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나의 새 친구, 스티브

남궁Namgung 2016. 3. 4. 06:09

학기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몇주 후면 학기 첫날부터 기다렸던(!) 봄 방학이고, 방학이 지나면서 학기말로 향해 빨리 달릴 것이다. 


다행히도 학기 시작 전에 계획했던 대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과목은 그래도 2년 넘게 수업하고 있어서 심적으로 좀 편하고, 엊그제처럼 갑자기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거나 다른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거나 마무리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조사방법론 과목은 이제 세번째 학기라다. 매 학기마다 이런 저런 새로운 과제와 자료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에 처음 "도입"한 것들이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두학기 정도는 또 다른 방법과 자료를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해 본 것들도 다른 사람들이 해 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것들을 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지 않나 싶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매 학기마다 1, 2명 정도의 학생이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있다고 계속 들어 왔는데 아직 내게는 그런 학생은 없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손님(?)"이 생길 수 있을터이지만, 항상 학생들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공평하게 과목을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학기 경찰학 과목에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바로 영국 경찰관을 강사로 초대해서 영국 경찰에 대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소개시킨 것이다. 물론 경찰관을 영국에서 이곳으로 직접 불러서 초대한 것은 아니었고, 스카이프(skype.com)를 이용해서 화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작년 가을 학기 시작 전에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었다. 2003년에 영국에서 있을 때 내가 하던 학위 과정의 일부는 영국의 경찰관과 같이 동행하면서 그가 하는 일을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그때 레이 (Ray Jones)라는 경찰관과 "파트너"가 되어서, 레이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일을 돕기도 하고 관찰하기도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 온 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몇년 전에 페이스북에 그 친구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얘네들 개념의 friend)가 있는 것을 보고 가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학기 시작 전에 레이를 스카이프로 초대해서 영국 경찰의 활동이나 이슈 등을 전해 듣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는 레이는 적극적이었었고 화술이 좋아서 그런 초청 강사에 적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레이에게 메일로 나의 이 같은 계획을 보냈다.  


이메일을 보낸 후 답이 바로 오기는 했지만, 레이는 이미 몇년 전에 퇴직을 했고 지금은 다른 일(청소년의 인터넷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영국 경찰을 소개하자면 할 수 있겠지만, 적임자는 아닐 것이라며 조심스럽고 예의를 갖춰 난색을 표했다. 


나 혼자 스스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바로 답장을 준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답을 보내면서 혹시나 주위에 초청 강사로 해 줄 수 있는 경찰관이 있으면 나중에 소개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특별한 생각없이 그저 예의상 그렇게 마무리 한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레이가 초빙강사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며 다시 연락이 왔다. 자기와 같이 인터넷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데, 20년 넘게 경찰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이고 내가 괜찮다면 그 경찰관이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 아니 대중 앞에서 뭔가를 준비해서 말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알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라 걱정은 됐지만 레이가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먼저 이메일을 보내 정중히 의사를 물어 보았다. 학기 시작 전에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도 한 것이었는데, 직접 만나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으로 대화하는 것이었는데도 무척 싹싹해서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 스티브 (Steve Shepherd)다. 


영국 경찰관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진데, 대화하면서 예전에 레이와 같이 있었던 때가 생각날 정도로 스티브도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나의 어려운 부탁을 흔쾌히 들어 주었고, 수업 전 몇번 이메일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시간이나 내용 등에 대해서 상의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스카이프를 통해 영국에 있는 경찰관을 나의 교실에 화상으로 초대해 강의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접속이나 다른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학생들의 호응을 걱정했지만, 모든 것이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스티브가 자기 일처럼 자료를 준비하고, 장소도 인터넷 접속이 원활한 곳으로 옮기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마치 자기 수업을 준비하듯 내 교실, 내 학생들에 맞춰 영국 경찰에 대한 소개에 대한 슬라이드를 만들고 중간 중간에 동영상도 끼어 넣어 더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학생들도 색다른 경찰활동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도 많이 해서 스티브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번 학기 (2016년 봄학기)를 준비하면서 또 다시 스티브에게 부탁을 할까 여러번 망설였다. 스티브의 시간와 노력을 생각하니 쉽게 다시 부탁할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래도 지난 학기의 학생들 반응이 너무 좋아 학기 시작 전 조심스럽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역시나 문제 없다며 시간이 맞으면 충분히 다시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지난 수요일이었다. (2016. 3. 2.)


지난 번과 다른 교실이었는데, 조명도 내가 원하게 만들수 없었고 인터넷 접속도 원활하지 않아 중간에 한두번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전반적으로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스티브가 강의 내용을 새롭게 바꿔서 학생들이 더 흥미를 갖을 수 있게 했고, 이전처럼 학생들도 크게 관심을 보이며 여러가지 분야의 질문을 하곤 했다. 


강의 후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스카이프를 통해 앞으로도 해 줄 수 있는 용의가 있냐고 물었더니 언제든지 주제를 정해 얘기해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스티브와도 친구인데, 강의 전후에 자기의 강의 계획과 원활하게 마친 내용들을 올려서 자기 친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 보면 스티브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지난 학기에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는 화면이 어떻게 보이는지 보여주기 위해 화상 강의 중에 사진을 몇장 찍어봤다.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줬는데,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이고 고맙다며 오히려 내게 감사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여기 미국에 와서 영국에 있는 경찰관과 친구가 되고, 그 친구를 미국의 강의실로 초대해 화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 얘네들말로 네트워킹이라는 것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쓰여질 수 있다는 것도 몸소 직접 절감해 봤다. 


내가 레이와 스티브에게 큰 도움을 받았듯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슨 계기가 또 있으리라 생각하며 너무 큰 부채감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 특히 스티브의 대가없는 노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