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Namgung 2016. 4. 5. 10:36

아침 출근 길에 라디오를 듣다 보니 얼마 전에 내렸던 폭설이 엘리뇨 현상과 관련이 있나 보다. 아마 조만간 다시 눈이 내릴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4월 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식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 곳, 바로 덴버다.


학교와 집은 약 22킬로미터 (14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 가끔 날씨 차이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집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학교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눈길 조심하라고 했더니 그곳은 눈이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있는 나무들은 꽤 잎파리가 올라 오고, 꽃이 피어 있는 것들도 많은데 우리 동네는 아직 꽃나무를 보지 못했다. 수종 차이가 있기도 하겠지만 분명 시내와 이곳 간의 기온과 기후 차이가 있는것 같다. 




어제는 그간 미뤄 놓은 전지 작업을 했다. (2016. 4. 3)


집 앞에 있는 나무는 제법 크기도 하고 가지들이 많아 여름 동안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잎사귀도 큼직큼직해서 2층의 유빈이 방은 여름 내내 센 햇볕을 막아준다.


그런데 마구 자라는 잔가지를 쳐주지 않았더니 지난해 부터는 땅을 향해 아래로 뻗는 가지들도 있고, 또 일부 가지는 옆집 아저씨네 집으로까지 넘어가서 가을에 낙엽을 마구 쏟아 붓기도 했다. 어떤 가지들은 유빈이 창문에까지 닿아서 보기에도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겨울이 지나고 새 잎들이 나오기 전에 전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참 전부터 갖고 있었다. 


키가 꽤 큰 편인지라 아주 위에 있는 가지들까지는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은 집에 있는 작은 톱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미루고 미루다가 작업을 한 것이 어제, 일요일 오후였다. 계획했던 봄 방학 동안에는 감기로 앓다가 그냥 지나쳤고, 그 전에도 날씨나 다른 일정 때문에 몇번이고 연기를 했었다. 곧 있으면 나뭇잎들이 날 것 같기도 해서 오후에 톱을 들고 나무에 올랐다. 아주 두꺼운 가지나 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은 아예 작업 대상에서 고려하지도 않았고, 일단 내 팔 두께 정도의 것들은 한두번 해 보니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잘라져 나갔다. 나무에 내린 후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나무의 모양을 보아 가면서 쓸데 없어 보이는 가지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


작년에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나무 작업을 하던 아저씨에게 물어 보니 집 앞의 나무는 내가 직접 해도 될 정도로 보인다면서 나뭇가지가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일단 잘라내면 된다는 아주 유용한 팁을 주었다. 그래서 어제 작업에도 가장 중요시 했던 기준은 아래도 향하는 가지들이었다. 


오랜만에 날이 꽤 좋아서 햇볕이 강한 편이었고, 또 시간 상으로 (오후 3-5시) 해가 집 정면을 비추는 시간이라서 오랜만에 육체 노동을 하면서 땀 좀 흘렸다. 특히 내 팔 두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리 많이 두껍지 않은 가지이더라도 한 손으로는 다른 나뭇가지를 잡고 내 몸을 지탱한 상태에서 한 손으로 톱질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쳐 내서, 답답해 보이는 것과 쓸모 없는 방향으로 자라는 것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아내도 작업한 나무를 보더니 전보다 많이 깔끔해 보인다고 한다. 


잘라진 나무들은 다시 짧게 짧게 자른 후 묶어서 내일 (화요일) 쓰레기 차량이 잘 수거해 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일 또한 꽤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몸이 고될 정도로 힘든 일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더구나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면서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해서 그 보람이 컸고, 무엇보다 오랜기간 묵혀 놓았던 작업을 일단락 시켜서 후련했다. 나무에 올라서 나무를 안은채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이렇게 나무에 올라와 본 것이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 노인정 앞에 있던, 어른들 말씀으로는 몇백년 되었다는 그 나무에서 놀던 것이 나무와 가까이 했던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아... 그 나무는 이름도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큰 나무였지만 애들도 쉽게 탈 수 있어서 그 나무를 타고 놀던 애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여름마다 좋은 휴식처였고. 


집 앞에 있는 저 나무도 곧 있으면 잎이 나고, 자라서 앞뜰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나무라서 여름 동안에는 한낮에도 이 곳이 컴컴하게 보일 정도로 많은 잎을 달고 산다. 비록 나무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비전문가가 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내가 해 놓은 어제 작업이 올 한해 더 풍성하고 더 푸르른 잎을 달고 나무의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주위를 살펴서 쓸데 없이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 봐야겠다. 혹 위로 자라야 하는데 아래로 자라고 있으면서도 내가 게을러서 방치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 봐야겠다. 


이제 3월도 다 가고 4월이다. 꽃이 피고, 잎이 자랄 것이고, 곧 뜨거운 햇살로 여름을 알릴 것이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시간이 안간다고,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안달했었을텐데, 이제는 하루 하루 정신을 제대로 제대로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봄이 왔는지, 어떻게 여름을 보냈는지 돌아보기도 전에 찬바람 나는 겨울을 맞으며 무심히 시간을 허송한 내 자신을 탓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