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강의 변경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3)
원래 이 학기가 제대로 진행이 되었더라면 지난주(3/23-3/27)가 봄방학이었고, 오늘부터는 한 주간의 쉼을 바탕으로 봄학기의 두 번째 구간을 달리기 시작했어야 한다. 물론 우연히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이 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변화가 3월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난주에 예정되었던 봄방학 덕(?)에 갑작스러운 수업 변경을 하는데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나뿐 아니고, 미국의 거의 전 지역에 산재해 있는 대학들도 비슷하다. 미국 대학의 봄방학이 3월에 시행되는데 지역마다 1주에서 3주 정도 차이는 나지만 많은 교수들이 이 봄방학을 통해 학사 변경을 그나마 완충시킬 수 있다고 들었다.
수업 변경이라 함은 바로 교실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던 수업이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음을 말한다. 나의 경우에도 두 과목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수업을 맡아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변경해야 했다. (다른 온라인 수업도 있지만, 이 과목들은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특히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두 과목(조사방법론과 범죄지도)은 교실이나 컴퓨터실에서 학생들이 직접 컴퓨터나 교재 등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거나 사례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교수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 바이러스 문제로 인해 학교가 임시로나마 문을 닫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온라인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강의계획서를 마련하지 않았다.
범죄지도 과목의 경우는 거의 매시간을 학생들이 직접 컴퓨터와 범죄 데이터를 사용해서 지도를 만드는 실습이 포함되었었고, 조사방법론의 경우도 학기 중 하반기(즉, 3월 중순 이후)의 경우는 다른 조원이나 개인적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교실에서 실습 위주로 되어 있는 교과 과정을 2주 정도 사이에 온전히 온라인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고, 학교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던 모든 교수에게 강제되는 사항이었다. 이 같은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은 우리 학교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콜로라도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학교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대학의 교수와 교직원들을 위한 크로니클(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은 내가 종종 찾아가서 뉴스와 의견, 정보 등을 찾는 유용한 전문 잡지이다. 이 사이트에서도 지난 수주 전부터 이 온라인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많은 의견과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기사에 의하면 미국 교수의 절반 정도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 교수들의 갑작스러운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은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어쩌면 대학의 경우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할수도 있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많은 대학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가르칠 수 있는 인프라나 여건, 지원 부서와 인력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곳 중고등학교의 경우는, 온라인 전문 과정이 아닌 보통의 공교육 기관에서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과목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이나 과제 출제, 성적 발표 등을 위해 온라인 시스템을 사용하기는 하더라도, 수업 진행 자체를 온라인을 통해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지난 1-2주 동안 유빈이와 혜빈이의 학교 담당 교육청에서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이메일은 바로 이 같은 당혹감과 혼란 속에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 대학의 방침상 오늘(3/30)부터는 온라인으로 전환된 수업이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지난 2주 동안 이 두과목의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위해 고심을 했다. 나의 두 과목이 교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전제로 설계되어서 힘들기는 했었도, 다른 특이한(?) 과목에 비해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림이나 조각 등을 직접 실습해야 하는 것이나, 직접 운동을 하면서 배우고 평가 받는 과목들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그 어려움이 나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특수 과목"들이 어떻게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그 과정 중에서 발생했던 난제와 해결책 등에 대해서는 이후에 수많은 기사와 논문 등을 통해 공유될 것으로 믿는다.)
고심 끝에, 범죄지도 과목의 경우는 이전에 과 예산으로 구입했던 비디오 제작 프로그램(Camtasia)을 이용해서 내가 범죄지도 프로그램(arcgis.com) 사용하는 것을 녹화해서 강의 관리시스템에 올렸다. 이전에 다른 과목 준비를 위해 사용해 봤기 때문에 이번에 준비하면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래서 뭐든지 항상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하나보다.) 일단 이번 주에 사용할 것만 만들어서 등록시켜 놓았고, 이번 주중에 다음 주와 그 이후의 것을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조사방법론 과목의 경우도 애초에는 비디오 강의를 제작해서 등록시키려고 했었는데, 최근에 마음을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 강의 비디오를 제작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른 평가물도 많이 수정해야 할 판에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강의 슬라이드에 텍스트로 보강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오늘 학생들에게 이 같은 변경사항을 공지로 내보내면서 이 두 과목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마쳤다.
범죄지도 과목의 비디오는 앞으로 몇개를 더 만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남은 5주 정도의 포맷을 결정해서 학생들에게 모두 전달되도록 했다. 앞으로 학생들이 이 변환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해야 할 일이 남았다. 교수들도 단시간 내에 갑작스레 교과물 전달 방식을 전환시키면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어떤 부분을 가장 어렵게(혹은 쉽게) 받아들이는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 이처럼 갑작스레 수업 방식을 바꿔야 할 정도로 질병이나 다른 문제가 발생해서는 안되겠지만, 혹여나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큰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의 병원이나 보건기관에서의 고질적인 이슈가 드러나면서 이 사회가 않고 있었던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처능력을 통해 이 사회의 또 다른 강점을 파악하고 있다.
이 난제가 언제 풀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오면 지금 겪고 있는 과정에서 내가 배웠던 점이나 생각했던 점을 다시 한번 곰곰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