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e News

레이 (Ray)와의 동행기 1

남궁Namgung 2003. 11. 18. 08:40






모두 안녕하셨는지요? 이곳도 어느덧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듯 합니다. 단풍도 많이 졌고,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한데다가 오후 다섯시도 안되어서 어두컴컴해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꽤 쌀쌀한데다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가족과 친구와 좋은 얘기만 나누며 깊어 가는 겨울 밤을 훈훈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내용은 최근에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소 정리되지 않은 글입니다만 시간되시는 분들은 편하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추운 날 건강 조심하시고, 또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메일 (hyonyya@korea.com)



홈페이지 (http://hyonyya.netian.com)












레이 (Ray)와의 동행기 1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요즘 이곳 대학 (University of Exeter)에서 가까운 티버튼 (Tiverton)이란 경찰서로 직무 훈련 (Work Placement)을 다니고 있습니다. 1년차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2년차의 과정을 대학측에서 제 전공과 관련된 기관인 경찰서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교섭해 주었기 때문에 제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티버튼 지역은 이곳 엑시터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입니다. 엑시터라는 곳도 그리 큰 도시가 아닌데, 그곳은 이곳보다 더 작은 동네입니다.




저는 그곳 경찰서로 일주일에 서너차례 혹은 그 이상 출퇴근을 하고 있고, 그곳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레이 (Ray)라는 경찰관과 동행을 하여 직접 보고 들으며 배우고 있습니다. 저의 파트너 레이는 지금까지 약 25년 정도 근무한 아직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으나 외모 상으로 4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경찰관입니다. 성격이 아주 활발하고, 유머 감각이 좋으며, 말을 아주 많이 해서 영어 공부를 하려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파트너입니다.




레이가 경찰서에서 담당하는 일은 청소년 업무입니다. 공식 직함도 청소년 업무 담당관 (Youth Affair Officer)로서 거의 비행 청소년 계도나 청소년 홍보 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계급으로 비교를 하자면 순경 (Police Constable)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지켜본 바로는 자기의 재량대로 상당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습니다.




제 계급은 이 나라의 계급 체제와 비교를 하자면 폴리스 인스펙터 (Police Inspector)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낮은 계급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상당히 높은 계급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고, 청소년 지도를 위해 학교에 가서 레이가 저를 ‘한국에서 온 폴리스 인스펙터’라고 소개하면 놀라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아무튼 레이의 업무가 청소년 담당 업무이고, 주로 외근을 하면서 티버튼 경찰서가 관할하는 지역에 위치한 학교의 학생들을 선도하고 계도하며 교육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제가 동행하면서 지켜 보는 일도 거의 청소년 담당 업무입니다.




지금까지 레이와 동행을 한 것이 만 1개월 정도 되어 가는데, 돌이켜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책으로만 읽었던 영국의 경찰활동 외에 실제 경찰관으로 일하는 사람의 생각 (단 한 사람일 뿐이지만)을 들어 볼 수도 있고,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것들, 예컨대 경찰차량이나 제복 등의 외관에서 의미하는 것들, 봉급에 대한 생각, 업무에 만족하는지 등의 것들을 실감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제게는 정말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영국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활동이 ‘우리나라보다 좋다’ 거나 ‘우리가 모두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단순화 시켜서 생각하거나, 제가 그런 사대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다니면서 주로 생각한 것은 정말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레이와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을 좀 더 자유스럽게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어 오늘 그 첫 번째 글을 발행해 봅니다.












오늘은 2003년 11월 17일 월요일이었습니다. 여기 날씨는 아침부터 무척 흐렸고, 회색빛 하늘로 가득한 전형적인 영국 날씨였습니다. 아침에 늦잠을 잤는데 레이가 전화를 해서는 오늘 오전과 오후에 약속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잠시 후에 레이가 저의 집까지 차를 운전해 와서 저를 태우고 크레디튼 (Crediton)이란 지역으로 갔습니다.




주로 사복을 입고 일하는 그가 웬일인지 정복을 차려 입고 와서 알고 보니 학교에서 카나비스 (cannabis, 마리화나)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학생(A)과 그 부모를 만나 그들에게 마약의 해악을 고지하려는 약속이 정해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학교는 Crediton Queen Elizabeth Community College란 학교로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정도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등교차량에서 오늘 만난 A가 카나비스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본 다른 학생들 (2명)이 담당 교사에게 신고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교사가 A의 가방을 뒤져 보았더니 가방 내에서 70파운드 (약 14만원)라는 거금이 발견되어 카나비스를 다른 학생들에게 판매를 하는 등 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사고 있었습니다.




