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2019 겨울여행 (Part 4)

남궁Namgung 2020. 1. 1. 04:14


나는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많은 동물들이 그들이 살아야 할 자리에서 살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우리에 갇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동물원을 다니면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은 생명력을 잃고 그들의 삶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본 것이 많다.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유빈이가 요즘 학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듣는가 본데 아마도 그 수업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재미도 있나 보다. 이곳 엘에이로 여행 오면서 이런 저런 예술 박물관을 가자고 한 것도 그 수업의 영향이 컸다. 아직까지는 그다지 큰 선호가 없는 혜빈이는 그런 선택에 별다른 저항(!) 없이 잘 따라다녀 주었다. 그렇다고 많은 박물관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엘에이를 여행하면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선택하는 그런 일정을 짜지 않는 것은, 이전에 유명하다는 곳(예컨대, 유니버설스튜디오(Universal Studio), 할리우드 거리, 각종 영화 스튜디오 등)을 이전에 이미 다 둘러 본 이유와 더불어 유빈이의 현장 학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일정 곳곳에 예술 박물관을 넣어서 다녀 왔는데, 제가 좋아하는 곳, 제가 선택한 곳을 데려다 주고 그 만족도도 높고 현장에서 배우고자 하는 몰입도도 높아 보인다. 예술에 그닥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내게도 낯익은 작품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재미있기도 했다. 예술품이 전시된 전시장 입구에 간략히 적어 놓은 설명들이 그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고, 이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그림이나 조각들 옆에 붙어 있는 설명들도 자세히 읽어 보니 재미가 있었다. 더 브로드(The Broad), 게티센터(The Getty Center), 노턴 사이먼 박물관(Norton Simon Museum) 등이 다녀온 박물관인데 신기하게 이번에는 흥미롭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2019. 12. 28), 게티 빌라(The Getty Villa)라는 곳에 가서 또 다시 이전의 동물원에 갔을 때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마와 그리스 등의 유럽에서 가져 다 놓은 각종 역사적 유물 등은 마치 아프리카나 다른 먼 나라에서 잘 살고 있는 동물을 잡아 다가 한 곳에 모아 놓은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좀 지나치게 표현하자면, 동물의 생명력을 박탈 시키는 그 동물원의 역할을 이런 전시관이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제 저녁, 혜빈이가 어찌 찾았는지 코리아타운의 유명한 식당으로 떠오른다는 아가씨 곱창을 이곳에 오기 전부터 노래를 불러, 이곳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마치 한국의 유명한 고기집의 붐비는 시간과 같이 장사가 잘 되던 이 가게는 솔직히 나의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았다. 그래도 그 유명세를 타는 핫플레이스(hot place)에 와 있다는 신기함 때문인지 유빈이와 혜빈이는 맛나게도 잘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한국 서점에 들렀는데 이 곱창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딩 안에 위치해 있었다. 빌딩 근처에 주차가 어려워 가족을 내리고 블럭을 한바퀴 돌아 뒤에 노상 주차를 하고 건물로 들어 갔는데, 1층에는 H 마트라는 한국 마켓 체인점이 위치해 있었고, 층마다 한국 상점과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혜빈이와 다른 한국분들로부터 들어 알게 된 유명 팥빙수 가게는 물론 사람들이 거의 꽉차 있는 짬뽕 가게 등 많은 곳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처럼 먹고 마시는 것들이 밀집한 장소에 아직도 과거(?) 형태의 서점이 운영 중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아내는 이곳에서 새로운 성격책을 산다고 고르고 있었고, 나도 뭔가 구입할 책이 있을까 싶어서 둘러 보다가 이전에도 재밌고 유익하게 읽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과 2권을 골랐다. 모두 중고책인지라 한 권당 6불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이어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또한, 이 도시에 와서 지금까지 실컷 배를 불렸으니 이제 마음과 머리도 불리는 균형있는 여행이라는 합리화를 시키기에도 좋은 구입이었다. 


어제 호텔에 와서 자기 전에 몇 페이지를 끄젹였는데, 이전 초판에 저자가 적었다는 글, 그 중에서 책을 시작하는 부분에 쓰여 있던 글이 눈에 들어 오고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

198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한 관계자가 내게 한국의 박물관 실태를 물어왔을 때 내 대답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서구의 미술관들은 경쟁적으로 그 규모의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시대의 산물로 한결같이 "이국 문화의 포로 수용소"일 뿐, 낱낱 유물의 생명력은 벌써 잃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혹독한 자기비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유홍준, 10쪽)


물론 예술품을 도시에 가져 와 전시함으로써 인간의 예술에 대한 욕구에 그 역사를 몸소 느끼게 하는 등 이 같은 장소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도 수많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예술품이나 작품들, 고대, 중세, 근대의 물품들이 그것들이 그려지고 만들어진 곳에만 위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은 그 산지를 떠나서 전시되고 보관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감상됨으로써 그 가치를 더욱 발휘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발생했던 아이시스(ISIS)와 같은 테러집단의 고대 문명에 대한 몰지각한 말살 행태를 본다면, 그 보관과 관리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개인이나, 기관, 나라 등에서 다룰 때 그 생명이 더 길어질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영박물관 같은 유명 박물관에서 이집트나 로마, 혹은 다른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던 예술품이나 생활용품, 심지어 건물의 일부나 전부를 옮겨다가 보관 하거나 전시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적절치 않은 문화재 침탈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게티 빌라와 같은 장소와 기회를 통해 수십만 마일이 떨어진 곳에서 발생하고 지속되었던 사회나 문명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대단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예술이나 고대 문명에 대한 문외한으로서의 단견으로는 이 같은 문화재의 생경한 환경이나 지역으로의 유출은 신중히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다만, 이 같이 어색한 장소에 전시된 과거의 예술 작품이나 물품들을 볼 때마다, 강대국들이나 일부 예술을 사랑하는 개인들이 성취한 다양한 예술품의 수집과 그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부럽다 못해 우리의 수준을 작고 작게 만드는 위축감까지 생기게 한다. 유홍준 교수가 저 같이 비평한 것이나 내가 박물관을 동물원에 비유하는 것은 어쩌면 이 같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져 왔고, 좋아지고 있으니 우리의 문화유산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관리와 보관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알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노력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게티(J. Paul Getty)가 자신이 축적한 부를 허투로 사용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영향력있는 사람들도 문화 예술에 투자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환원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