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학기를 마치면서
다행히도 살면서 어떤 것들은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만사가 원하는대로 다 이뤄지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미 여러차례 경험해 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가다 원래의 계획한대로 일들이 진행되면 더 신기하고 감사하게 생각된다.
유빈이가 이번 학기에 다운타운 근처로 중학교를 옮기면서 우리 가족의 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유빈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 만나고 학교 생활을 해야하는 것이 제일 큰 변화이겠다. 제가 아주 기분이 좋지 않은 이상 학교 일을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래도 학교를 가고 올때의 기분이나,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잘 안착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변화는 아침 기상시간이다. 일찍 자고 일찍 깨는 혜빈이를 제외하고는 온 가족이 "아침형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유빈이가 이전에 다니던 학교는 집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고, 학교도 8시가 거의 다 되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7시 정도에 일어나도 아침 먹고 학교를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새로 옮긴 학교는 막히지 않아도 25분 정도를 차를 몰아 가야 하고, 학교가 시작하는 시간도 7시 40분으로 더 일찍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7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학교 시간에 맞출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늦어도 6시 정도에는 일어나야 한다.
보통은 5시 45분 정도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깨고, 잠시 침대에 앉아 5분 정도 더 누워 있을까 그냥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하고 처절한 자기 고민을 하다가 침대를 나오곤 한다. 유빈이를 깨워 씻게 하고 나도 씻고, 아내는 내려가서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요즘 우리의 아침 일상인데, 생각에 따라 1시간 먼저 일어나는 것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한시간의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또 다른 생활의 변화는, 나의 직장이 다운타운에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내가 학교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운타운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유빈이를 7시 20분 정도에 내려 놓고 다시 서쪽에 있는 내 사무실로 가려면 또 다른 30분 정도가 소모된다. 집에서 7시 전후에 나와서 내 일터에 도착하면 8시 전후가 되니 아침에 거의 한시간 정도를 운전으로 보내고 있다. 물론 뉴욕이나 엘에이 같은 큰 도시에서는 이 같은 시간이 별것 아닐 수 있고, 우리나라의 서울이나 큰 도시에서도 한 시간 정도는 예사로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편히 전철에 앉아서 창밖을 보며 다니던 지난학기까지의 출근길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변화임은 틀림없다.
그래도 이번 학기에 수업 일정을 잘 조정해서 내가 유빈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데 아주 시간이 잘 맞았다. 월요일과 수요일에 있는 아침 수업은 9시 반에 시작하고, 오후 수업은 12시 반에 시작해서 아무리 늦어도 1시 정도에는 끝나게 일정을 맞췄다. 그래서 유빈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내 사무실로 오더라도 한숨 돌리고 커피 한잔 하고 수업 준비를 해도 시간이 여유가 있고, 오후 수업이 끝나고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유빈이를 데리러 가도 학교가 끝나는 2시 50분에 잘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번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내와 여러차례 상의를 하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고, 학과에서도 내 수업 일정과 다른 교수의 수업 일정이 겹치는 것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잘 진행될 줄은 기대하지 못했었다. 중간에 내가 격주마다 회의가 있는 수요일에는 아내가 따로 와서 유빈이를 픽업해야 하고, 내가 아프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면 그때도 아내가 움직여야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전략적으로" 일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학기에 진행된 이런 일정이 괜찮기에 다음 학기의 내 수업도 이번 학기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으로 맞췄는데 별다른 사정이 없으면 이번 학기와 마찬가지로 잘 진행될 것이라 믿고 있다. 애들은 겨울 방학을 하려면 아직 며칠 남아 있지만, 나는 (몇몇 행정적인 일들은 제외하고는) 오늘로서 실질적으로는 학기를 마쳤는데, 그래도 생활의 많은 면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대로, 계획대로 진행된 것들도 있어서 뿌듯한 감이 있다.
