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빈이 사는 법

The Battle of Myeongyang

남궁Namgung 2019. 5. 16. 03:19


지난 한 학기 동안 유빈이가 들었던 수업 중의 하나는 National History Day라는 것인데, 같은 이름의 전국 발표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 과목 담당 선생님(유빈이의 영화학과 담당 선생님이셨는데, 지난 해 퇴직 후에도 계속 임시 교사로 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이 이 과목을 듣는 학부모들을 모두 불러 간담회 비슷한 모임을 갖기도 했다. 지금까지 유빈이가 몇년 동안 이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수업 전에 학부모를 불러 과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그때만 해도 이 과목이 어떻게 운영되고, 도대체 그 행사에 어떤 식으로 참여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시간이 다가갈 수록 그 내용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말한 협조라는 것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성격상 학생들만의 힘으로 완성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학부모가 돕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우리나라나 여기나 별다름이 없다.)


National History Day라는 행사는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서 생긴 것인데(https://www.nhd.org/), 학생들이 포스터나 페이퍼, 다큐멘터리, 웹사이트, 공연 등의 형식으로 그들이 연구한 것을 보인 후 심사를 거쳐 수상하는 것이었다. 각 주별로 지역 심사를 거친 후, 지역 심사에서 선발된 작품(혹은 연구물)들은 주 대회에 참석하여, 이곳에서 통과된 것은 워싱톤 DC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여하는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지난 몇달 동안 유빈이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별 말도 없고, 가시적인 것도 없어서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역 대회가 다가올 때 즈음에서야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대회는 3월 30일에 덴버 다운타운에 있는 역사 박물관에서 열렸는데, 그때 제출할 포스터를 집으로 가져와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유빈이는 제 친구(한 학년 아래)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었는데, 주제도 "이순신의 명량해전(The Battle of Myeongyang)" 을 선정해서 작업해 오고 있었다. 리서치와 자료 수집은 친구와 같이 했지만, 수집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보드에 붙이는 것은 거의 저 혼자 해 오고 있었다. 몇년 전에 명량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때 가졌던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혹은 제 생각에는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이 행사의 주제인 "비극과 승리(Triumph & Tragedy)"에 잘 부합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제작 중인 보드(Exhibit)를 집으로 가져 왔는데 제 엄마가 보다 못해 이 보드 만들기를 돕기 시작했고, 유빈이도 평소 같으면 제 부모가 작품에 손대거나 잔소리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때만은 아무 소리도 안하는 것을 보니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듯 싶다. 내가 작년 10월 경에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는 유빈이가 이미 아이디어를 생각해 놓았었고, 한국에서 거북선을 조립하는 것을 사오길 부탁해서 크지 않은 것을 사와 나도 그 조립하는 것을 도왔다. (사실 이것은 나의 누나가 사 주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용물이 하나둘씩 보드에 붙여지면서 제법 그럴싸해 보였고, 그림이나 내용도 어느 정도 흐름에 맞춰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순신의 명량해전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용이 다소 진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지역 대회에 이 보드와 거북선 모형을 갖고 출전했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발표는 오후 2시가 넘어서 있었는데... 웬걸... 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유빈이와 그 친구의 이 작품이 해당 부문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빈이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아 행사장에도 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왔는데 그 친구가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와 아내는 그 주제에 대해서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곳의 심사위원들은 그 주제와 전시 내용물들이 신선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해서 지역대회에 뽑혔기에 주 대회에 나가기 위해 다시 내용물을 업데이트 했고, 그 대회가 지난 5월 4일에 우리 캠퍼스와 공유하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대학(University of Colorado-Denver)의 한 건물에서 있었다. 


나도 이 행사장에 가 보니 콜로라도 주 곳곳에서 참여한 학생들의 작품은 가히 무슨 미술품 공모전을 보는 듯 화려했고, 그 내용물이 뛰어나 보이는 것들도 꽤 많았다. (물론 나는 전시물(Exhibit) 부문만 참관했기에 다른 분야들의 작품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학생들과 부모들의 관심도를 생각할 때 다른 분야의 작품들도 상당 수준의 것들일 것임이 분명하다.)


행사 진행은 이전과 동일한 듯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 심사위원들이 작품 앞에서 몇가지 질문을 하고, 리서치 작품을 살펴 본 후 심사를 해서 통보를 하는 순서였다. 첫번째 라운드와 최종 라운드로 이루어졌었는데, 운 좋게도 다시 첫번째 라운드를 통과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깝게도 두번째 라운드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3위를 했다. 1, 2위까지만 워싱톤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를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아쉽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막상 대회에 나가고 보니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쉽게 변해 버린다!)


그래도 제가 들인 공을 인정 받고 메달과 상장이라도 받아 오니 참으로 대견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를 갖고 저희들끼리 리서치를 하고, 심지어 임진왜란과 관련한 영문 책을 쓴 캐나다인과 전화로 인터뷰까지 하는 그 정성을 알고 나니, 나도 내 자식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것 같지 않다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된다. 



거북선을 사 준 누나에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줘서 고맙게 잘 쓰고 있다는 말을 전했더니, 이런 것이 부모 노릇 하는 재미 아니겠냐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