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는 소소한 재미
한참동안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었다. 감기로 인해 목이 텁텁하거나 아프고, 코가 막혀 있으면서 두통이 있거나 어지러운 증상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비교적 개운하게 일어났다.
유빈이가 학교 숙제를 다 하지 못해 제 엄마한테 평소보다 일찍 (6시) 깨어달라고 해서 평소보다 아침이 일찍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창 밖을 보더니 눈이 꽤 많이 왔다며 나를 깨웠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기예보에 눈이 꽤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혹시나 싶어 침대 옆에 무음으로 놓았던 휴대폰을 보니, 어디에선가 왔던 전화가 있고 확인하지 못한 음성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낯익은 번호가 아니었지만 음성까지 남겨진 것을 보고 애들 학교와 관련된 것임을 짐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음성에는 애들 학교 교육청 산하의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 (일명 snow day)는 내용이었다. 나는 실질적으로 방학이기 때문에 출근할 일은 없지만 혹시나 싶어 나의 학교 웹사이트를 보니 대학은 문을 닫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몇시간이나 늦은 11시에 문을 연다는 공지가 첫 화면에 큼직하게 올라 와 있다.
창문을 열어보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되지 않지만 꽤 많은 양의 눈이 쌓여있었고, 여전히 가벼운 눈발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해 보니 저런 눈발이 오후 네다섯시까지 계속된다고 나와 있다.
그러지 않아도 겨울인데, 덴버인데, 왜 눈이 안오나 했더니 이제사 덴버의 겨울다운 겨울을 보는 것 같다. 학기 중이 아닌 방학 중에 와서 다행이고, 어디 나갈 일이 없는 날에 저런 눈이 와서 다행이다.
오후 세시경이 되니 그치지 않고 계속되던 눈발이 꽤 많이 줄었고, 더이상 내리지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추워져서 더 어려워지기 전에 눈을 치워야겠다 싶어 크고 두꺼운 부츠를 신고 밖으로 나가봤다. 어제부터 내린 눈이 거의 30cm 정도 될 정도로 쌓여 있었다. 이곳 덴버에서 맞는 세번째 겨울인데, 그 세번의 겨울 중에서 본 가장 많은 눈이 아닌가 싶다.
이 집으로 이사올 당시에 거라지 세일을 하는 어떤 집에서 잔디 깎이와 제설기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샀는데, 이런 날은 그때 제설기계를 샀던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몇번이고 흐뭇해 하고 있다. 겨울에 많이 써야 서너번이지만, 이런 날은 저 제설기가 없으면 네다섯배의 체력을 소모해야 눈을 치울 수 있다.
제설기는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아 시동을 거는데 오랫동안 줄을 당겼지만 (레버를 on으로 돌린 후, 오른쪽에 달린 줄을 당겨야 시동이 걸리는 시스템이다), 일단 작동을 시작하니 무난하게 눈을 날려주었다. 이웃을 위해 다른 일을 해 주는 것은 없지만, 눈이 많이 내린 날 제설기를 돌릴 때는 우리집 좌우에 있는 이웃의 보도 (sidewalk) 눈은 치워 주는 것이 내가 그나마 이 지역(?)을 위해 하는 일이다.
집 앞에 걸려진 라이트를 정리해서 다시 설치하고, 전기 코드를 꽂았더니 얼마 전에 설치한 장식용 조명에 불이 잘 들어 온다. 눈 속에 서 있는 것이 더 운치 있어 보인다.
집 앞면에 조명이 세개가 걸려 있는데, 그 전구도 초록색과 빨간 색으로 바꿨는데 이 또한 계절에 맞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혹은 우리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조명을 설치한 집이 많다. 작년보다 더 많은 집들이 집을 라이트로 꾸미거나 앞뜰에 조명 기구들을 설치해 놓은 것 같다.
하긴, 이렇게 소소한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겨울을 나는 재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