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ckdale Paradox(코로나바이러스 이후 4)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 중의 하나는 "최상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는 말이다. 누가 처음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어제 이곳 콜로라도 주지사가 여름방학 이전에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얘기한 기사를 보았다.(The Denver Post, 2020/3/30, "It's 'increasingly unlikely' Colorado students will return to class this school year, Polis say")
지난 3월 25일 주지사가 내린 이 행정명령의 유효기간은 4월 11일까지인데, 지금으로부터 2주도 남지 않은 그 기간까지 현재의 상황이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발언으로 보인다. 공립 초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과 일반 사립학교들도 포함된 말로 읽었다.
일부에서는 집에서만 머무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염려하기도 한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다른 사교 모임의 기회를 상실한 상태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질 수 있고, 연로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경우는 그 위험이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 집에서 아내와 애들 둘과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서도 큰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하기 어려운데 직접 대화하는 상대가 없거나 정서적, 육체적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 할 것이다.
주지사의 그 기한 없음을 암시하는 말을 듣고, 이전에 들었던 한 예화가 떠올랐는데, 흔히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알려진 얘기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 장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참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팔렸던 "Good to Great"라는 기업 경영서에 나와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훗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해군 부제독으로 복무하고 있다가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포로로 잡힌 미군 중 가장 계급이 높은 군인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스톡데일은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고, 생존할 수 있을지 알수 없는 극도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결국 살아남았다. "Good to Great"에서 그의 생존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로 생활에서 결국 살아 남지 못한 자들은 낙관론자들이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경에는 풀어나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그렇게 되지 못하면 '부활절 경에는 풀려날 수 있을 거야'라고 다시 낙관을 한다. 그때도 변화가 없으면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것이다'라고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이 모든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비관하고 그런 상실감에 결국 전쟁포로로 죽었다."
다소 의외의 평가 혹은 분석이지만, 그래서 그의 철학에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을 부친 것이겠다. 하지만 근거없는 낙관에 대한 혹독한 역사적 평가는 베트남 전쟁 포로들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 중에도 결국 상실감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은 비관론자들이 아니라 낙관론자들이었다는 증언들도 있다. 어느 시기를 정해 놓고(예컨대, 크리스마스), 그때 정도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는 방황이나 좌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Good to Great"라는 기업경영서에서는 지나친 낙관적 기대가 기업경영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인용하였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도 응용할 수 있는 사고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긍정적, 낙관적 기대를 하는 것이 항상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런 긍정이나 낙관과 더불어 건설적 비관도 함께 갖추는 것이 바람직할 경우가 많다.
여행을 계획하던지, 시험을 준비하던지, 혹은 경력의 변화를 도모하는 특별한 기회에 지원을 하던지 낙관을 하되, 건설적인 비관도 함께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최상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폐해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이 재난이 언젠가는 극복될 대상이기는 하겠지만, 무턱대고 낙관적 기대만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만반의 준비가 더 필요할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이 이 상황의 전개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단지 집 밖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점과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서 다소 불편한 점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 포로들이 겪었던 그 상황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불확실 속에서 어떤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스톡데일 제독의 마음가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언젠가는 극복되고 언젠가는 이전과 같은 자유스러운 생활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낙관을 하되, 이 시기가 늦춰지면서 고통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고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비관도 냉철히 받아들이면서 준비를 하는 것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이 봄학기가 마감되고, 여름학기도 이전과는 달리 진행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을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심정적 대비를 하면서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유빈이나 혜빈이의 경우에도 봄학기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여름에도 계속 바깥나들이가 불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도록 해야 하고, 무엇보다 집에서 체력적, 심리적,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고 강한 자세로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례가 없는 의료사태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를 극복한다고 해서 다시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하는 이도 없다. 불행하고 비관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이 같은 상황이 자주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전제로 위생이나 보건에 항상 유의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대한 또다른 자료 출처:
https://bigthink.com/personal-growth/stockdale-paradox-confronting-reality-vital-success
Stockdale Paradox: Why confronting reality is vital to success
Balancing realism and optimism in a dire situation is a key to success.
bigthi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