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그 특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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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시골 동네에는 대한항공 (KAL) 마크와 푸른 빛이 선명하고, 당시만 해도 아주 정교하고 튼튼하게 생겼던 장난감 비행기를 가졌던 친구가 있었다. 그 비행기 장난감은 배터리를 넣으면 자동으로 전진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몸체 옆의 게이트가 열리는 "놀라운(!)" 기능까지 갖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가 당시에 불었던 중동 바람을 타고 사우디로 일을 하러 가셨다가 오시면서 사왔던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나와 비행기와의 인연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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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비행기를 실제로 타 본 것은 대학교 3학년때 운좋게 국제선을 탄 것이 처음이었고, 대학 4학년때는 학교에서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비행기로 다녀왔었다. 두번 모두 체크인을 해 주시는 인솔 교관님들이 계셨기에 나는 그냥 앞의 친구들이 하는대로 쭉... 따라 들어가고 나오는 일만 했었다.
내가 실제로 직접 체크인을 해서 비행기를 탔던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때였다. 휴가 때 "육지"로 가려고 했던 때였을 것인데,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도 공항 외곽 경비를 하는 곳이었기에, 어찌 보면 공항 울타리 안에서 다시 울타리 안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었다.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비행기도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는 것 처럼 출발 시간 10분 내지 15분 전쯤에 가서 티켓을 주고 바로 비행기로 올라 타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시간도 많았음에도 티켓에 적힌 출발 시간에서 약 20분 전 쯤에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하려고 했더니... "비행기가 문을 닫고 출발을 준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는 비행기를 놓쳐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만큼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곳 저곳 많은 공항과 비행기를 이용해 본 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몇번 아슬아슬했던 적을 빼고는) 비행기는 모두 제시간에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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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겠지만, 비행기는 주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이기에 대개 "특별한" 이유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나 싶다. 특히 국제선의 경우,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물론, 도착한 지역에서 장시간 머무르는 경우도 많다. 이민이나, 유학 등이 그렇고, 출장으로 따져도 해외 출장은 국내 출장보다 대부분 그 기간이 길다. 그만큼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도 아주 제각각일 것이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곳 세인트루이스로 공부하러 오시는 분, 혹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시는 분들의 공항 라이드를 몇번 도와준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처음 이 세인트루이스 국제공항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약간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규모는 크지 않다)에 도착해서 컴컴한 밤에 택시를 타고, 종이에 적힌 주소지를 건네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로 가던 그 설레임이 기억나는 경우가 많다. 또, 귀국하시는 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저 분들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 가시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돌아갈 때는 또 어떤 모습과 마음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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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공부나 일을 마치고 귀국하시는 분들을 공항으로 모셔다 드릴 때는 가까웠던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이별의 섭섭함까지 겹쳐져서 아주 묘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다.
<2008년 여름, 시카고로 오기 위해 인천을 떠나 일본 나리따 공항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이때 혜빈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늘도 2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를 하시다가 귀국하시는 분이 가족과 함께 공항으로 가시는 길을 도와드렸다. 사실 도와드렸다고 하기에는 좀 쑥스러울 정도로 공항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래도, 계속 가까이서 지냈고 이런 저런 도움도 많이 받았던 분이 가족과 함께 모두 귀국하시기에 돌아가시는 길은 꼭 내가 모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이 전에도 귀국하시는 분들의 짐을 날라 드린 적이 몇번 있었기에 이전과 비슷한 마음으로 공항에 갔고, 체크인 하시는 짐을 잠시 이쪽 저쪽으로 끄는데 도와드렸다. 그러다가 막상, 이제 안으로 들어가신다며 악수를 청하시는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데... 그 묘한 섭섭함이 밀려 와 잠깐 눈이 습해 지려고 한다... 일전에 교수님 내외분이 일본으로 돌아 가실 때도 뒤돌아 가시는 모습을 보려니 잠깐 먹먹해지려고 하더니, 오늘도 공항 그 한 가운데, 그 새벽부터 부산한 한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서운한 감정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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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생각해 보면,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큰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항은 어떤 중대한 시작이나 마무리의 공간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큰 목표나 계획이 정말 몸으로 와 닿고, 꾀했던 다짐이 실현 (혹은 미실현)된 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공간이 바로 공항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감정 외에도, 다른 이와의 만남이 잠시 혹은 오랫동안 시작되거나 중단되는 특별한 인연의 공간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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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귀국하신 K 선생님과 가족 모두의 건강과 성취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