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의도치 않은 신분

남궁Namgung 2012. 9. 17. 10:25



카메라를 사용하고 사진을 정리하려고 카메라의 메모리 칩을 꺼냈더니, 다시 유빈이의 "작품'들이 가득 담아져있다. 카메라를 새로 산 후, 며칠동안은 나한테 빌려 달라는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Please, please" 몇번 하는 것에 마음 약한 내가 건네 주기 시작했더니, 이젠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 왔다. 


지난 토요일에는 유빈이를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이곳 상점 Target에 다녀 왔다. 그 친구가 레고 장난감을 좋아 한다고 하여 하나를 샀고, 그 진열대 주위에 재고 정리하는 듯 clearance sale하는 장난감 중에 유빈이가 쓸만한 것이 있어 집어 왔다. 아주 어릴 적에는 자동차나 로봇 같은 것을 갖고 놀지 않고 동물 장난감을 좋아 하기에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크면 다 저렇게 남자 애들 놓는 것처럼 놀게 되나 보다... 


앞뜰 잔디밭 옆에서 장난감 앞에 렌즈를 바짝 대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럴싸하게 나와 보인다. 언제 나가서 저렇게 찍는 줄도 몰랐었는데, 이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 제 부모가 놀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논다. 아니, 오히려 제 부모가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노는 것이지... 








지난 일요일 (9. 16). 이곳 저곳 일을 보면서 돌아 다니다가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처치스 (Church's) 치킨이었다. KFC도 있고, 이런 저런 중국 식당 등에서도 치킨을 팔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입 맛에는 처치스가 제일 맞는 듯 싶어, 가끔 생각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사간다. 다만 내가 지금 사는 집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20분 정도 운전해 와야 하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다른 곳을 들렀다가 지나는 때, 혹은 내 학교에서 마치고 돌아갈 때는 들렀다가 사가는 것도 부담되지 않는다. 


<아빠는 주문한 치킨을 기다리고, 혜빈이는 그 사이에 훌라후프를 연습하고 있다. 

요즘은 훌라후프에 다시 흥미가 붙었는데... 한번 연습하면 끝을 보는 저 성격은 분명 나를 닮지 않았다!>




집에 가려고 보니 날도 흐린데다가, 시간도 꽤 되었다. 그간 몇번 비가 오더니 앞뒤뜰 잔디도 꽤 자라 있었는데, 내일은 야드에서 나오는 나뭇잎, 나뭇가지, 깎은 잔디 등을 가져 가는 날... 잔디를 깎을까 어쩔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유빈이는 뒤 뜰에 자란 버섯이 무섭다며 제발 오늘 잔디를 깎아 달라고 조그고... 


그래, 미루지 말고 오늘 깎자고 다짐하고, 집에 들어가 바로 옷을 갈아 입었다. 애들에게는 먼저 치킨을 먹고 있으라고 말하는, 이렇게 자상한 애비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ㅎㅎ


<뭔가 했을때 제일 표 내기 좋은 것은 before, after 사진을 비교하는 것인데, 

위의 것이 before 사진이고, 아래 것이 after 사진이다. 공교롭게도 사진 상으로는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 이런...>




집에 들어 와 한 시간 정도 부지런히 잔디깎이를 끌고 다니면서 땀을 흘려 앞뒤뜰이 (나의 기준으로는) 깨끗해졌다. 저 정도면 비가 많이 오지 않을 경우 또 2주 정도는 방관해도 무관할 듯 싶다. 그나저나 9월도 중순으로 흐르고 가을의 중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저 잔디보다 더 무서원 낙엽 긁기의 계절이 또 오고 있는 것이다. 


아... 이 가드너 (gardener)라는 신분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