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시카고 방문기
또 시작이다. 한동안 (그래봐야 2-3주 되었으려나...) 참 조용하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시 찾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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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 한살 나이가 들면서 느는 것은 겁이요, "엄살"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잠을 자려고 하거나 다른 식으로 휴식을 취했을텐데, 오늘은 오던 길에 있던 월그린스 (Walgreens)에서 꽤 유명한 감기약 중 하나인 이부로펜 한통을 샀다. 증상이 계속되는 한 매 네시간에서 여섯 시간 마다 한 알씩 먹으라고 써 있으니 병든 노인이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듯, 시간 맞춰 두서너알은 더 먹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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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차비를 좀 아끼겠노라 새벽 (1시 15분)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 메가 버스 (Mega Bus)라는, 저렴한 버스로 유명한 것인데 이전에 잡지에서 이름만 들었다가 한번 이용해 보기로 생각하고, 그렇게 이른 시간에 예매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카고 편도 다섯시간을 운전해서 오가는 것이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용도 많이 들기에 생각해 낸 "비책"이었다.
벌써 애들 여권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여권을 만든지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여권에 있는 사진을 보니, 저렇게 애기일 때 왔는데, 이제는 말도 징글징글 안듣는 청소년기에 이르고 있으니...
애들 여권 갱신을 위해서는 본인, 혹은 애들의 경우 부모가 영사권에 직접 방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며칠 남지 않은 기간 중 오늘이 그래도 제일 나을 듯 싶어 (버스비도 제일 쌌고), 그렇게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처음 타는 버스가 아닐까???
이른 시간임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고, 몸은 다소 피곤하지만 편도 13불 (돌아 가는 버스는 11불)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이 정도의 "고통(!)"은 능히 감수해야 할 것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잠을 깊이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뜬 눈으로 이곳에 도착한 것도 아니다. 이곳으로 올라 오는 길에 무슨 천둥 번개와 거센 빗방울이 버스를 마구 때리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평소같으면 궁금해서라도 깼을지 모르는데, 버스 타기 전에 먹은 강한 감기약 효과 때문인지 상관 없이 눈을 감고 선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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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반경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하더니, 일부러 시간을 맞춰서 운전을 했는지 시카고 유니언 스테이션 (Union Station) 앞에 정확히도 도착했다. 완전 비몽 사몽이라 역 안에 빈 자리에 앉아 잠을 좀 자려다가 도저히 불편해서 영사관 근처로 그냥 와 버렸다. 8시.
업무가 9시 반에 시작된다고 했기에, 건물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빈 속에 따뜻한 커피 큰 것 하나를 다 마셨다.
아내가 옷 좀 두툼하게 입고 가라고 하는 것을, 얇은 것 하나만 걸치고 왔더니 밖에서 꽤나 떨고 다녔다. 늙은수록 와이프 말 경청해야 할 것! 몸이 춥기에 거리를 다니는 사람을 둘러 보니, 오... 역시 시카고다. 겨울 외투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오기 전에 일기 예보를 확인한 바로는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았기에 그냥 겁없이 왔는데, 체감 온도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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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찍 온 덕에 업무를 일찍 마칠 수 있었다. 9시 반부터 시작하는데 9시경에 민원실에 들어와서 이것 저것 물어 보고, 왔다 갔다 하니 업무를 보는 직원들은 얼마나 꼴불견으로 생각했을까... 시카고 총영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준비서류 등을 확인하고 챙겨와서, 생각보다 절차가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영사관이 위치한 엔비씨 타워 (NBC Tower) 27층 경치가 정말 장관이었다. 와...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할 맛 나겄다... 라는 생각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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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영사관에는 대학 시절 지도관님으로 계셨던 분이 영사로 와서 근무하고 계셨다. 이곳으로 부임하신 것은 오래 전에 알았었는데, 생각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후배와 대화를 하던 중 다시 기억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 선배님을 만나고 오시지 않을거냐고 가볍게 묻는 후배 질문 덕에 인사드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다가 뵙고 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나를 모르는 한참 선배를 내가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은 "나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여전히 수줍음도 잘 타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 쉽게 대화를 잘 이끌지 못한다. 내게 먼저 다가오는 친구나 지인들을 가깝게 생각하지, 내가 먼저 다가서서 소개하고 인사하며 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업무 처리를 위해 양식을 계속 작성하면서도 "뵐까, 말까?"를 여러번 생각했었다. 내가 뵙지 않아도 내가 이곳에 방문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실 것인데...
거기에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데, 내가 먼저 다가가 소개하면 당황해 하지 않으실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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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를 알지 못하셨지만, 역시 반갑게 대해 주셨다. 길지는 않았지만 근황도 소개해 주시고, 내 근황도 물어 봐 주셨다. 대화를 통해서도 모르는 점을 많이 알게 되는 좋은 점이 있었지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 소개하였다는 점도 내게는 큰 "경험(?)" 이었다.
하긴, 이젠 인연 하나 하나가 중요한, "전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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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굶었기에 영사관에서 나와 좀 걸어서 메이시스 (Macy's) 건물 내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버거와 프라이스를 시켜 먹었다.
배고프니 당연히 맛있었고, 일이 제대로 잘 처리되어 홀가분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사는 일은 분명 번거로운 일이 많다. 그중 제일은 역시 신분에 관한 것이고, 애들 여권을 갱신하러 이곳에 온 것도 그런 점에서 꽤 불편한 것일 수 있다. 요즘 아내와 계속 하는 얘기지만, 이런 경험 하나 하나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외국 생활은 그야말로 불편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이런 경험을 재밌게 생각하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인생사 모두 생각하기에 달렸는데, 그 생각을 억지로라도 긍정의 방향으로 돌려야지 부정으로만 돌려 생각할 이유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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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어제 집에서 영사관 인근에 있는 시카고 공립도서관을 찾아 봤는데 다행 내가 점심 먹은 메이시스 바로 앞에 브랜치 하나가 있었다. 잘 됐다 싶어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저녁 버스시간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둘러 봐도 도서관 표시를 찾을 수가 없다. 블럭을 한바퀴 빙... 돌으려는데 마침 경찰관 세명이 저편에서 걸어 오기에 근처에 도서관이 있냐고 물어 보니, 셋다 처음 듣는다는 표정... 자기네들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봤나?? 하고 고맙다며 다시 길을 돌아 오는데... 웬걸... 관광객 정보센터와 같은 건물을 쓰면서 자그맣게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로비의 한쪽 구석에 있고, 밖에 표시도 크지 않아 모를 수도 있을듯 싶고, 나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공짜로 와이파이도 쓸 수 있으니 이곳에서 몇시간 버티다 가야할터...
아까 길에서 봤던 그 경찰관 중 한명이 무슨 일 때문이지 이곳에 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으며 눈으로 Public Library라 쓰인 사인을 가르치자 모르던 것을 배우게 되었다면서, "thank you!" 한다. 이럴 때는 "You're welcome!" 해 주는 센스!!!
버스 타기까지 다섯시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