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길치 탈출법

남궁Namgung 2016. 5. 18. 09:32


예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참으로 강직하고 끈질기게도(?) 길치다. 길에 큰 관심을 갖고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주 다니던 길마저도 헤맬 때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이나 대도시의 길에서는 그 증상이 더 악화된다. 


한참 전 영국에서 공부할 당시 어머니와 형을 런던 공항에서 픽업해서 잠시 관광한 후 내가 살던 집으로 모시고 갔던 적이 있다. 당시 런던의 인근 호텔에 예약을 해 놨는데, 그 길을 찾지 못해 밤에 몇시간을 런던 도로에서 헤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혹시 외국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싶어 뒷자리의 어머니와 형이 곤란해 하고 걱정하시던 표정도 기억한다. 


이후 파리와 로마를 잠깐 여행할 때도 공항에서 차를 빌린 후 밤길에 호텔을 찾지 못해서 두세시간을 방황했었다. 천생부지의 타국에서 과연 밤이 새기 전에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전했던 것은 지금에야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 있지, 당시는 대단한 스트레스 였다. 


물론, 15년 가까이 된 그때에는 GPS라는 것이 없었다. 미국 군대나 다른 첨단 기업에서는 사용하고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여전히 두꺼운 지도책이나 관광지에서 주는 전단지에 들어 있던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 다녔다. 서점에 가면 지도 섹션이 따로 있어서 지역별로 나라별로 아주 세밀한 지도책들을 팔고 있었다. 


처음 가는 관광지에서 길을 헤매는 것은 관광의 일정 중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운전자 옆에는 반드시 "조수(?)"가 지도를 펴 보며 가는 길과 교차로, 주요 건물이나 이름난 곳을 보며 목적지를 찾아 주어야 했다. 운전자와 조수가 길찾는 방식이 다를 경우나 조수가 독도법에 어둘 경우, 혹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서도 제때에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아 빠져야 할 길을 지나치거나 목적지를 지나친 경우 등등은 운전자와 조수 (대개 아내나 친구)가 다투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는데, 이런 모든 경험은 대개의 여행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길치는 이곳에 와서 치유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처음가는 길은 자주 헤매고 있고, 따라서 미리 인터넷을 찾아 주요 도로 등을 자세히 연구한 후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전에는 내비게이션,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GPS 기능으로 인해 요즘은 운전 중에 헤매는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구글맵만 보면 내가 있는 곳, 내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맛집, 주유소 등을 자동적으로 알 수 있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가고 싶은 곳 까지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방법도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만 되어 있으면 가는 중간에 교통사고가 났는지, 교통 체증이 있는지도 알 수 있고, 그런 사정을 고려해서 돌아 갈 수 있는 길도 제시해 준다. 아...정말 대단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지도를 찾으며, 이정표를 꼼꼼히 살피며, 가끔은 차에서 내려 동네에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다닐 때가 그립기도 하니...  




공부를 하면서 지리(geography)와 관련된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범죄학에서도 지역과 관련한 이론이 각광을 받은 것이 100년 가까이 되고, 최근의 경찰활동에서도 지리를 활용해서 범죄를 분석하거나, 순찰활동에 활용하기도 하고, 미래의 범죄를 예측하려는데 사용하려고 하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내가 아는 정도에서 소개하는데 그쳤는데, 올해 초부터 이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는 지리학은 물론 환경, 기후, 교통, 산림, 농업, 도시계획 등 활용되는 분야가 일일히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경찰 분야에서 활용되거나, 범죄를 분석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GIS가 활용되는 아주 작은 분야일 뿐이었다. 


과에서 교수들의 학술 활동으로 지원되는 비용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사용할까 하다가 방학이 시작되면 GIS 트레이닝을 한번 받아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학과의 교수들은 거의 범죄학회 참여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는데, 내가 의사를 표했더니 업무와 관련된 교육에 사용해도 된다고 해서 학기가 마치면 바로 시작되는 트레이닝에 등록을 했다. 


ESRI라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이었는데, 샌 안토니오 (San Antonio)에서 하는 교육을 어제부터 오늘까지 받고 지금 돌아 가려고 공항에 와 있다. (2016. 5.16 -5. 17).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틀 동안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하는 교육은 정말 "빡쎘다." 더구나 처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처음 듣는 어휘나 단어들도 적지 않아 약간 고된 교육이었다. 강사와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도 이틀의 분량이 일반 대학에서는 거의 한 학기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집중적인 것이었는지 가름할 수 있다. 


GIS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는 것은 참여한 교육생만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군인부터 역사학자, 오일 생산회사에서 온 회사원, 미국 공병부대 분석 담당자 등이 왔는데, 15명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의 수업이었다. 물론 계속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강사 한명이 이보다 더 큰 교실은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원래 이 과목을 신청하면서 앞으로 우리 과에 Crime Mapping 과목을 개설해 볼까 했었는데,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나도 아직 원숙하게 다르지 못하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리가 아닐지 고민해 봐야겠다. 방학 동안에 이런 저런 온라인 강의를 들어 볼 생각인데, 이런 강의를 꼼꼼하게 보면서 다시 구상해 봐야할 듯 싶다. 


나 스스로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비교적 빨리 이해하고 적응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능숙하지 못한 학생들은 더 고생을 할 것이 뻔한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컴퓨터 프로그램에 많이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에게 지리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도 고민하려고 한다.


두번째 과정이 7월 혹은 8월에 덴버에서 멀지 않은 센터에서 열린다.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만 운전하면 되는데, 더 배워 놓으면 꼭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연구에도 도움이 될 듯 싶어 더 받으려고 생각 중이다. 이틀 동안 배운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모르는 것이었는데,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배운다는 즐거움도 있던 과정이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교육장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았다. 걸어서 약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인데, 첫날에는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헤매고 들어갔으니...ㅠㅠ>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길과 비용, 차로 운전할 때 가야 하는 길과 시간 등을 자동을 계산해 주니 

요즘은 구글이 힘들면 힘들었지 운전자가 고생하는 것은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해서 40%를 할인 받았는데, 정상가는 1,000 불이 넘는 아주 비싼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