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SL Graduate School Research Fair
많은 일들이, 일단은 시작하기로 "크게" 결정을 해 놓으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도 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귀찮을지 몰라도, 그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으면 미리 "하겠다!"는 결정을 빨리 하던가, 그런 계획을 대내외적으로 공개를 해서, 주위의 압력 때문에 힘들더라도 계속 하게 된다.
몇 주 전부터 과내 박사과정생들에게 석박사 학생 등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서치 발표회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이메일이 뿌려졌었다. 의무적인 것은 아니나, 그래도 학교 내 전 단과대가 참여하는 행사이니, 학과장 교수님은 우리 과에서도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었나 보다.
예전 같으면 수업 따라가기 벅찬 데에다가, 실력도 실력이라서 감히 참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터인데, 이번에는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지금 한 과목 듣는 수업을 위해서 데이터를 계속 "손질(?)"하고 있는데다가, 시간도 다른 때보다는 좀 여유로운 편이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거기에다, 참여를 하면 다른 교수님들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까지 줄 수 있으니 해가 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내심 참여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우리 과내에서 최근 몇년 내에는 참여해 본 학생들이 없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작품"의 질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 수 없는데다, 준비를 하려면 아무래도 남들이 하지 않는 수고를 해야 하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대단한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냥 확... 질러버렸다. 과 담당 교수님에게 나도 참여를 한다고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말고도 세명이 더 참가한다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원래 계획대로, 지금 통계 수업 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에다가 조금 보강을 하고, 거기에 앞뒤 좀 구색에 맞게 자료를 채워 넣었다. 전문가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이 작업을 위해서 꼬박 1주일을 여기에만 매달린 것 같다. 그래도, 처음 예상과 같이 이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데이터를 수집해서, 이것저것 조합해서, 분석하는 과정이, 만약 이 리서치가 아니었다면 수업을 듣고 과제만 제출하는 것에서 끝났을지 모를 것들이다.
어느 정도 분석하는 방향을 잡고 난 후에는, 이 결과물을 어떻게 포스터로 만드느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 해 본적도 없고, 가까이서 본 적도 없기에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구글을 통해서 다른 분야이기는 하더라도 학회나 이런 저런 컨퍼런스를 위해 남이 만들었던 것이 인터넷을 떠 돌아 다니는 것을 쭉 살펴봤다. 그리고, 우리 과에서 작년 샌프란시스코 학회에서 포스터로 발표를 한 친구에게 크기는 어느 정도였고, 어떻게 어디서 만들었으며, 가격은 얼마 정도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내가 만들 초안을 책상 한 구석에서 뒹굴어 다니는 백지에 스케치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통계 프로그램 (SPSS)에 이것저것 집어 넣어서 결과물을 보고, 남는 시간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어떻게 "이쁘게" 배치를 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래서 초안을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다른 포스터에서 본 것 중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모방 내지는 응용을 했고, 가급적이면 밝은 컬러와 이런 저런 물방울로 나의 빈약할 내용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어느 정도 안이 완성된 후, 엊그제에는 FedEx Office에 가서, 정확히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고,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었다. 컬러로 인쇄하는 것과 흑백으로 인쇄하는 것은 비용차이가 아주 많이 났는데, 이왕 하는 것 "다홍치마"로 하자는 생각에 59.99불짜리로 할 것을 마음 먹었다. 시간은 약 이틀 (48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만들 때 페이지 설정을 인쇄하고자 하는 것에 맞춰서 제작을 해야 크게 확대해서 프린트할 때 깨지는 현상이 없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레터지 크기에 작업을 했었으니... 그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아주 오랫동안 몰랐을 것을 알게 되어 고맙기도 한 일이다.
어쨌든, 얘기를 듣고 와서 다시 페이지 설정을 하고, 결과물들을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잘" 배치가 될지 고민해서, 오늘 오후까지 일단 작업을 마쳤다. 간단한 그래프와 간단한 테이블 몇개가 있어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 몇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몇번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시간이 없어 나의 지도교수님께 미리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불안한 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다른 비슷한 과제가 떨어지면 지금 들였던 시간이나 노력은 한참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생겼으니, 이 또한 배움으로 인한 (근거없는???) 자신감일 수 있겠다.
내일 페덱스에서 연락 오면 그 사람들이 인쇄해 놓은 초안을 확인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최종안을 인쇄해서 일요일에 "작품"을 건네 받는다.
월요일 오후가 행사다. 다시 오랜만에 정장 입고, 넥타이 매고, 내 포스터를 당당히(!) 세워 놓고 지나가다 묻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있게(?) 대답할 일만 남았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