로그램은 한 두번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고 앞으로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피어 에듀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좀더 성장하면 다른 피어 에듀케이터들을 상대로 피어 에듀케이션을 하게 되고, 이와 같은 선순환이 계속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학생들은 각 학교에서 주로 자기 보다 저학년의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과 알콜에 대한 발표를 교실에서 하기도 했고, 드라마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드라마와 관련된 연극 발표도 했으며, 비디오로 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 직접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발표 능력, 대화 능력, 부수적인 기술등을 습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기간 동안 청소년에 대한 문제에 무관심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특히 레이와 같이 동행을 하며 보고 듣는 중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직 한국의 실정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청소년 문제와 그 해결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으리라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제 아들을 키우면서 접하는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이곳의 제도와 비교하게 되는 일이 많으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