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어중간한 이민 생활

남궁Namgung 2016. 3. 27. 09:00



봄 방학이라 편히 쉬어야 할 때인데, 정말 쉬기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며 자랑하기도 하던데, 나는 한달에도 한두번씩 걸린다고 자랑(?)해야 할 정도로 쉽게 앓고 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만해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난 1-2년 사이의 가을 겨울 동안에는 적어도 두달에 한번씩 몸져 누워서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 잦은 듯 싶다. 


대중교통(전철)을 이용한다거나 많은 학생들이 모인 교실에서 일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쉽게 골골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분명 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운동을 잘 하지 않아서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고, 너무 편하게 살아 속된 말로 "나사가 풀려"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방학에 절묘하게 맞춰서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로 조여져 있던 몸이 방학과 함께 확... 풀려서 그런 것 같다는 이론이 좀 설득력이 있을 듯 싶다.  


아무튼 방학이 시작된 후 지난 월요일부터 어제 금요일까지 거의 집에서만, 그리고 거의 침대에서만 살다시피 하며 몸을 추스려 오늘에서야 간신히 제 몸과 제 정신으로 돌아 온 듯 싶다. 학생들처럼 신나게 놀지는 않더라도 뭔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몸이 아픈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맑지 않아 계속 개운하지 않게 있는 점이 제일 답답한 일 중 하나였다. 무엇을 해도 성가시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나의 의지가 약한 것도 문제겠지만) 그간 고생한 나의 몸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아주 원초적인 몸의 반응 때문일 것이다. 다음 주에 덴버에서 열리는 학회에 발표할 것을 가다듬는 일이 있지만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점은 아주 다행이다. 


그렇게 답답하던 머리 속이 오늘 아침부터 오랜만에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간 밀린 계획, 학회 발표 주제를 가다듬는 일, 다음 주 계획, 학과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구상하고 설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렇게 맑은 상태가 1년 내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는 여유가 생겼으니 지난 주 내내 휴식을 한 것이 그냥 시간을 허송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그저께 (3. 24) 내렸던 눈은 지금까지 여기서 본 눈 중에서 가장 많이 내린 눈이었던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눈 예보가 있어서 눈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벽부터 시작된 눈이 하루 종일 내려 뿌리더니 저녁에 나가 보니 많이 쌓인 곳은 40센티 이상이 될 것 처럼 많이 쌓여 있다. 


"설국이라는 곳은 아마도 저렇게 눈이 내릴 것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많은 눈이 흩뿌렸다.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눈이 그쳤고 날씨가 포근한 편이라 쌓여서 얼지 않고 저녁부터 녹기 시작했던 것은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그나마 몸이 좀 낳아진 듯 싶어 밖에 나가 눈삽을 이용해서 눈을 치웠다. 부지런한 옆집 아저씨는 자기 집 안의 보도 뿐 아니라 우리 집 앞에까지 그 많은 눈을 치워서 길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지난 번에 아주머니 혼자 치우려던 눈은 내가 대신 치워준 답을 해 준 것 같기도 한데, 그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 집을 치울 때 우리집 근처까지 치우는 착한 아저씨다. 


눈이 10센티미터 내외 정도로 쌓였다면 제설 기계를 이용할텐데, 이때 쌓인 눈은 그 작은 기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눈삽으로 30-40분을 부지런히 해 봐야 간신히 차가 나가는 길을 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옆집 아저씨가 보도를 치워주지 않았다면 20-30분을 더 일했어야 하는데 생각할 수록 고마운 일이었다. 



 

봄 방학을 주기 전 주 목요일 (3. 10)에는 가까이 아는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갑자기 머리에 작은 종양이 생겨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수술도 잘 진행되고 회복도 빨리 진행 중이시라고 했다. 덴버의 외곽에 위치한 병원은 밖에서 보기에도 아주 깔끔해 보였고, 안에 들어가는데도 무슨 호텔을 들어가는 것 처럼 내부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부부 내외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 병원은 모두 1인실로 이뤄졌다고 했고,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더 깨끗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분이 묵으시는 병실은 6층인데다 큰 창문으로 보이는 밖의 경치가 아주 좋아서 수술 후 회복에도 무척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병문안을 다녀 오면서 생각해 보니, 수년 전 세인트루이스에 있을 때 병문안을 다녀온 후로는 이번이 미국에서 두번째의 병문안인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거의 8년 가까이를 살고 있는데 병문안을 두번 밖에 다녀오지 않았다! 처음 5년간은 대학원생으로 있었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단기로 방문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겠다. 


장례식은 어떤가.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곳에서 장례식은 한번도 가 보지 않았다. 내가 직접 경조사를 챙긴 것이라고는 돌잔치에 두세번 참석했던 것이 전부였다. 


한국에 있었으면 한달에도 많은 때는 몇번씩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병문안 등이 있을 것이고 이 같은 애경사에 참석해서 친지나 친구들, 직장 동료나 지인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일이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금전적인 지출도 적지 않을 것이고. 


이곳에 와서는 이런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엊그제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부친상을 당해도 카톡으로 위로를 남기는 것이 전부이고, 가족의 생일이나 제사 때에도 날짜와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는 것이 전부다. 지난 금요일이 어머니 생신인지라 그 전 주에 가족 모두가 모여 간단한 파티를 하고 외식을 했던데 나는 그저 짧은 전화 한통이다. 


<어쩌다가 어머니, 장모님을 비롯해서 다른 가족들의 생일을 잊을까 싶어 매해초가 되면 달력에 생신, 제사를 표시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이 어머니 생신이었는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곳 목요일 오후 6시 경에 전화를 드려야 한국 아침시간(9시)에 맞는다.>


우스개 소리로 미국은 "며느리의 천국"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애경사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때로는 피곤하다는 생각도 하고, 어떤 때는 보험을 가입하는 것 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일도 많았다. 


이곳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잠잠하게 지내는데, 편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과연 전부 다 좋기만 한 일일까 라는 질문에 이르면 이런 저런 다른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한국에서 나서 30년 넘게 자라오면서 가까운 친척과 친구는 모두 한국에 있고 미국에 있는 가족이라고는 아내와 애들 둘이 전부인데, 나의 대인관계는 이 네명의 네트워크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직장 동료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있고 집을 왕래하며 파티에 참석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일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면 나와 아내야 지금까지 한국에 있으면서 명절이나 많은 애경사에 참석하고 챙기기도 했지만, 애들은 그런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해 미안한 점이다. 한국 명절은 무엇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미국 명절은 우리가 챙기지 않으니 친척들이 모여 터키를 구워 먹거나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에서 파티를 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나 경험하고 있다. 


좀 과장해서 생각하면 한국사람도 미국사람도 아닌 것 처럼 자라고 있고, 한국 문화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렇다고 미국 문화도 직접 경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어중간한 처지인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 뿐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이 사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다. 현지의 문화에 완전히 스며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래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해서 유지하지도 못하는, 그 중간지대의 삶이 바로 나와 같은 가족의 삶일 것이다. (나 스스로를 아직은 이민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이민자들과 꽤 비슷하다.) 


내가 선택한 이런 삶의 모습이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겪어 보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의 삶이라고 인정하고 이 속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행복함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