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고수의 비법서 활용기
우리 대학에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학교가 문을 닫은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달력을 보니 내가 수업 때문에 학교에 마지막으로 나간 것이 3월 12일이었다. 다행히 그 중간에 끼어 있던 일주일의 봄방학이 갑작스러운 수업 형태의 변경에 있어서 그마나 완충 역할을 했었다.
이제 봄방학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과목 온라인 강의가 시작된 지 2주 차이다. 그간 학생들로부터 오는 이메일을 보니 좀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의 대다수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전의 경험상으로 보면, 아무런 연락이 없는 수업이 준비가 잘 된 수업이다.)
강의실에서 진행하는 수업이든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수업이든 처음 강의계획을 세울 때가 제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마치 집을 지을때 기반을 다지고 기초를 완벽히 한 후에 다른 골조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학기의 강의를 준비할 때, 그것도 이전에 가르치지 않았던 과목들의 강의를 계획할 때는 봄/가을학기의 15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어떤 강의 재료, 평가물 등을 어느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물을 배우는지, 그것들이 수업 목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나도 학생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갖고 있는 가장 흔한 불만 중의 하나는 "도대체 왜 이것을 배우는 것인가?" "왜 이런 과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학습효과가 크게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주 한주 배우는 강의 주제, 그와 따르는 강의 재료와 과제가 서로 잘 연결되도록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특히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과목의 경우는 교과서나 다른 읽는 자료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교과서나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논문 자료를 선택하는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 무슨 과목이건 강의 주제와 관련된 논문들은 말그대로 수백, 수천가지가 되기 때문에 그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학생들이 읽도록 유도할지에 대해 들이는 시간이 적지 않다.
물론 특정 과제를 필수적으로 제출하게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항상 나의 의도에 맞게 따라와 주는 것은 아니다. 과제물의 중요성 못지않게 그 과제 제출 방식이 과제로 인한 학습 효과성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논문이나 비디오, 팟캐스트 등과 함께 서너개의 질문을 답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이해도를 점검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어 단어 300개 정도를 사용해서 쓰도록 하는데, 워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더블스페이스를 적용한다면 약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이런 방식은 학생들이 과제물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그를 바탕으로 글쓰기를 강제할 수 있어서 내가 선호한다. 물론 글쓰기를 강제하는 것은 나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대학원 수업 중 매주 크게 많지 않은 분량을 글을 쓰도록 강제하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때 도움이 무척 많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거의 모든 과목에 이 같은 교수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학생들의 반응이나 과제 제출 수준 등을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물론 지난 달에 갑자기 시작해야 했던 대면 강의 과목의 온라인으로의 전환은 평상시 경험하는 수업 준비와는 전혀 다른 과정이었음은 물론이다. 애초 대면 강의의 특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수업 설계가 된 것들을 갑자기 온라인으로 바꾸는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주 동안 계획해서 수정하고 보완한 후 정식으로 가동(?)되기 시작한지 2주 차로 접어들었고, 직까지는 특별한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강의이기 때문에 앞으로 5월 초까지 남은 기간 동안을 모두 고려해서 수정을 했고, 앞으로 한주 한주 조금씩 강의관리시스템에 올려야 할 교과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선착륙하고 있는 과정으로 평가하고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온라인 강의를 선호하는 편이다. 교수에 따라서는 온라인으로 개설된 과목들에 대해 아주 야박한 평가는 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자는 온라인 만으로 학위가 수요되는 프로그램을 가혹하게 평가하기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대부분은 온라인 수업에서는 확보할 수 없는 교수-학생간의 긴밀한 토론이나 학문적 질문과 대답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 학생들의 과제나 학문적 성장에 대한 개인적이고 친밀한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 등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업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교수나 학생들이 있다. 물론 무책임한 교수와 학생들의 비윤리적 학사진행도 대면강의에 비해 쉽게 적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같은 부정적 평가가 잘못 설계된 온라인 과목에 해당하는 일부의 문제가 될 수 있을지언정, 모든 온라인 프로그램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잣대를 사용한다면, 대면 강의도 그 교수의 수업 준비나 전문성, 수업 진행 방식 등에 따라 평균의 온라인 과목보다 훨씬 못한 것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강의 설계나 준비 방식, 강의물과 수업 진행 방식 등을 제대로 한다면 온라인 수업은 대면 강의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수업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예를 들어, 수업의 강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과 주제, 그 주제를 평가하기 위한 평가방법과 평가물을 일관되게 연결시킴으로써 학생들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최소한 나의 경험상으로는, 제대로 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려고 결심한다면 오히려 온라인 수업 준비에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이 대면 수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결코 적지 않다.
또한 대면강의를 준비할 때는,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강의실에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핑계로 학습목표나 강의물, 과제물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온라인 수업의 경우는 학기 시작 전에 이 모든 점에 대해 철절히 준비를 마쳐야 한다. 따라서 각 주제와 과제물 간의 연결과 학사 진행에 대해 더 철저하게 계획해야 한다.
