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E 학생의 경우

남궁Namgung 2018. 5. 23. 00:46

몇 주 전이었다. 이전에도 나의 다른 과목을 수강했던 한 여학생이 2-3살 정도 되는 남자 아이를 앞으로 안은 채 눈에서는 금새라도 떨어질 듯한 눈문을 머금고 내가 교실로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 랩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머리도 좀 허틀어 지고, 화장기는 전혀 없는데다가 옷도 외출복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편한 차림이어서 처음에는 그 학생을 알아 보지도 못했다. 


그 학생은 (E라고 칭하겠다) 이전 나의 다른 수업에서도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했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는데, 지난 학기 초에만 해도 아주 성실한 듯 보였고, 교실에서도 대부분 거의 앞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경청했었다. 수시로 있는 과제도 제때에 시간을 맞춰 제출하곤 했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때인가부터 한번, 두번씩 수업을 빠지더니 연속으로 두세번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학생이 나를 직접 찾아 온 것은 바로 이 같은 결석이 그 과목 (조사방법론)의 그룹 프로젝트 성적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기 초반에 학생들을 3-4명씩 나누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발표 하는 그룹 과제를 내었는데, 이 학생은 그 중간 중간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그룹 프로젝트 발표에까지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룹 프로젝트는 상당히 비중 있는 과제 중의 하나다.)


이 때문에 봄 학기만 잘 마치면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이 불투명해지자 나를 만나 그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E 학생에 따르면, 학기 초만해도 가정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몇 주가 지나면서 자기 약혼자와 함께 키우던 아이가 자주 아프게 되고, 어떤 때는 자기 본인도 아프게 되면서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약혼자는 풀타임으로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자기나 아이를 낮동안에 돌봐 줄수가 없어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면서 아주 구체적인 상황까지 내게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가 응급실에 몇차례 방문할 정도였다면서 진단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E는 본인 스스로 자기는 그리 나쁜 학생이 아니라면서, 응급실에서도 과제 제춡기한을 맞추기 위해 다른 그룹원에게 연락할 정도로 그룹 과제에 최대한 참여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과제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다며 내 사무실 의자에 앉아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 뜨렸다. 


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 아이는 게임기를 만지거나, 혼자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나의 좁은 사무실을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며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E는 나를 방문한 그 날도 학교에 있어야 할 형편이 아니라 집에서 아이와 함께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학교에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E에게 학기 첫날 설명했던 내 과목의 방침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 주고, 남은 기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하면 이 과목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였다. 무엇보다 다른 그룹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그룹에서는 제외되었고 남은 기간 동안 그룹과제를 혼자 수행하고 발표까지 마치면 불참으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 될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E도 나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눈물을 멈추고 자기가 앞으로 해야 할 일과 과제 내용, 발표 방법 등에 대해서 묻고 어느 정도 길이 보였는지 다음에 질문이 있으면 다시 연락하겠다면서 나의 사무실을 나섰다. 




항상 지나고 보면 한 학기는 이리도 짧다. 중간에 끼어있는 방학과 기말고사 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16주인데, 매 학기를 거듭할 수록 이 기간이 정말 빨리도 지난다는 것을 번번히 절감한다. 


그리고 매 학기 중에는 이 앞에 설명한 바와 같은 다양한 학생들의 이야기와 사례들이 펼쳐진다. 이번 학기에도 가족 구성원 중의 한명이 사망하여 장례식을 참여해야 한다거나, 임신 중인데 학기 중에 출산을 해서 일부 수업 과제를 제 시간에 낼 수 없다는 사전 통보, 큰 사고를 당해 턱뼈가 부러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등의 여러가지 경우가 있었다. 


(그 당시의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처음 두세 학기 동안에는 학생들의 고충 상담 혹은 예외적인 처우의 요구 등을 진심으로 듣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교실에서 모범생처럼 행동하는 학생들의 요구는 진정인 것으로 짐작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핑계"나 "구실"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학기, 한 학기를 거듭할 수록 나의 그 같은 판단은 섣부른 예단과 편견이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여러가지 유형의 핑계를 꾸며서 과제의 제출 기한을 연장하거나 참가하지 못한 시험을 다시 치를 수 있도록 요구하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학생들은 E의 경우와 같이 진정으로 어려움이 있어 학교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과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아주 소수의 학생들 때문에 진정으로 (가정이나 직장에서) 도전 받고 있는 학생들이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흔히 비전형적 학생(non traditional students)이라 부르는 성년 학생들이 적지 않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해서 전임학생(full time students)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후 어떤 이유에서건 학교라는 곳을 떠났다가 수년 후, 혹은 수십 년 후에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학구열을 불태우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나의 수업에만 해도 20대 중반에서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인 학생"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50대나 그 이상의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부양해야 할 가족과 다녀야 할 직장이 있는 채 인생에서의 "제2의 기회(second chance)" 혹은 순수한 학문에의 호기심으로 상아탑에 돌아와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물론 E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이제 이 학교에서 만 5년을 교수라는 직책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으니, 강단에 서서 내가 아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아직까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대단히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과의 한 나이든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기한테는 세상에서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나는 그 수준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종과 환경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권"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자 그룹 프로젝트를 마친 후 졸업하게 되는 E를 바라보는 경우는 그 한 부분일 뿐이다. 많지는 않지만 학기를 끝낸 후 좋은 것을 많이 배웠다고 일부러 이메일을 써서 보내는 학생들의 글을 읽을 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며 추천서를 부탁하고 이후 원하는 대학원에 합격했다며 소식을 전할 때 등등 젊거나 나이든 학생들의 성장을 가까이 지켜 보는 일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우리 과의 장학금 수상자 선정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지원 학생들의 지원서를 모두 살펴 본 일이 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나 미국에서의 신분의 이유, 가족의 불화 등으로 고통을 받았거나 받고 있고, 그런 와중에도 그 같은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 교육을 위해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졸업식 단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격한 감동의 표정을 짓고 내려오는 학생들에게는 모두 그만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아이비리그나 다른 좋은 대학에서 근무하는 것도 그 나름의 보람과 자부심이 있겠으나, 힘든 과정에서도 교육만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힘겹게 수업시간에 들어 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의 일도 만만치 않게 소중한 일이이라는 것을 절감한, 그런 값진 학기였다. 



<이번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과의 다른 교수가 찍은 사진을 보니 아는 얼굴들이 꽤 많다. 

그들의 성취를 축하하며 앞날에 더한 성공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