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빈이 사는 법

맥가이버의 숙제

남궁Namgung 2011. 3. 17. 21:11

 

유빈이네 학교서 2학년들이 뮤지컬 연습을 한다고 들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한달 전 쯤에는 두장 짜리 종이에, 한쪽은 유빈이 대사, 다른 한쪽은 유빈이가 입어야 할 복장 (costume)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읽어 보니 대충은 알겠는데, 이것을 집에서 만들어 오라는 것인지, 어디서 사서 입히라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쭉.... 미뤄놨다.

 

그러다가 한차례 연기된 뮤지컬의 D-day는 바로 어제 (3월 16일). 전형적인 게으름으로 바로 전날에 복장을 준비하려던 아빠 (즉, 나)는, 학교 음악 선생님께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메세지를 남겼다. 그리고는, 다른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돌아 왔더니, 유빈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께서 복장이 준비되어 있으니 그냥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고 말한다. 아마도, "학교에서 매년 하는 행사이니 여분의 복장이 있나 보다"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했었다.

 

그리고는, 어제 유빈이도 나도 각자 학교에 갔었고, 오후에 수업이 끝나 집으로 오려는데, 아내가 전화를 했다. 유빈이네 뮤지컬은 학교 일과 시간에도 한번의 공연이 있었는데, 유빈이는 복장이 준비 되지 않아, 제가 스스로 학교에서 간단히 만들어서 공연을 했다며 속상한 표현을 한다. 그러면서, 오는 길에 생일파티 관련한 물품들을 파는 가게에 들러 유빈이가 맡은 사자 복장이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한다 (뮤지컬 제목은 "It's a jungle out there").

 

집으로 오는 길에 있어 가끔 밖에서 본 가게인데,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갔지만, 생일파티 관련한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사자 복장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일단은 집으로 가서 상황 파악을 하고 대처를 해야겠다 싶어 얼른 집으로 향했다. 유빈이의 말을 들으니, 대부분의 애들은 미리 준비한, 치타, 코끼리, 사자 등의 복장과 분장을 하고 왔고, 일부 저처럼 가져 오지 못한 애들은 수업 시간에 만들어서 임시로 사용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엊그제 제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때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 들은 듯 하다. 집에서 만들기 어려우면 학교에 와서 만들면 된다고 하신 것을, 학교에 준비가 되어 있다고 오해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어쨌든, 집에 들어 온 시간은 5시가 약간 못되어서 이고, 두번째 공연은 7시인데, 그 시간 동안 뭔가를 만들어 보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유빈이가 말하는 다른 친구들의 복장을 통해 대충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감을 잡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집 바로 앞에 있는 Dollar Tree라는 dollar shop에 가서 준비물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일단, 예전에 학교에서 온 레터에 있는 대로 사자의 목털 (mane)을 만들기 위해 갈색의 포장지를 사고, 유빈이가 라이언은 밀림의 왕이니 왕관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마, 다른 친구들은 왕관을 쓰기도 했었나 보다) 왕관을 만들기 위해 노란색, 초록색 마분지를 두개 골랐다. 꼬리를 만들기 위해 큼직한 비닐 목걸이 같은 것을 샀다. 망토도 하나 사고, 유빈이가 왕이 집고 다니는 지팡이(?)도 갖고 싶다고 하는데, 마침 거기에 긴 대로 된 빗자루가 있어 맨 끝만 자르면 되겠기게 그것도 하나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집으로 다시 돌아 와서, 왕관을 만들고, 날카로운 톱니 모양으로 목에 끼우는 식으로 사자의 목털도 만들었다. 빗자루 끝부분을 톱으로 자르고, 그 봉위에 포장지를 씌운 후, 꼬리로 사용하는 목걸이의 여분이 생기기에 하얀색으로 지팡이의 끝부분을 자익했다. 엄마의 노란색 겨울티를 입히고, 애들이 그림 그릴때 쓰던 물감을 갖고 코를 칠하고, 수염을 그려 넣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유빈이도, 하나 둘씩 "작품"이 만들어 지고, 제가 봐도 좀 그럴싸 한지 뿌듯해 하는 표정도 보이고, 좋아라 한다.

 

 

 

학교에 가 봤더니, 벌써 많은 학부모, 그리고 일부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이시는 분들로 분주하다. 애들 식당으로도 쓰이는 다목적실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2학년만의 행사라, 아마도 2학년의 학부모만 모인 것 같았다.

 

 

유빈이의 대사가 왜 한줄인가 했더니, 애들 전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명이 거의 한문장 정도 되게 돌아가면서 대사를 하도록 하고, 중간 중간에 같은 동물의 그룹끼리, 혹은 다 같이 하는 율동과 노래가 있었다.

 

 

 

끝나고 집에 와서 물어 보니, 친구들 중에 제가 입은 복장을 어디서 샀냐고 묻기에, 가게에서 샀다고 했단다. 아, 이 능력 많은(?) 아빠의 손재주여!

 

사실, 준비하면서 마치 내가 맥가이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달러샵에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어떻게 짧은 시간에 사자를 만들어 내느냐는 과제를 접하고, 그 결과물을 내는 과정이 무척 "창의적인(?)" 과정이 되었다. 결과만 보면 별것 아닌것 같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그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툭닥툭닥 저렇게 만들어 낸 나의 저력(?)이 스스로 뿌듯할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잠시동안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하지는 않고, 오히려 선생님의 전화를 잘못 알아 들은 유빈이만 탓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어쨋든, 이렇게 또 하나의 공연이 끝났다. 다음에 맥가이버에게 주어질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