제복을 입고 학교에 찾아 간 레이와 담당 교사를 마주한 A의 부모는 경찰관이 찾아 온 것에 무척 큰 부담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전과라도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에선지 처음에는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부리며 아들인 A를 감싸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레이가 학교에 간 것은 B급 마약으로 분류된 카나비스의 해악을 고지하고 주의를 주려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는 설득을 해서 절차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담당 교사가 왜 부모가 학교에 왔는지 설명을 했고, 앞으로 추후에 다시 적발이 될 때 학교의 입장에서 어떤 불이익이 주어지는지에 대해 경고를 했습니다. 그 후 레이는 경찰의 관점에서, 법적 관점에서 추후 학교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라도 카나비스라는 마약을 소지만 하고 있어도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또 꼭 법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육체적으로 어떤 해악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저도 오늘 레이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추후 정확히 찾아 보고 말씀 드릴 기회가 있으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약류에 관련된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을 경우에는 단지 그 이유로 인해서 전세계 46개국으로부터 입국이 거절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뿐 아니라 다른 범죄 등과 함께 두 번의 가벼운 경고를 했음에도 또 다른 범법행위를 해서 적발되면 더한 가중처벌이 되고 그 때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소위 ‘쓰리 스트라이크 앤 아웃 (Three strike and out)'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 A와 부모는 레이와 담당 교사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추후로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레이에게 물어 보니 학교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다고 해서 모두 경찰관을 불러 경고를 주는 것은 아니며, 일부 학교에서는 그런 일을 학교 자체에서 덮으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학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A의 부모도 얘기를 했듯이 이와 같이 경찰관이 학교에 찾아 가 경고를 하는 것은 당사자와 다른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억지 효과가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고에 임하는 자세와 방법인데, 당사자인 A는 어떻게 들었을지는 몰라도 제가 듣기로는 아주 설득력 있게, 효과적으로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비행에 대한 문제는 어느 나라에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일 때 그러했고 그 전에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교육하고 계도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런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가 있고, 경찰서에도 그런 업무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청소년 업무의 중요성을 느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의를 갖고 그 일을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이야기로 계속 쓸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결국 선진국과 선진국이 되려는 나라의 차이점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약자를 얼마나 보호하려고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청소년, 노인, 임산부, 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결국은 그 사회를 발전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A와 그 부모를 만난 것은 오전 11시부터 12시 정도까지였고, 저와 레이는 가볍게 빵을 먹은 후 (Pork Pie라는 것이었는데, 정말 맛없고 짜더군요. 레이는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다시 그곳에서 가까운 요퍼드 (Yeoford)라는 곳에 위치한 초등학교 (Primary School)로 갔습니다.




레이의 말에 의하면 그 초등학교에 교사는 어느 회의에서 만나 알게 되었는데, 그 교사가 자기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경찰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서 오늘 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직접 학교를 방문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학교의 요청 없이 먼저 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에게 경찰에 대한 소개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린 학생들이었고, 전체 학생이 26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지만, 어느 어린 학생들이 그러하듯 경찰관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고, 레이가 여러 제복을 보여 주며 그 제복이나 경찰 장비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곳 경찰의 제복, 장비 등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들으며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운 하루였습니다.




우리와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경찰관은 무장하지 않는다 (unarmed)는 것입니다. 경찰 창설이래 이곳 경찰관은 ‘제복을 입은 시민 (citizen in uniform)'이라 해서 똑같은 시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혹은 그와 같이 주입당했고), 여러 다른 이유와 함께 특수 임무를 하는 경찰관 이외에는 총을 휴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총기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요즘에는 경찰관도 총을 휴대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지만 영국 경찰의 비무장 전통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찰관은 그 대신 칼을 막을 수 있는 조끼를 착용합니다. 저는 그 모양이 방탄 조끼와 비슷해서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양은 거의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칼을 막을 수 있는 방도 조끼 (stab-proof vest)라고 합니다. (참, ‘방도’란 말은 제가 지어냈습니다. 실제 이런 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영국과 정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일부에서 총기 휴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총은 상당히 무거워서 허리에 차고 다닐때 순찰에 지장이 있을 정도이고, 장기간 착용하고 있으면 신체적으로도 무리가 있으며, 현실적으로 총을 사용할 기회는 정말 적습니다.




또한 실제 강도나 도주하는 범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총기 사용이 허용되는 조건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총을 사용해서라도 범죄자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끔 범죄자와 격투를 벌이다가 경찰관이 총기를 빼앗기는 (시민이 보기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모두 총기 사용을 꺼리게 되는 경찰의 문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총기와 관련된 범행이 많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범행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총기를 대용할 수 있는 다른 장치, 예컨대 순찰 경찰관 등에게는 이곳 영국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칼이 뚫지 못하는 조끼와 가벼운 가스총 등으로 실제 권총을 대신하게 하고, 실제 총은 조직 범죄와 같은 강력 범죄를 다루는 경찰관등에게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어린이들에게 일일이 모든 제복을 꺼내 보이고, 입거나 입혀 주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는 레이의 전문성이 다시 돋보였습니다.




저도 짧지만 대전에서 파출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경로당이나 유치원, 학교 등을 방문하여 교통사고를 예방에 대한 교육을 하고 사진을 촬영하라는 지시가 있어 정말 타의에 의해 관내에 있는 유치원을 방문해서 오늘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교통 질서에 관하여 가르쳐 줄 것인가생각해 보고 가기는 했지만 막상 ‘제 멋대로인’ 유치원 어린이들을 보며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고 후회하면서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낯이 붉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린이를 가르치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경찰관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칠판에 횡단보도 등을 그려 놓고 뭔가를 주입시켜려고만 했던 제자신이 아직도 미련하게 생각됩니다.




언젠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이기도 하지만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적절히’ 하게만 된다면 그들이 나쁜 길로 빠지 것을 일찍이 방지할 수 있고, 경찰과 친숙해 지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레이와 동행하면서 배우게 된 것 중에서 가장 큰 점은, 앞서도 말씀드린 프로정신 (professionalism)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혹은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 들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일에 수동적이기만 했던 저의 업무 습관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게 합니다.












저녁에는 저를 집에까지 태워다 주어서 저의 집에 들러 차를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이상이 오늘 일정이었는데 일기 형식으로 썼기 때문에 중구난방이지 않나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앞으로도 종종 이런 식으로 여러분과 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