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판, 나의 라미네이트
어릴 적 한 때, 나는 우리 집이 아주 잘 사는 줄 알았다.
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면 소재지의 "중심가(?)"에 "OO서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고, 가게에 즐비하게 있던 참고서와 학용품 덕에 한번도 학교에 가면서 준비물을 사지 못하거나 공책이나 연필을 부족하게 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책상 주위에는 항상 가게에서 (몰래) 가져온 샤프연필과 연습장, 책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 막내여서 더 그러셨겠지만, 내가 뭔가 사 달라고 부모님께 (주로 어머니께) 조르면 대부분 사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까마득한 시절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컴퓨터가 귀하던 그 "옛날(?)", 내 책상 위에는 인근 도시인 논산에서 사 온 개인용 컴퓨터도 있었고, 과학 상자니 다른 장난감 같은 것도 적지 않은 편이었으니 전혀 불우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우리 집이 "서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좋았다. 뭔가 좀 있어 보이는 것 같고, 만화책이며 다른 잡지 등 내가 보고 싶은 책들도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것이 좋았었다.
하지만, 말이 서점이지 사실 "잡화점"에 가까웠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가게에서 책이 차지하는 부분 보다는 다른 물건들, 예컨데 건전지, 세제, 담배, 염색약 등이 차지하는 곳이 더 넓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서점이라는 한 사업의 규모를 늘리기 보다는 이것 저것 "사업"의 범위를 늘리셨기에 가게에는 정말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그 많은 것 중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벽지와 장판이었다. 가게 한 구석에 둥그렇게 말린 벽지들이 빼곡히 있었고, 다른 한 구석에는 어른이 두 팔을 벌려 감싸 안아야 들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장판이 말려서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집의 가업은 "서점"이 아니라 벽지와 장판이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 가신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데리고 5일 장을 다니시며 벽지, 장판을 파시는 일을 하셨고, 그 일이 꽤 잘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시던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자랐던 가게에 "서점"이란 이름을 달고 장사를 시작하셨지만, 예전 말로 "지물" 분야에 전문이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벽지와 장판을 "짐차"라 불리던 큰 자전거 뒤에 싣고 가까운 동네까지 배달하시는 것을 본 적이 많다. 벽지를 바르시는 일은 직접 하시지 않으셨지만, 구매자가 원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큰 칼과 본드를 들고 가셔서 장판을 깔아 주고 오시는 일은 많았던 것 같다.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는 중리동에 있는 영진로얄 아파트에 전세로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파트의 장판이 낡은 것을 보시고 대전의 거래처에서 장판을 사셔서 직접 깔아주신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도 함께 따라가서 장판 까는 일을 도와드린 적은 없고,지금은 가게마저도 없어졌지만 아버지로서 그렇게 고생하셔서 3남매를 키우시고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는 생각은 항상 안타깝다.
나도 이제 마흔이 넘고, 애들은 조금씩 머리가 커져 원하는 것이 많아 지면서도 제 엄마 제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볼 때면, "나도 어렸을 적에 분명히 저랬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그 철없었었음을 돌아 보는 일이 많아 졌다.
이번 주(3/23-3/27)는 봄방학이다. 방학 전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 첫날 부터 봄방학을 기다렸었다"고 농담했더니 모두들 웃던데, 사실 완전 농담은 아니었다. 얼마나 꿀 같은 방학인데, 이제 다 지나갔다.
그래도 이번 방학은 뭔가 성과가 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 (3/20)부터 시작한 침실 마루 (laminate) 깔기 작업이 큰 착오 없이 마무리 되었다.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주위에서 직접 작업한 분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고 웬만한 작업 방식은 유튜브에 많이 올라 와 있어서 그 동영상들을 보며 공부를 했다.
다행히도 바로 옆집 아저씨는 이런 저런 작업 도구들이 많았는데, 특히 전기톱 (table saw)을 빌려 달라고 하니 선뜻 빌려 주시고, 다른 라미네이트 판을 세로로 자를 수 있는 전기톱도 알아서 빌려 주셔서 이번 작업이 수월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은 나와 아내의 침실 뿐 아니라 애들 방까지 모두 마치는 것이었지만, 역시 초보자는 초보자인지라 문틈과 수랍장 같이 바닥이 복잡한 부분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 방 두개는 여름 프로젝트로 남겼고, 침실과 그 앞의 조그만 홀 부분만 마치는 것으로 이번 봄방학의 "과제"는 마쳤다.
바닥에 그 라미네이트를 깔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가족 먹여 살리시려고 동네방네 다니시며 장판 까시는 일에 거의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보내셨는데, 이제는 내가 큰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던 아버지의 그 나이 때가 되었다. 이런 것이 인생이다 싶기도 하고, 이런 것이 가족이구나 싶기도 하며, 이렇게 부자의 사이가 세대를 거듭할 수록 계속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번 봄 방학은 마루를 깐 가시적인 성과가 있기도 했지만, 한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돌아 보는 비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던 한 주였다.
<원래 깔려 있던 카페트를 모두 뜯어 내었다. 다행 이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구석을 꺼집어 내고 두 손으로 힘주어 잡아 당기니 모두 뜯어져 나온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바닥에 패딩을 깔고 그 위에 라미네이트를 하나씩 깔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업이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어 내가 이 분야에 큰 재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ㅎㅎ>
<하지만 저 위와 같은 문 주위가 관건이었다. 안방을 나오면서 갑자기 구조가 복잡해 지기 시작하는데, 그 라미네이트 판을 전기톱을 이용해 모양에 맞게 잘라 구석구석 잘 집어 넣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첫날에 그렇게 잘 진행되던 작업과는 달리 문을 나오면서 자그만 홀로 나가는 그 몇줄을 까는데 3일을 꼬박 걸렸다.>
<라미네이트 절단을 할때 워낙 많은 먼지, 혹은 톱밥이 나와서 방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기톱은 집 뒤의 데크에 놓았는데, 라미네이트를 절단할 때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일이 작업의 거의 반이라고 할 정도로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다 끝내놓고 그 위에 소위 "니스"까지 발라 놓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문가가 깔았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