사실 나도 지금의 이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법을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게 되었다. 내가 배우던 10년 전까지만 해도 박사과정생을 대상으로 장차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수법 강의는 거의 없었다. (내가 몸담았던 대학원은 금요일마다 비공식적인 형식을 통해 교수법에 대한 세미나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용감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직접 경험하면서 실전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암묵적인 업계의 통념이 있었다고나 할까.
지금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짧은 시간에 이뤄질 수 없고,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일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수법이란 교실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겠다. 설령 교실이나 다른 방식으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저 교수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일 뿐이지 그같은 지식을 현장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들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결국은 교실(혹은 온라인)에서 학생과 접하면서 지식 등을 전달하는 행위라면, 결국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수법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를 근거로 한 자기 반성과 통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혹은 최소한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면, 이후에 교수법이라는 칼을 날카롭게 가는 일은 반드시 강의실(혹은 온라인)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달리 말하면, 실제 강의실 경험 없이 교수법이 발전될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책이나 교수법 세미나 참석, 다른 교수의 강의 청강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날카로운 강의로 한단계, 두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강의가 지난 수년 동안 조금이라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면, 이는 단지 강의실에 들락거렸던 시간과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교수법에 관한 여러가지 책이나 교수들이 사용하는 전문 사이트들에 올라오는 많은 조언형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에게 맞는 것들을 시도하고, 조금씩 변형시켜 적용하는 과정 등에 큰 도움을 받았다. 즉, 교수법을 책이나 기사로 읽고 배우는 것도 나의 지난 교수법 향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다른 교수와의 대화나 대학의 교수 지원부서에서 종종 보내주는 여러 도움들도 그 역할이 작지는 않았겠지만, 교수법 독서를 통해서도 혜택 받을 수 있음을 경험했다.
온라인 강의의 특성상 학생들과 이메일로 질문에 응하는 일이 많아졌고, 당연히 과제는 모두 강의관리시스템을 통해 제출받고 나의 코멘트를 달아 주고 있다. 그간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받았던 가장 큰 가르침이 있다면 학생들의 물음에 신속하게 답해 주고, 학생들의 과제를 빠르게 채점하고 피드백을 해 주는 것만큼 효과적이고 만족도 높은 교수법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학생들의 이메일 질문에는 24시간 이내에 답해준다는 것을 모든 과목의 원칙으로 삼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메일을 받은 이후 6시간 내외로는 답을 해주고 있다. 학생들의 과제도 강의관리시스템에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들어가서 매일매일 제출되는 과제를 채점하고 필요한 경우 코멘트해주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의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학생들이 나의 이 같은 신속한 반응에 가장 큰 만족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매일매일 많은 이메일을 받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이메일, 때로는 강의계획서에서 모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이메일을 신속하게 답해주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대학의 가장 큰 고객이고, 교수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가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질문에는 가장 빠르게 답해줘야 한다는 것을 나의 교육 방침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실제 이곳에서 개인적, 업무적인 일로 다른 사기업에 이메일을 보냈을 경우 거의 대부분 수시간 내에 답이 돌아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수들, 혹은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한두통의 이메일에 답하고 있고, 매주 월요일에는 과목 전체 이메일을 통해서 그 주에 배워야 할 내용과 제출해야 할 과제, 과목 이외에 학교의 중요한 공지사항 등을 전달하고 있다. 이 또한 학생들이 좋아했던 온라인 강의 운영법 중의 하나인데, 갑작스레 온라인으로 전환된 두 과목에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대면 강의가 훨씬 편했던 "범죄지도" 과목의 경우는, 일부 학생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직접 프로그램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데이터를 시스템에 올려 분석하는 방법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데 온라인 상에 올려놓은 비디오 강의만으로는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따라서 지난주와 이번 주에는 (요즘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Zoom이라는 비디오 미팅 시스템(zoom.us)을 통해서 원격으로 수업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나의 화면을 보여 주고, 학생들의 화면을 내가 보면서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 세번 밖에 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었다. 이 온라인 미팅 시스템 자체가 이용하기에 편하고 직관적이어서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시행착오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과목이나 다른 과목에서 원격으로 미팅을 하면서 강의를 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과 이런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불편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봄 학기도 한달여 남았지만, 여름 학기를 천천히 준비하고자 한다. 이번에 본의 아니게(?) 배우게 된 이런저런 온라인 교수법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이 기회를 통해 이전에 학교에서 빌려 왔다가 책꽂이에만 있던 책을 다시 꺼내서 보고 있다. 그저 일 년, 이년 지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경험이 많은, 연륜이 있는, 능력 있는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시행착오를 되돌아보고 교수 자신이 꾸준히 배워야만이 그런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