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털고, 쓸고, 닦자(코로나바이러스 이후 7)

남궁Namgung 2020. 4. 28. 14:26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욕실에 있는 체중계를 이용해서 몸무게를 확인한다.

 

대부분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번 이렇게 두 번 재지만, 혹 아침에 잊는 경우가 있으면 저녁에는 반드시 몸무게를 재고 침대에 들어간다. 마치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질에 약간 집착하듯이 체중계에 오르는 것이 일상에 챙기는 버릇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오늘은 좀 일찍 씻고 체중계에 올랐더니 평소 이 시간 즈음에 항상 보아오던 숫자보다 1킬로그램이 더 보인다. 물론 지난 수년간 유지되어 왔던 숫자보다 1킬로그램에서 어떤 때는 2킬로그램이 더 나오는 것은 어쩌다가 보이는 현상이기는 했다. 그리고 이런 증상(?)은 지난 며칠 사이에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간의 늘어난 숫자가 어쩌다가 나왔던 변이가 아니라 실제 내 몸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끔이라도 러닝머신에서 걷거나 뛰면서 움직이려고 노력했던 것은 가상한 것이었을 지언정, 그러한 사소한(!) 움직임이 나의 변화된 일상에서 갑작스레 줄어든 신체활동량을 모두 커버할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이전과 먹는 양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평소에 출근했었을 경우라면 그리 잘 먹지 않던 과자나 단 음료수를 먹고 마시는 경우가 이전보다 많았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도 집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그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매일, 점심을 제대로 해 먹으면서 포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이 식습관의 변화만으로도 내 몸무게의 변화를 놀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진 움직임의 급격한 감소는 기존의 체중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단지" 1킬로그램의 증가이지만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다. 1킬로가 2킬로로 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불어나는 체중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작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갑작스럽고 다소 낯설은 숫자에 익숙해지면 나의 식습관이나 다른 생활습관도 조금씩 정당화하면서 포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기도 하다. 

 

당분간 조금이라도 덜 먹고,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서, 체중계의 숫자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계속된 재택근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일감"이 있어 어떤 날은 조금씩, 어떤 날은 적지 않게 일을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날들은 이메일로 의사소통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집에 계속 있어도 무료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가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나의 취향에 맞는 영화나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 때우기도 하고 있고,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아직까지 책장(혹은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어디 직장을 다니면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애들 학교 보내고, 데리고 오고, 음식 준비와 다른 집안 살림을 열심히 해 온 편이었다. 물론 이 같은 일들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로 인해 예전에 지인들과 함께 하던 성경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내에게는 시간이나 에너지 투입 면에 있어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모임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료한 일상 때문인지 아내는 근래에 집안 청소와 정리에 열심이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살림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고 닦고 쓸어 내고 있다.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쓸모 없는 물건이나 잘 쓰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있고, 다소 지저분했던 것들은 플라스틱 박스 등을 사용해서 반듯반듯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주방이 제일 먼저 대상이 되었는데, 그 대상이 하루하루 넓어져서 거실과, 지하실, 그리고 오늘은 위층의 안방과 아이들 방에까지 그 정리의 손길이 뻗쳤다. 

 

물론 알아서 집안일을 척척 해 내면서 남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 보기 좋지만, 가끔 그 정리를 위해서 나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번거로울 때도 있다는 것이 재택근무하는 남편으로서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하라는 것, 하라는 때에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엊그제는 아내가 1층의 각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의 때를 제거한다면서 하나하나 먼지떨이로 블라인드 날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몇번이고 "다음에 하자, 다음에 하자"며 공허한 각오만 했지 미루고 미루기를 계속했던 일인데,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나는 다른 일이 있어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나의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유리창을 닦는 일에 이르러서는 나에게로까지 노동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창문의 높은 부분까지는 손이 닿지 않자 나에게 부탁했던 것인데 사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유리창을 닦는 스프레이 세정제를 뿌린 후 종이 타월로 닦아 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슥삭슥삭 닦아 내다가 내 책상 앞에 있는 창문에까지 이르렀다. 왼쪽을 닦고 가운데 부분을 닦다가 유리창이 깨져 금 간 것을 보기는 했는데, 그저 금만 가 있을 뿐 튼튼하게 붙어 있는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세정제를 뿌리고 타월로 그 부분을 닦으면서 "악..." 하는 소리를 냈다. 깨진 유리창이 바깥쪽으로 살짝 밀리면서 깨진 부분의 날로 손을 벤 것이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벤 부분을 다른 왼손으로 감쌌는데, 화장실에 피를 닦다가 보니 오른손 새끼 손가락의 피부가 약 1센티미터 정도로 베어 피가 나는 것이 보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가끔 있어서 특히나 칼을 만질 때는 의식적으로 조심하는 편인데, 결국은 이런 일이 생겼다. 

 

칼이나 유리로 벨 때면 생기는 그 기분 나쁜 소름이 끼치고 살짝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흐르는 물에 피를 닦으면서 자세히 보니, 벨 때 들었던 아찔한 예상과는 달리 상처가 깊지 않아 다행일 뿐이었다. 밴드를 붙이고 나니 흐르던 피도 그쳤고, 그제사 심정적으로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밴드를 붙인 이후에도 키보드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약간의 통증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사용하면 앞으로 하는 일에도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상처가 깊지 않아 빨리 회복되고 있다. 일요일까지만 해도 불편한 감이 계속되고, 물에 조금만 닿아도 신경이 쓰이더니 어제부터는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새끼손가락 옆부분이라서 키보드를 칠 때에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상처가 나은 것이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채점할 것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학기가 2주 박에 남지 않았는데, 내가 강의하는 과목은 이맘때가 페이퍼 마감이다. 한 과목은 금요일, 다른 두과목은 일요일이 마감이어서 시스템에 채점해야 할 페이퍼들이 쌓이고 있었던 상태였다. 안 다쳤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도 적절히 나아 다행일 뿐이다. 


일전에 컴퓨터를 구입하고 사용하다가 모니터를 하나 더 구입했었다. 사무실에서 모니터 두개로 사용하는 것이 업무 능률에 크게 도움이 되기에 집에서도 그리 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 더블 모니터는 특히 이처럼 학생들 채점할 때가 가장 도움이 된다.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페이퍼에 공통되는 패턴이 있는데, 과제를 줄때 요구하는 형식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채점을 할 때는 한쪽 모니터에 페이퍼를 띄워 놓고, 다른 모니터에 내가 주어야 할 코멘트 파일을 열어 필요할 때마다 비슷한 코멘트를 복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서론 부분과 본문, 결론 부분에 필요한 내용이 적시되었는지 부족한지를 적절한 부분에 피드백을 해주곤 하는데, 자주 사용하는 코멘트를 한쪽 화일에 저장해 놓고 두 화면을 오가면서 사용하면 상당한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다. 

 

책상에 모니터 두대를 놓고 작업하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토요일에 약 50개의 페이퍼, 어제 약 50개의 페이퍼 채점을 모두 마쳤다. 아직까지 나의 채점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나 질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한 학기의 업무 중 가장 큰 부분 중의 하나를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어제 몇시간을 앉아서 채점하는데도 베인 새끼손가락에 신경이 많이 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런 과로 속에서도 부상 부위는 계속 회복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