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빈이 사는 법

IBUK (The North)

남궁Namgung 2018. 12. 29. 11:26


가까이 지내던 한 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말씀을 하시다가 들은 이야기가 요즘에 가끔 떠 오르곤 한다. 지금은 이 분 아드님이 성장해서 결혼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아드님이 중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들었던 것 같다. 이 아드님이 축구를 꽤나 잘 했다는데 나의 지인과 그 사모님께서 그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도 아드님이 자기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서 관람하는 것을 싫어해서 경기장 근처에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수 없이 했던 방법이 운동장이 멀찍이 보이는 2층 (혹은 3층) 교실에서 몰래 지켜 보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유빈이나 혜빈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인지라 이 애들도 그럴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유빈이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나나 아내나 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해도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에 올라 오는 학교 성적이 전부일 때가 많다. (그래도 아직 혜빈이는 학교 생활을 물어 보면 제법 얘기하는 편이지만, 언제 또 저 만의 굴 속으로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학기 말에 학예회, 혹은 프로젝트 발표회가 있어 그런 행사에나 가서 봐야 유빈이를 포함한 또래 애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단면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유빈이 학교가 방학을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 12월 14일, 학교에서 유빈이 과의 영화 발표회가 있었다. 금요일이고, 혜빈이가 하는 배구팀의 연습도 시간이 겹쳐 약간 분주한 날이기는 했지만 고등학생들 작품을 발표하는 후반부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이번 학기의 고등학생 (9학년, 10학년)의 작품은 유명 감독의 작품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과 다큐멘터리 제작이 있었는데, 유빈이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를 했다. 


사실, 지난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저희 과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팀 선정을 위한 주제 발표와 투표가 있었다고 한다. 유빈이는 우연히 나와 대화를 하던 중에 이곳 콜로라도에도 6, 25 전쟁 중에 탈북해서 남한으로 왔다가 이곳까지 이민 온 분들이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고 이 분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넌지시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주제 발표에 이 내용을 프리젠테이션 해서 과의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다큐멘터리 제작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들은 것이 몇달 전이었다. 


그래서 유빈이가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다른 임무를 맞게 되는 팀원도 선정이 되어서 어느 정도 구상을 했고, 나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즉, 제가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이곳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 어른들을 섭외해서 인터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구원 요청"이었다. 사실 이전에 유빈이와 다큐멘터리 얘기를 하던 중에 나의 아이디어를 살짝 비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이 지역의 한인 신문에서 탈북민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언뜻 읽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역신문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의 한 교인분이 있었는데, 그 분을 통해 여러 탈북민 어르신들을 섭외하고자 계획했고 사실 어른들을 유빈이 프로젝트에 모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황혼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에게 다가가서 그 분들의 예전 얘기를 듣고 싶다고 부탁하면 모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줄 것이라고 근거없는 가정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헤아림은 나의 순진한 추측일 뿐이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아직도 민감한 남북 문제를 거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많은 어르신들이 이 점에 대해서 무척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탈북민 어른들의 모임에 가서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그 외에 다른 경로로도 부탁을 드렸지만 민감한 문제를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시는 것에 대해서 모두 거부 반응을 보이셨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해 못할 반응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두분께서는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시는 것을 허락하셔서 유빈이가 미리 준비했던 질문을 바탕으로 짧은 문답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중 한분은 계속되는 부탁에 유빈이를 위해서 특별히 해 준다는 격려의 말씀을 곁들이셔서 그 고마움에 어쩔 바를 모를 정도였다. 


아무튼, 그리해서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그 나머지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나와 아내에게 다시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저 제 팀원들과 잘 만들고 있다는 간단한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목을 "이북 (Ibuk)"으로 했다는 말만 인심 쓰듯 얘기한 것이 추진 경과에 대한 보고의 전부였다. 






그리고 최종 작품을 유빈이 과의 발표회 날에야 가서 볼 수 있었다. 도대체 한국의 근대 역사나 실향민, 탈북민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터인데 어떻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지 무척 궁금하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부모로서, 그리고 그 극장의 (아내를 제외하면)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유빈이 순서가 되었을 때는 약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다소 긴장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최소한 내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왔다. 


제 말로는 새로운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해서 학교 선생님이 꽤 도와주셨고, 팀원과 다른 과 학생들이 다큐멘터리 중간의 그림도 그려서 넣었다고 하는데, 아직 고등학교 저학년이고 이제 막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해서 배웠을 것을 생각한다면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였다. 물론 중간중간에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는 부분 등 일부 질적 향상을 꾀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만든 제작자들의 배경과 경험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내 자식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 발표한 네편의 다큐멘터리 중 스토리나 이야기 구성 등에 있어서 단연 시선을 끄는 작품으로 여겨졌다. 


행사가 끝나고서도 유빈이 친구 부모 몇몇이 유빈이에게 잘했다고 격려해 주는 모습을 보니, 이런 것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아닌가 싶은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번역가로서 나중에 크레딧에 등장도 하니 나 스스로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해서 보람된 작품이다. 



IBUK_24FPS_Converted from DSA Video Cinema Arts on Vimeo.




학교 행사로 인해 몰래 어디로 숨어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지 않아도 일부는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고, 무엇보다 저렇게 가시적인 작품, 나중에까지 남을 수 있는 영상으로 제작이 되어 더 가치가 있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