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빈이 사는 법

To be continued...

남궁Namgung 2017. 5. 30. 01:14


아침 9시 반. 집에서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맥도날들에 와 있다. (2017. 5. 29.)


꽤 넓은 내부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시간도 아침을 먹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오늘이 이곳 현충일 (Memorial Day)이라서 더 그럴 것 같다. 메모리얼 데이가 월요일이기 때문에 보통은 전주 금요일 부터 긴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쉬거나 집 밖 휴양지로 짧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이 아침은 홀로 한가한 "휴가타임"을 보내고 있다. 아내가 집에서 지인과 모임을 갖는다며 자리를 비워 주었으면 하는데, 집에서 애들도 모두 데리고 있는다고 하니 조용히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내가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ㅎㅎ


유빈이는 며칠 후에 방학이지만 혜빈이는 지난 주 수요일에 졸업식을 했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이곳은 "졸업," 즉 뭔가를 마친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Graduation 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주로 초중등학교에서는 Continuation 이라 해서 학업은 계속 이어진다는 표현으로, 고등학교에서는 Commencement 라는 말을 써서 배우는 일은 이제 시작이라는 메세지를 학생들에 주려고 한다.


아무튼 혜빈이는 초등학교를 세군데나 다니면서 이번에 졸업했다. 유치원은 세인트루이스에 살때 1년을 다녔고, 이곳으로 이사와서 아파트에 살때 근처의 학교에서 1학년을 보냈으며, 이곳에서 2학년부터 5학년까지 4년을 다니다가 졸업했다. 절친 (이곳 말로 BFF)도 몇명이 생겨 서로 집을 옮겨가며 친구 집에서 자다 놀다 하는 것도 종종 하고, 생일파티를 초대받거나 초대하는 등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흐뭇한 일이 많았다. 학교에서도 매주 아침 일찍 시작하는 합창단에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는 열심을 보였다. 





5학년 때는 "친구 교사 (peer teacher)"라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저학년 학생들 (유치원생)의 교실로 찾아가 그 담임 선생님을 돕는 일에 아주 성실했었다. 그러고 보면 혜빈이 덕에 이곳 야구장에 찾아가 구경도 해 보고, 이곳 저곳 학교 밖의 합창단 활동에도 쫓아 다니면서 바람도 쐬었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거의 모든 일을 제가 알아서 하려는 타고난 성품이 어떤 때는 어린 아이 갖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얼마 전, 졸업식 전날 peer teaching을 마무리 하는 조그만 행사가 학교에 있었는데, 그곳에 참석해서는 혜빈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밖에서 나의 지인과 대화를 나눌 때 다소 내성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이날 행사에서의 혜빈이는 내가 집에서는 보지 못한 아주 새로운 모습이었다. 


피어 티칭 선생님은 약 30여명이 되는 학생들을 일일히 앞으로 불러 내어 그 학생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조그만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혜빈이도 앞으로 불러 얼마전 스펠링 테스트 (Spelling bee)에서 맞히지 못한 단어와 관련된 티셔츠를 주셨다. 그리고, 컴퓨터실 선생님이 컴퓨터 청소를 아주 잘해서 앞으로 학교나 직장을 잡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추천서를 써 주었다면 그것까지 건네 주었다. 물론 재미를 위해 선생님이 쓴 편지였고, 다만 혜빈이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성실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혜빈이는 편지를 꺼내 읽어도 되냐고 피어 티칭 선생님에게 묻더니 그 편지 내용을 앞에서 읽어 내려갔다. 학교의 식당에 거의 100여명이 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었는데, 전혀 긴장한 내색없이 큰 목소리로 편지를 읽고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좀 수줍어 하고 긴장하거나 떨려할 줄 알았더니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제가 오랫동안 배웠던 선생님과 함께 놀고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들이 같이 있었기에 좀 편했으리라는 짐작이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주 자연스런 말과 행동으로 자신있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좀 놀라면서도 무척 뿌듯했다. 저런 자신감을 계속 간직한 채로 중고등학교, 아니 그 이상을 마쳤으면 좋겠고, 분명 그렇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채 세살이 되지 않았던 애가 이제 중학생이 된다. 혜빈이의 성장과 발전은 계속 될 것으로 믿는다... 




이제 긴 여름방학을 보내고 중학생이 될텐데 어쩌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지, 중학교에 올라가면 숙제가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서 걱정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 걱정은 그때 가서 하고 이제 시작된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