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찰 생각
레이와의 동행기 5
남궁Namgung
2004. 3. 16. 06:50
안녕하셨습니까? 별로 안녕하시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라가 뒤숭숭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쭙지 않은 제 생각을 여기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항상 어려움을 헤쳐 나왔듯이 이번에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되어서, 그 수치스러운 일이 앞으로의 더 큰 전진을 위한 ‘작은’ 후퇴였기를 바랍니다.
여기는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을 제외하고는 겨울 동안에도 그리 춥지 않았기 때문에 봄이 찾아 온다는 사실이 크게 반갑거나 실감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많은 꽃나무들이 활짝 펴지는 날에는 카메라 들고 가족들과 같이 산책이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건강하세요. 또 뵙겠습니다.
이메일 (hyonyya@korea.com)
홈페이지 (http://hyonyya.netian.com)
이곳에서 자가용으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브리스톨 (Bristol)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보다는 꽤 큰 항구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지난 주 목요일 (2004. 3. 11.)에 회의 (Conference)가 있어 레이와 함께 갔습니다.
회의의 주제는 'Young People and Crime Seminar For Crime and Disorder Reduction Partnership'입니다. 꽤 거창한 주제지만, 짧게 설명하면 청소년과 그들의 범죄 감소를 위한 회의였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엑시터에 있는 데본, 콘월 경찰청 (Devon and Cornwall Constabulary) 앞에서 만나기로 미리 레이와 약속을 했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레이를 만났습니다.
레이의 차로 브리스톨 내의 회의 장소인 노보텔 (Novotel)이라는 호텔로 갔습니다. 약 2주 전쯤에 미리 회의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이 전달되었었고, 저도 레이로부터 그 내용을 받아 봤었기 때문에 대체적인 회의의 내용이나 진행 방식은 알고 있었습니다.
10시부터 공식적인 회의가 시작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고, 호텔 1층의 한 켠에 자리 잡은 회의실 안에는 미리 도착한 주최 측의 직원들이 회의장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의실 앞 복도에는 길게 탁자를 세워 놓고 그 위에 이곳 내무부 (Home Office)에서 발간한 청소년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놓아 두었습니다. 관심 있는 자료는 필요한대로 가져 가도 좋다는 것이었는데, 그 덕에 저는 아주 많은 자료를 (그것도 무료로) 가져 올 수 있었습니다. 아주 유익해 보이는 것들이 많았고, 특히 연구물 (research paper)과 다른 범죄 관련 자료는 특히 좋았습니다.
레이도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탁자 한 켠에 미리 걸려 있던 비닐 가방에 넣었고, 저도 그 위에 진열된 거의 모든 것을 하나씩 가방에 흐뭇하게 집어 넣었습니다.
회의는 정부의 남서부 지역 사무소 (Government Office South West)에서 마련한 것이었고, 내용적인 면은 내무부의 범죄 감소 센터 (Home Office Crime Reduction Centre)에서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회의의 참가자들은 레이와 같이 현직 경찰관이거나, 경찰은 아니지만 범죄 감소를 위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지방 정부 기관에서 참석한 사람들도 참가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회의때 사용한 회의 서류가 든 파일입니다.>
오전 10시에 정부 남서부 지역 사무소장의 인사로 시작된 회의는 오후 네시까지 이어졌고, 첫 연설은 ‘청소년 범죄에서의 예방적 전략 (Preventative Strategies in Youth Crime)'이라는 제목으로 ’청소년 사법국 (Youth Justice Board)'의 한 간부가 나와서 길지 않은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참가한 약 70여명의 사람들을 네 그룹으로 나눠서 각 그룹을 상대로 기존의 잘된 선례를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제가 참석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입니다.>
대개 레이와 같이 다니면서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던 내용이 많았고, 그런 내용들이 지역별로 약간 다르게 시행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제가 나타내듯이 청소년 범죄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한결 같이 말하는 것은 범죄는 경찰만의 힘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범죄와 관련된 분야의 모든 기관들과 지역이 함께 일해야 성과를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오전에 제가 참석했던 워크숍에서 발표한 스완지 (Swansea)의 현직 경찰관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다른 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홍보가 그들의 전략이 성공하는데 아주 주효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 오면서도 레이와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모든 기관과 모든 지역 사회가 이와 같은 인식 (범죄는 경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들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주위에서 보고, 책을 통해서 읽으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옆에서 바라 볼 때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경찰의 입장에서는 참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만약 ‘범죄는 경찰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금 100명의 시민 앞에서 얘기한다면 과연 그 중 몇 분이나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일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경찰이란 놈이 제가 할 일을 남에게 전가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더 많지 않을까 비관적으로 생각도 해 봅니다.
