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마지막 주

남궁Namgung 2021. 5. 15. 10:10

학생들의 성적을 채점하면서 나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처리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과목의 경우에는 매주 월요일이면 학생들에게 주간 뉴스 비슷한 공지 메일을 보내왔었다. 지난주에 했던 주제와 일들을 정리하고, 그 주에 다룰 주제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제출해야 할 과제도 함께 공지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밥을 입으로 떠 먹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교수법 중의 하나로 소개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번 주 월요일에도 그간 한 학기동안 고생했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했었다. 사실은 학사관리시스템 (혹은 Learning Management System)에 예약 설정을 해 놓기 때문에 일요일에 보낼 내용을 저장해 놓으면 정해진 시간, 즉 월요일 아침 8시에 학생들에게 자동 발송되어 왔었다. 

 

이번 주에 학생들이 할 일은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 일 밖에 없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부터 하루에 한 번 정도 이 시스템에 접속해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마쳤는지 확인하고, 시험을 치른 경우 최종 점수를 확인하여 학점 (A, B, C, D, 혹은 F)을 입력하는 일만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일은 한 학기의 마지막 주인 기말고사 주간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면서도 진정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마지막 주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함께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서 문뜩 든 생각이 "이번 학기도 무탈하게 보낸 것 같다"는 안도였다. 동시에 "아, 이번 주가 기말고사 주간이었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학교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면서 같은 동료들과 서로의 안부와 여름방학 동안의 계획을 묻는 일이 없으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실감할 일이 없으면서 생긴 일이다. 기말고사를 보는 마지막 날이면 시험을 마치고 교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한 학기 동안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는 학생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따뜻한 교감을 할 수 있는 경험도 사라져서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수고의 인사도 하지 못했다. 메일로 보내는 인사에 나의 진정이 포함되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정오에는 지난 가을 학기부터 수강했던 교수법 강의를 마치는 온라인 행사에 참여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팀(Team)을 이용한 온라인 행사(Pinning Ceremony)였는데, 이 수료증을 수여하는 기관의 핀을 달아주면서 1년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 그 교수법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강의였는데, 그간 수강했던 어떤 과목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내용도 매우 유익했다.

 

그간 책을 통해서 다른 교수들이 가르치는 "좋은" 방법을 배우도록 노력했었고, 몇년 전에도 온라인 교수법 강의를 수강하기는 했었는데 ACUE(The Association of College and University Educators)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이 강좌(Effective College Instruction)는 내가 전혀 몰랐거나 피상적으로 알았던 교수법 등에 대해서 알찬 내용으로 진행되어 왔다.

 

겨울방학과 중간의 2-3주 휴강 기간을 제외하고 25개의 강좌(Modules)를 매주 한 강좌씩 처리해 왔다. 내 나름으로는 이 강좌를 성공적으로 수료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다른 어떤 업무보다 이 강의 수강에 우선권을 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떤 주는 마감일을 하루 이틀 넘겨서 과제를 내는 일도 있었다. 주로 일요일의 한적한 시간을 골라 강의를 듣고 제출해야 할 숙제를 내곤 했었다. 

 

그래도 이 과정이 모두 끝나고 돌이켜 보니, 이 과정 수강을 위해 지원했던 것이 무척 잘한 결정이었다. 더구나 내가 직접 수강료를 지불하고 개인적으로 강의를 듣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인데, 학교에서 지원해 주었으니 비용적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이 강의를 담당해 왔던 부서의 책임자가 오늘 행사에 맞춰 증서와 핀을 우편으로 보내줘서 이미 받아 놓은 상태였고, 오늘 행사는 온라인으로나마 직접 핀을 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이메일을 통해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달회사(Door Dash)의 15불짜리 상품권도 보내왔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인정을 받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이 있나 싶기도 하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도 무탈하게 보낸 편이고, 그다지 굵직한 일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강의를 수강하고 수료증까지 받으면서 마무리 하게 되어 뿌듯하다. 


온라인 행사 후에 자주 다니는 공원에 나가 보았더니 나무에 잎을 띄우고 있는 것들이 많고, 풀과 잔디들도 넓은 들을 채우고 있었다. 공원 관리 직원은 큰 기계에 앉아 길게 난 잔디를 깎고 있어 나와 아내가 산책하는 길에는 막 잔디를 깎은 신선한 풀냄새가 가득했다. 

 

 

날은 다소 흐렸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약간 뿌리기도 했지만 무척 신선하게 하루 (그리고 한 학기)를 마무리 하게 되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