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잘 될 것으로 믿어라.

남궁Namgung 2016. 11. 19. 03:35


꼭 다음날 소풍을 앞둔 초등학교 4학년생처럼 잠을 제대로 못잤다. (2016. 11. 17.)


어제도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드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중요한 날에 알람이 울리지 않아 약속 장소에 늦게 된다면 큰일도 이런 큰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사용하는 라디오 겸용 알람은 물론 나와 아내의 스마트 폰까지 모두 5시 20분에 맞춰 놓고 불을 껐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중간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1시 15분이다. 화장실에 잠시 다녀와서 자리에 다시 누웠는데 잠이 도저히 오지 않는다. 30분이 되었을까, 1시간이 되었을까… 


잠이 오지 않아 그대로 일어날까 하다가 오늘 피곤하면 안될 것 같아 억지로 누었더니 다시 잠에 들기는 했었나 보다. 


그래도 5시가 채되지 않아 깨었다. 간단히 씼고, 어제 아내가 준비해 놓은 누룽지를 얼른 끓여 먹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방에 담아갈 짐은 아내가 어제 꼼꼼히 싸 놓았기 때문에 노트북 등 몇몇 내 물건만 기내로 들고갈 가방에 넣으면 되었다. 


잠시 후에 유빈이도 깨워서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여권 등 가장 중요한 서류 등을 마지막으로 챙겼다. 


학생들과는 덴버 국제공항에서 7시 정도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6시 20분에 출발해야 했다. 아내와 유빈이에게 어제밤부터 몇차례 얘기를 했고, 다행 유빈이가 잘 따라 주고 아내가 짐을  잘 챙겨놓아서 제시간에 집에서 출발했할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북쪽으로 향하는 I-225번만 잠시 막혔고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평상시의 교통 수준이었다. 다행 공항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못되었고, 이미 다섯명의 학생이 와 있었다. 2명은 체크인을 마친 상태였고, 나머지 세명은 나와 함께 수속을 끝냈다.  나머지 학생들도 하나둘 도착해서 11명의 학생들이 모두 게이트 앞에 모여 비행기에 올라탔다. 


거의 1년 동안 계획하고 공을 들인 나의 Study Abroad 프로그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로 이전에  내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11년 12월이었다. 이번 방문이 거의 5년만의 방문인 것이다. 박사과정 4년차에 들어선 때였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귀국했었다. 


“원대한 꿈(?)”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지 3년이 지났던 그때, 다시 방문한 한국에 잠시 머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의 주위의 친구나 동료들은 그 3년전보다 뭔가 한두발씩 모두 나아가고 있었는데,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공부를 하고 있던 나만 제자리에서 그대로 인 것같다는 초조감 혹은 불안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저 똑같이 대학원생이었고 뭔가 가시적인 성취라는 것은 전혀 없었던 때였는데, 한국에 가보니 같이 일했던 동료나 친구들은 하나 둘씩 승진을 했거나 “좋은 자리”로 자리를 옮겼고,  새차를 뽑았거나 새 집으로 옮긴 친구와 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미국에서 간혹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나 동료 이외에는 거의 소식을 듣거나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의 한국 방문에서 본 “남 잘된 일”은 나를 배아프게 했다기 보다는 가만히 그자리에 있는 나의 처지 때문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계속 하면서도 “내가 계획한 것들이 과연 모두 제대로 이뤄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가끔씩 생기기 시작했고, 논문을 쓰고 본격적인 심사과정에  들어가면서 그런 불안감+의구심은 더 자주, 더 크게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하려고 했던 것들이 모두 안되면 어떻 게 하지?” 


“이렇게 박사학위 취득에 실패하면 뭐가 남는거지?”


이런 의문과 걱정들이었다. 



논문 심사가 계획대로 진행될 때도, 걱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원래 계획이 이곳의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곳 저곳에 지원서를 내면서도 또 불안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원한 중에서 한곳도 연락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다시 한국에 돌아 가게 되면 뭐 먹고 살것이 있나?”


그러고 보면 이곳 미국에 오고나서 이런 걱정이 생기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이곳의 유학생활 과정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40대를 지나면서 생기는 나의 정신적, 감정적 변화와 미국에서의 체류가 겹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이런 걱정이 이곳 덴버에 직장을 잡아 살기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학생들을 제대로 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해야 했고, 모기지 신청을 해서 그 승인이 나는 절차 중에도 모든 것이 별탈 없이 진행될지에 대해 걱정했다. 


