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학기를 시작하며
이번 달 초까지만 해도 눈이 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인 10월에 눈이 오는 일도 적지 않았는데 올해는 12월 말이 될 때까지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록키산에는 그래도 눈이 내리곤 했다는데 그나마 비교적 해발이 낮은 이곳은 눈 구경이 쉽지 않은 겨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 얼마 전부터 적지 않은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걱정(?)을 덜어 주었다. 엊그제 같은 날은 캠퍼스가 오후에 문을 닫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꽤 많은 눈이 내렸고, 오늘도 새벽부터 내리는 눈이 오후에까지 많이 내렸다.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을 뿌리는 시간이 있기도 했다. 유빈이가 캘리포니아의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머리도 다듬고 염색도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미장원에 데리고 갔다 왔는데, 오가는 길이 무척 위험할 정도로 눈이 휫날리고 있었다.
오후 세시가 넘어서면서는 잠잠해졌고, 기온도 많이 올라서 도로 곳곳에 쌓이고 미끄럽던 곳들이 녹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2022년 봄학기를 2주 차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인 우려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내가 준비하고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나와 학생들은 학교의 방침에 따라 건물 내에서는 백신 접종 완료 여부와 관계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일부 강의는 이전보다 학생수를 줄이거나 온라인으로만 진행을 하기 때문에 캠퍼스에 보이는 학생들은 숫자는 이 바이러스 시국이 시작되기 전보다는 적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이전의 모습으로 많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교직원들은 각자 사무실에서 마스크 없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빌딩 밖에서 또한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비하면 제약이 많이 줄어든 것을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마스크에 많이 적응이 되었는지 크게 불평을 하거나 착용을 거부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으며, 수업 중에 대화를 유도하면 마스크 쓴 상태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바이러스 확진을 받아 테스트를 하기 위해, 혹은 테스트 이후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서 수업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학생들의 이메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학기보다는 환경이 많이 호전된 같다. 적어도 학교의 행정이 많이 체계화되었고, 학생이나 교수들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되어 혼란스러워하는 일이 훨씬 줄어든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지난 학기는 무척 힘든 학기였다. 처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수년 전의 처음 몇학기는 강의 자료나 과제물 준비, 교실에서의 강의 자체 등 여러 가지 면에서(혹은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과정들이 당연히 거쳐야 할 시간으로 생각하면 지냈었다. 그리고 그런 도전이 되는 시기를 거쳐 강의며 학사 관리, 연구활동 등의 모든 측면에서 꽤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이 놈의 바이러스로 인한 수업 환경의 변화는 내게 무척 힘든 경험을 안겨 주었다. 많은 학교들이 한동안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던 수업들을 어렵사리 대면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학기(2021년 가을)였다. 다만 학교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면 수업에 참여할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교수들에게 상당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계속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일부 과목을 다시 대면으로 오픈할 것을 결정했다.
아내가 다소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특별한 기저질환 없이 비교적 건강한 상태이고 대면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가급적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퇴근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일을 보는 것이 여러 가지 업무처리의 효율이 높다는 것을 경험적을 알기 때문이었다.
1년 넘게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던 수업을, 더구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한 가운데서, 대면 수업을 준비하고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접근방법을 취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학기의 대면 수업들은 가급적 학생과 학생, 그리고 나와 학생 간의 대화나 가까운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기존에 여러 가지 그룹 과제들은 모두 없앴고, 수업의 거의 대부분을 교실 앞에 서서 내가 진행하는 강의로만 채웠다. 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수업의 건조함과 학생들의 수동적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주로 가르치는 과목이 조사방법론(Research Methods)이라 원래도 학생들이 부담을 많이 갖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며 학생들의 관심이나 흥미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데,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는 학생들의 표정이 더 무료하고 심지어 지쳐 보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나마 학생들을 억지로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던 교실 내의 소그룹 활동이 없다 보니 때로는 학생들의 수동적인 모습들이 눈에 띄었고, 수업이 진행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오면서 우울해지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런 무기력과의 싸움은 별다른 사고 없이 한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끝났다. 이번 학기를 준비하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난 학기와 같은 방식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다짐을 했었고, 지금까지 이대로 진행하고 있다.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놀라운 전파력을 행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지만, 그 파괴력 혹은 건강상 해악은 이전의 변이 바이러스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이 초기의 연구 결과라고 한다. 주위에 이 바이러스에 걸린 지인들도 감기 수준의 증상을 앓다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종종 들어왔는데, 이 같은 환경 변화가 나의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이번 학기부터는 팬데믹 이전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충분히 주의를 주면서도 효율적인 학습에는 저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결심이었다. 이 같은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다행 학생들도 잘 따라주고 있어 다행이다.
이제야 두 번째 주를 보냈을 뿐 앞으로 남은 시간이 창창하지만 그래도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고 있고, 더구나 작년의 예를 살핀다면 날씨가 풀리면서 감염자나 감염률, 치사율 등 여러 가지 지표가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최악을 따지면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난 학기와는 달리 이번 학기는 차로 출근을 하고 있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갔다가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교통체증을 겪어 보지는 않았고, 그래서 기차로 출근할 때보다는 시간을 많이 아끼고 있다. 유빈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출근에만 한 시간 (눈이 오는 날은 두 시간)을 차에서 보냈던 것을 생각한다면 출퇴근 환경은 크게 개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는 시간은 내가 정말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는 실감을 준다. 지금 여러가지 연구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들이 생겨난 것이 사무실 출근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상황이 좋아져서 학교 수업이나 연구, 그리고 학교의 모든 일들이 이전으로 신속히 돌아가기를 고대한다. 이렇게 사회의 한 분야, 한 분야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종국에는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P. S.
많은 대학들은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꽤 심각하게 고려하는 편이고,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처음 두세 학기는 수업시간 자체는 물론 강의 평가면에서도 고전을 했었다. 그러다가 강의와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된 이후로는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변했었다.
하지만 내가 무척 힘들게 보낸 지난 학기의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어떨지 겨울방학 내내 궁금했었다. 내가 학생들을 생각했던 것 처럼 학생들도 나를 그렇게 힘들게 여겼을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강의 평가 결과가 예전보다 다소 늦게 보내졌는데, 결과는...
내가 학생들을 힘들게 생각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후한 점수와 코멘트들이었다. 수업에 대한 만족이나 긍정적인 생각들이 모두 마스크에 가려져서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생들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또 다른 귀한 가르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