특히 제가 살던 대전에서,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큰 강도 사건이 몇 차례 발생했었습니다. 은행 직원이 운행하던 현금 수송 차량에서 강도가 수억원의 현금을 탈취한 사건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은행의 직원이 숨지는 불행한 일도 있었으며, 은행 내로 공기총이나 다른 무기를 들고 침입해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로 인한 불안감이 퍼지고, 사회적 파장이 커져서 지역 경찰서나 지방 경찰청에서 각 금융기관의 책임자와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와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한 일이 있는데, 이때 오지 않는 은행 지점장도 적지 않았고, 참석했던 은행에서도 은행 내에서 근무하는 청원 경찰을 보낸 곳이 많더라는 ‘한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관과 모든 사람들이 이런 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예는 우리 사회에서 범죄를 바라 보는 아주 전형적인 시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바는 아니지만 경찰의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각 지역의 행정기관 (도청, 구청 등)에 치안과 관련한 시설 (가로등, CCTV와 같은 시설)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 요구가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아는 사람을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범죄는 결코 경찰의 힘만으로 줄이거나, 예방될 수 없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이후에도 경찰의 힘만으로 범인을 잡는 것은 어렵지만 이 점은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이런 결론은 제가 감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수많은 교과서와 연구자료 등에서 밝히고 있고, 경험적으로,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은행 현금 수송 차량의 예만 하더라도 경찰의 인력으로 모든 현금 수송 차량을 지키거나, 매번의 현금 수송을 호위해 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행 자체적으로 현금 수송에서 쉽게 피탈되지 않는 인력과 장비 (차량) 등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경찰의 도움을 사전에 구하는 등의 가능한 자구 노력을 모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사건이 터진 후에 경찰이 그 강도를 잡지 못한다고 탓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거니와 무책임하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좀 더 넓게 본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아주 비효율적입니다.
레이에게 은행의 예를 간단히 말했더니, 그런 점은 현금 수송을 하는 은행 직원들의 안전에 관한 것도 해당되는 것이므로 피고용인의 안전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은행 측에 설득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습니다.
아무튼, 레이와 몇 번의 회의를 따라 다녔지만 이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범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공사 단체와 기관이 서로 협조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고 (몇몇 공공 단체는 범죄 감소를 위해 협조해야 할 법적 의무도 최근에 생겼습니다.), 또 많은 사례들에서 이와 같은 파트너쉽 (partnership)을 이용한 범죄 해결의 접근 방법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은 무척 부럽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엊그제 다녀온 회의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그 회의장의 앞에서 나누어 주던 각종 자료를 보고 생각한 것인데, 영국 정부의 범죄와 관련된 연구 노력도 높이 살만합니다.
소방과 출입국, 교도소 등과 함께 경찰의 주무 기관인 내무부 (Home Office)의 공식 웹사이트 (http://www.homeoffice.gov.uk)를 쭉 훑어 보시면 범죄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찾으실 수 있는데, 그 범위와 분량은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 엊그제 회의를 주무했던 범죄 감소 센터 (Crime Reduction Centre)의 웹사이트 (http://www.crimereduction.gov.uk)에는 참으로 많은 정보들이 올려져 있어, 범죄 전문가와 일선 실무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무부의 ‘연구 발전과 통계국 (Research Development and Statistics)' 웹사이트(http://www.homeoffice.gov.uk/rds/index.htm)는 오래 전 부터의 연구물부터 최근의 것까지 전자 형식의 파일로 올릴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올려져 있어 범죄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좀더 전문적인 내용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연구물 중 pdf나 html 형식이 아닌 책자 형식으로 받아 보고 싶으면, 담당자에게 편지나 이메일로 받고 싶은 연구물과 주소를 보내주기만 하면 무료로 배송해 줍니다. 저도 몇 번 신청해서 받아 보았고, 어제 저녁에도 약 10권에 가까운 자료를 메일로 신청했는데,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일주일에서 10일 내로 도착할 것이라는 친절한 답변이 전달되어 있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에서 너무 거창하게 결론을 건너 뛴다고 욕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사회가 발전하고 학문이 발전했던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니었나 감히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내용은 경찰 혹은 범죄와 관련된 국한된 분야이기는 하지만 (다른 분야도 이와 비슷하다면), 정부의 주도하에, 그리고 다른 자발적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또 그런 결과물을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과 계속 공유하고, 토론하기 때문에 사회가 정체되거나 후퇴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외국에 있다고, 그것도 남들이 말하는 ‘선진국’에 있다고 쉽게 사대주의에 빠지지 말자고 항상 다짐하지만 이들의 장점을 보고서는 가끔 무척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사물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고, 다른 나라와 다른 이들의 장점을 건설적으로 받아 들이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거창한 결론을 ‘감히’ 내려봅니다.
<관련 자료, 사이트>
내무부 (Home Office)
http://www.homeoffice.gov.uk
범죄 감소 센터 (Crime Reduction Centre)
http://www.crimereduction.gov.uk
연구 발전 통계국 (Research Development and Statistics
http://www.homeoffice.gov.uk/rds/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