박사 논문이 통과되기도 전에 직장을 잡아 좋기는 했지만 막사 박사 논문 통과되는 학기 동안의 적지 않은 등록금을 해결해야 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생겼던 일이었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머물면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 이민관련 신분을 획득하는 것도준비하면서 잘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있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걱정했던 이 모든 것 중에서 나의 걱정대로 일이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 아직 어색한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쉽다거나 잘한다고 할수는 없지만 여러 교수의 도움과 이런 저런 학습을 통해서 처음 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보다는 (내 스스로는) 훨씬 낳다고 생각된다. 학기가 끝나면 고맙게도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학생들이 한둘 있는 것을 보면 완전 엉망은 아닌가 보다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집을 사기 위한 모기지 신청도 미국에 와서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운이 좋게 그간 거래했던 은행의 실적이나 신용점수 등이 양호하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직장에 고용되었다는 점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나와 아내가 원하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박사논문 심사 학기에 내야 하는 학비도 전혀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던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내 논문 심사위원이면서 학과장님이신 교수님께서 자신이 운용하는 비용 중에서 장학금조로 지원을 해 주는 큰 혜택을 내게 주셨다. 설마 하면서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지원해 주신 것이었다.  


신분 관련한 문제도 꽤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는데, 지난 주 토요일에 그 카드를 받았으니 무슨 기적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Study Abroad를 진행하면서도 이 카드를 받는 것을 전제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국적이 아닌 사람들의 해외 여행에 무척  중요한 것이다. 만약 이 카드가 없었더라면 여행이 가능은 했겠지만 미국으로의 재입국에 좀 신경이 쓰일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완전히 떨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한국에 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걱정해 하거나 불안해 하는 것의 90% 정도는 현실화 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걱정해 하는 것에 대해 전혀 통제할 능력이 없음에도 때론 지나치게 걱정을 하지만, 그런 걱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참 많다. 그리고는 계획한 대로 일이 되고, 걱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모든 일이 당연히 잘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이는 모두 사람의 간사함 때문일까…


지금 학생들과 함께 가는 이 프로그램도 여름방학 중에만 해도 그렇게 신경쓰고 공을 들인 것이 학생수 부족으로 폐강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 11명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다. 내가 학생들과 방문한다고 계획서에 쓰고, 과에서 홍보까지 했던 기관들에서 혹시나 사정상 허락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모두 잘 진행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지난 밤과 오늘 아침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항공으로 갈아타는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혹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 걱정까지 하고 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걱정”이라고 걱정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라고 덴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썼다. 비행기가 착륙준비를 하고 있어서 일단 컴퓨터를 끄고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글을 마무리 할 계획이었다. 비행기 환승도 그렇도 무엇이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했다.


원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예정시간은 11시. 덴버에서 약 20분이나 지연되어 출발했지만 도착시간을 보니 원래 예정된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비행기를 갈아 탈 시간이 한시간 밖에 없어 내리자 마자 바로 국제선 터미널로 향해야 하는데..


나와 다른 학생들이 앉은 좌석도 비행기의 맨 뒷쪽이고, 더구나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도 게이트까지 가는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비행기 바퀴가 땅을 닿은 것은 11시 10분 정도였는데, 나와 학생이 모두 나온 시간은 11시 30분. 


12시 예정 비행기에 갈아 탈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와 눈이 흐려지고, 말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에게 빨리 터미널로 움직이라고 하고 내가 앞장을 섰지만, 다시 검색대를 통과해서 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고 있어었다. 


어제 여행사의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혹시나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물어 보았더니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네 시스템을 찾아 보니 오늘 오후에는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고 내일 비행기의 경우에도 좌석이 없다는 대답을 한 기억도 머리에 스쳤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며칠 동안 인천으로 갈 수 없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모든 프로그램이 엉망이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계속 달리다 시피하면서 검색대까지 찾아 갔지만, 그곳에도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식이 있어 빨리 걸을 수 없다는 여학생 하나와 재빨리 검색대를 지나 뛰어서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다행 다른 학생들은 모두 와 있었고, 덩치가 커서 뛰기 힘든 학생들까지도 잘 와주었다. 


<덴버 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 이때만 해도 3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으니...>



<인천국제공항에서 짐을 기다리는 학생들 모습. 비행기를 갈아 타는 시간이 짧아, 우리는 비행기에 탔짐만 짐들은 실리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그저 걱정일 뿐이었다. >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학생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지 못했으면 어쩔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직도 아찔하다.>



이번 경우에는 걱정이 거의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는데, 그나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재빠르게  움직인 덕에 모두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번에도 걱정은 걱정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해서 진행될 일정 중에는 크게 걱정되는 것은 없다. 이미 여행사에서 꼼꼼히 일정을 다 짜두었고, 내가 방문하기로 계획했던 모든 기관에서 친절하고 감사하게 우리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걱정 자체가 나쁠 것은 없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걱정한다는 것도 달리 생각하면 나의 일과 생활을 계획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너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결과만을 상상하며 거기에 지나치게 매달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그야 말로 낭비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 


“최악을 준비하되 최상을 기대하라.” 


이말도 달리 표현하면 “걱정을 팔자로 만들지 말고, 어느 정도 걱정은 하되 잘 될 것으로 믿어라” 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





휴… 근데 다시 생각해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비행기 환승은 아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