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Can I walk?

남궁Namgung 2016. 5. 18. 08:38


"Can I walk in May?"


이 학교에 처음와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 질문을 듣고 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문맥상 전혀 나올 수 없는 질문인데, 갑자기 "제가 5월에는 걸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은 도대체 뭐지? 혹시 "제가 5월에 일할 수 (work) 있어요?"를 잘못들었나??? 


"그게 무슨 말이니?" 라고 질문을 한 후 학생이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졸업식 때면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을 하면서 졸업생들의 이름을 일일히 호명하고,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은 단상에 올라 교장이나 학장, 총장이 수여하는 졸업장을 받아서 내려온다. 이렇게 단상을 걸어 올라갔다가 오는 과정을 그저 "walk"라고 줄여서 말하는 것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주 쓰는 단어였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때까지 쓸일이나 들을 일이 별로 없었기에 생긴 나 혼자만의 혼란이었다. 졸업생 중에는 이렇게 단상에 올라 부모나 친척,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졸업장을 받고 내려오는 것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미국의 20대 젊은이 중에서 대학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사람은 약 35%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60%가 넘는다고 하니 거의 두배에 가깝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갈수록 늘고 있어 이 수치는 점점 좁혀질 수는 있겠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대학교육에 대한 의미는 좀더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대학 학력이 없어도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에 비해 학력에 의한 차별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교육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권인지라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가장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도 있고, 대학 졸업장 없이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차별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의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체육이나,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보다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제도 혹은 문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대학 교육에 대한 차이는 분명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학업에 대한 강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유교권 국가에서 뚜렷한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남아권 (유교문화권) 출신의 이민자 자녀들을 모습을 보면 금새 확인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tiger mom들은 미국 전역에서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아 최고의 성적을 내어서, 가장 좋은 학교 (흔히 말하는 아이비 리그)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따 쏟는데, 이 같은 투자는 각종 학교에서 학업적으로 두각을 내는 아시안 학생들의 모습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같은 부모의 초헌신적인 투자가 바람직한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 타이거 맘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학부모들도 (흔히 helicopter mom이라 해서)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갈때까지 (혹은 그 이후로도 쭉) 초밀착 교육 및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투자는 동서양이 따로 없지 않나 싶다. 




학교에서는 봄 (5월)과 겨울 (12월)에 두번의 졸업식이 열린다. 봄 졸업식이 규모가 큰 편이다.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참석을 했었는데, 졸업식 때마다 우리와는 다른 몇몇 모습들이 계속 눈에 들어 온다. 


우선 위에 말한 바와 같은 "walking"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학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졸업생을 일일히 불러 학장이나 다른 최고 리더가 악수나 포옹으로 축하를 해 주고 있다. 


어제의 행사만 해도 두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이 중 한 시간 이상은 모두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였다. (실제 졸업장은 몇주 후에나 전달이 된다. 졸업 자격이 있는 학생들은 봄 학기 초에 졸업을 신청했고, 아직 봄 학기의 성적은 산출되지도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졸업증서 안에는 앞으로의 행정적인 절차나 졸업생의로서의 권리나 의무(?) 등이 명시된 종이 한장이 끼어 있다!)


또 다른 점은, 이렇게 walking을 하고 내려오는 학생들 중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이 북차오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식을 많이 다녀 본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 보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 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졸업식에서 우는 학생들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육을 끝으로 친구들과 헤어지기 때문에 졸업식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은 나의 부모님에게서나 들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육 이후에도 쉴세 없이 직장을 준비해야 하거나, 유학을 준비하고 혹은 다른 기회를 준비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졸업식을 참여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모른다. 


어쨌든, 엊그제 졸업식에서도 단상을 내려오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눈물을 훔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인종과 성별, 나이를 불문했다. 우리 학교가 non-traditional 이라고 하는 중장년 학생들이나 히스패닉 학생들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다양한 도전을 받고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학생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정부나 다른 종류의 장학금을 받아 가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풀타임으로 직장을 다니면서도 대학 교육을 마치겠다는 일념으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알고 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졸업식에 참여하는 이 학생들의 심정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식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키려고 했던 나의 부모님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우리니라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한다면 대학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경우라도 무조건 헌신하고 희생해서 자식 교육을 시키려고 하셨고,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부모님의 희생으로 공부한 나는 역설적이게도 (부모님의 헌신에 비해) 그 고마움과 대학 졸업의 감격을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다.


나 스스로도 부모가 된 지금은 부모님의 모든 열정을 이해하고 감사드리지만, 적어도 내가 졸업할 때는 그저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학교 행사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의 고마움을 오래오래 기억하면 살라고 요구하시거나 기대하시지 않으셨고, 나도 내 자식을 위해 뒷바라지 하면서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20년 전에도 당연시 했던 대학 졸업을 기뻐하고 감격하는 학생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혜택받은 사람이었나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공부했던 학생들, 졸업하면서 감사하다고 따뜻한 말을 전하던 많은 학생들의 앞날에 행운과 성취가 늘 따랐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2년간 공부를 하고 곧 귀국할 후배가 같은 날 아침에 졸업했다. University of Colorado-Denver인데, 우리 학교와 캠퍼스를 같이 쓴다. 

나는 우리 학교의 오후 졸업식을 참여햇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이 나서 졸업식에 다녀왔다. 

5월 중순인데도 초겨울인듯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졸업식 분위기는 항상 축하가 넘친다.>


<우리 학교는 작년부터 학교 캠퍼스 근처에 있는 큰 공연장 (Coliseum)을 빌려 실내에서 하고 있다.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아 오전과 오후에 나눠서 하고 있는데,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학장 등은 두번참여해야 하지만) 졸업식의 행사시간이 적어 호응도가 아주 높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