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삼거리 도서관

남궁Namgung 2021. 5. 13. 03:44

혜빈이 학교는 8시 20분에 시작하기 때문에 학교 주변에 생기는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7시 50분이면 집에서 나와 차로 등교하고 있다. (그래 봐야 학교까지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록을 보니 운전 허가증(permit)을 받고 처음으로 운전연습을 시작한 것이 지난 3월 30일이었다. 아직 고속도로를 나가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달도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조심스레 동네를 운전하고 다닐 정도의 기술은 익힌 것으로 보인다.

 

처음 운전 연습은 혜빈이 학교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주말이나 저녁에 이 학교의 넓은 주차장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차들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은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운전 연습을 시작하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일찌감치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 수업을 진행하던 혜빈이 학교와 달리 유빈이네 학군은 그 결정이 다소 늦어졌었다. 얼마 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변경했을 때도 유빈이가 그냥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겠다고 해서 집에서 학사 일정을 진행해 오던 터다.

 

그러다가 학교로 등교하기 시작한지 삼일째다. 한참 전 "정상"일 때는 집에서 7시 전이면 함께 출발해서 7시 45분에 수업이 시작하는 유빈이를 내려 주고 나는 계속 동쪽으로 운전을 계속해서 나의 학교로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었다. 이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침에 시작하는 학교 시간은 변함없지만 졸업반으로서 일찍 시작하는 수업이 없어서 집에서 8시 반에 출발해서 나오고 있다. 나는 지금 기말고사 기간이기 때문에 마무리 채점을 할 것들이 있고, 다른 작업도 진행해야 할 것이 있어서 유빈이 학교 인근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글을 끄적이다가 앉아 있는 책상의 사진을 찍어 봤다.

나 혼자 삼거리 도서관이라고 별칭을 붙인 샘 개리(Sam Gary) 도서관인데, 덴버 공공도서관 지점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자주 와서 책을 읽거나 빌리기도 했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거나 작업도 많이 했었는데 어제 1년도 한참 지난 후에 오랜만에 와 보았다. 일단 유빈이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동네에 올 일이 없었고, 공공도서관이 개방을 하기 시작한 것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 와 보니 방문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운영이 이전과 동일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책상들을 좀 더 설치해서 띄엄띄엄 둔 것이 이전과는 다른 점으로 보이는데, 그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를 모르겠다.  

 

아침에 이곳에 오기 전에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러 1불짜리 큰 커피 하나를 샀고, 마스크를 잠시 걷어서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 수없이 하던 일이었는데, 이제 유빈이가 다음 주 화요일을 마지막으로 학교에 올 일이 없게 되면 나의 일상에서 사라질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 대상 연령을 12-15세 아이들로 확대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엊그제 있었다. 내가 다니는 캠퍼스에 설치된 접종 센터에서는 내일부터 바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접종을 시작한다는 메일도 아침에 확인했다.

 

일정을 살펴 보고 혜빈이를 데리고 와서 바로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여기저기 다녀 보니 여전히 사람들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가게나 식당 등이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아직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곳이 적지 않지만, 테이블을 띄워 놓는 방식으로 손님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 가게 안에서 음식을 파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인도와 브라질 등 여러나라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도 계속 들리고 있지만, 바로 주위에서는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있노라니 천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낙관을 하게 된다. 아직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면 한번 더 쳐다 보게 되는데, 곧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극소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 그 정확한 시기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리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그 날을 손꼽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