한국으로 방문하는 Study Abroad 프로그램과 온라인 수업 한과목 때문에 이번 학기의 대면 수업은 두과목이었는데, 이 두과목의 기말고사가 오늘이었다. 어떤 때는 기말고사의 일정도 잘 맞지 않아 며칠을 학교에 나와서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행 이번 학기는 같은 날에 잡혀 있어서 오늘 하루만 출근하면 이번학기의 시험일정은 모두 마치게 된다. 온라인 과목은 토요일까지 계속 온라인 시험이 진행되지만 아직가까지 별다른 이슈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 조용히 학기가 마무리 될 것이다.
만으로 3년 반을 가르쳤고 햇수로는 4년이며, 학기 수로는 이번 학기가 벌써 일곱번째 학기였다. 나는 대면수업을 하는 과목도 문제를 모두 온라인으로 만들어서 컴퓨터 실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치게 하고 있다.
조사방법론 과목은 오전 9시 반에 그리고 두번째 과목 시험은 12시 정오에 있었다. 마치 자동차 운전 면허시험을 치는 것 같이, 혹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하는 것 같이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번 학기를 어떻게 마무리 하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생각해 봤다.
어떤 면으로 생각해 보면 언제부턴가 이전 학기 보다는 다음 학기에 가르치는 수업의 "품질"이 스스로도 만족스럽게 생각되었고, 학생들의 반응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번 학기는 이전 학기와 거의 동일한 수준, 즉 전보다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을 유지(혹은 답보)한 정도에 그친 학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한 학기 동안에 사회가 아주 급변하고 강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학문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것을, 이전의 방식대로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스스로 좀 엄격히 생각해 본다면, 이전 학기에 투자했던 시간이나 관심을 이번 학기에도 그대로 들였다면 더 나은 수업이 되고, 학생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내용과 방법들이 전달될 수 있었지 않았나 평가할 수도 있겠다. 이전에 한시간 두시간을 들여 강의를 준비했다면, 이번 학기에는 반 시간이나 한시간이면 이전과 비슷한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이 투자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것이다.
<엊그제 덴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방학 동안에 교수법과 관련한 책만 읽더라도 학생들 가르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법과 관련된 이론과 리서치 뿐 아니라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예도 알려 주고 있어서 방학 동안에 훑어 볼 생각이다.>
물론, Study Abroad 같이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실행시켜 (1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나 스스로도 상당한 만족감을 갖게 했던 것은 긍정적인 발전으로 생각하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가 될 지 모르겠지만,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목이 될 수 있음도 확인했다. 또, 그저 건물을 둘러 보고 가이드나 기관의 직원들에게 설명을 듣는 것 이상으로 더 유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도 요즘 가다듬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이런 저런 핑계로 학문적인 글쓰기에 다소 소홀히 했던 점은 한참 아쉽다. 겨울 방학과 다음 학기로 이어지는 연말 연시 동안에 한해를 정리하고 다음 한해를 계획하기도 해야겠지만 그 중의 가장 큰 부분의 하나는 앞으로 반년, 1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어떤 학문, 학술, 저술 활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내가 벌써 40대 중반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그 "40"이라는 숫자에 아직도 놀라지만, 이와 비슷하게 벌써 7번째 학기를 마쳤다는 사실을 되새김하면서 그 "일곱"이라는 숫자에도 깜짝 놀라게 된다. 가끔이라도 되돌아 보고, 지금을 살펴 보고, 앞을 헤아려 보지 않으면 이렇게 깜짝 놀라는 그 "충격"의 강도가 더 셀 것이다.
내가 40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내가 삶에 원숙하고 노련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듯이,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내가 좋은 선생, 좋은 학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삶을 돌아 보고, 그 평가와 반성에 따라 사는 방식과 방향을 조정해야 할때가 있듯이, 내 한해의 직장에서의 삶을꼼꼼히 따져보고 잘잘못, 혹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찾아 계속 가다듬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제 일곱번째 학기를 마치지만 금새 열번째 학기, 10년째 학기를 맞게 될 것이다. (2016.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