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월드컵 후기

남궁Namgung 2010. 6. 27. 08:51

 

그 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아내는 지금 7살인 유빈이를 배에 담고 처가에 있었다. 그리고 처가에서 가까운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16강 진출을 위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당시 경찰에서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흥분한 관중들, 소위 훌리건이라 불리는 이들의 돌발 상황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훌리건 감시조"라는 것을 편성했었는데, 나도 그 임무를 맞는 "영광(?)"을 누렸다.

 

월드컵 시작 훨씬 전에 그 "감시조"로 편성된 경찰관들이 교육기관에 모여 이런 저런 교육을 받았다. 주 임무는, 각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각 경기별로 해당 국가에서 온 관중들이 몇명이나 되고, 또 어떻게 이동을 하며, 경기 중에는 돌발 상황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서 통제본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일본과 공동 개최를 하면서, 훌리건으로 유명한 몇몇 유럽 국가들의 경기가 다행 일본에서 열리게 되면서 훌리건에 대한 우려가 많이 줄어 들었고, 또, 일본에서도 훌리건으로 인한 문제는 미리 우려했던 것 만큼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선전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로 인한 거리 질서를 유지하는데 경찰력이 집중되면서, "고맙게도" 훌리건 감시조에 대한 관심이 확... 줄어들게 되었다.

 

아무튼, 그 덕에 우리나라의 전국 경기장 어디든 들어 갈 수 있는 패스를 받았고, 실제 그 "감시조" 역할을 위해서 두 경기를 경기장 내로 들어가 관람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16강을 위한 경기도 그 패스로 무임승차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같이 텔레비젼을 봐야 맞는데, 아내에게는 내 생일선물로 경기를 볼 수 있게 "윤허"해 달라고 부탁했고,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은 후 경기장에 갔었으며, 그날 경기에 대한 스토리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니... 

 

 <당시 경기장 응원석에 있던 모습. 바로 옆에 절친한 Y님과 함께 관람을 했었다. 지금 저 다정한(^^) 어깨동무도 그 분의 손.

경기 내내 다들 앉지 않고 서서 응원하는데, 다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대단히 즐거웠던 기억...>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인들이 미식축구나 야구에 갖는 관심에 비하면 축구는 정말 비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많아 지고 있나 본데, 그래도 축구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행(?),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마이크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고,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통해 경기를 종종 관람하면서, 경기 진행 상황을 속속 나에게 설명해 준다. 요즘에는 매일 아침 만나면 전날과 그날 아침에 펼쳐진 경기에 대한 평가를 얘기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제 금요일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잘 싸워서 8강에 진출하면 만날 수 있겠다면, 그렇게 되면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해 질 것이라는 농을 건넬 정도로 열심히 경기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안타깝게 졌고, 게임이 끝나면 항상 "이때 이렇게 했다면..., " "저때 어떻게 했다면...," "누가 좀더 잘 했더라면..." 하는 식의 가정이 빗발치지만, 사실 큰 의미없는 얘기들이다. 양팀 선수들 모두 저마다의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 했었을 것이고, 혹 부족한 부분들은 감독, 코치, 선수 혹은 다른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서 다음 훈련이나 경기에서 보완을 해야 할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체격크고, 기술 좋은 외국 선수들과 저 정도로 경기를 펼친 것은 잘한 것 아닌가 싶고, 이제 다음에는 더 잘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갖게 된다. 아직도 (언제부터 "아직도" 였던가!) 인지도가 낮은 우리나라의 이름이나 경기력을 이번 기회에 잘 알릴 수 있어서, 외국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면도 있다.

 

특히, 유럽 등 우리보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나 기술, 인프라 등이 훌륭한 외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도 많은 선수들이 좋은 여건에서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 박지성 선수의 뛰는 장면은 얼마나 멋졌던가! 반드시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서 뛰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고, 그 개인이 원래 갖고 있던 기량이 출중했었을지도 모르지만, 수명의 수비수를 헤치고 공격해 나가는 모습이나, 위협적으로 슛을 지르는 모습은, 나 같은 스포츠 문외한이 보더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찬호, 박세리 선수를 좋아한다. 그들의 경기를 많이 봤던 것도 아니고,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의 그 분야 활약이 아주 저조했던 당시, 미국으로 건너와 보여주었던 모습은 그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후로 야구, 골프 분야에서 최고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이 그 두명의 선수와 같이 되려고 노력했고, 실제 지금 LPGA에서 뛰는 골프 선수들 중 많은 선수들은 "세리 키즈"라고 불릴 정도라고 알고 있다. 말하자면, 그 둘은 스포츠 팬들에게 같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주었지만, 그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은 어린 선수들에게는 목표를 더 크고 넓게 가질 수 있는 훌륭한 롤 모델 (role model)이 되었기에, 나는 두 선수들의 그 점을 더 높이 사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의 박지성 선수나 차두리 선수 등 여러 축구선수들의 선전 또한 많은 축구 꿈나무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펠레나 마라도나나 베컴이나, 메시 등 외국 선수들을 바라보고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조건에서 운동하고서도 훌륭한 선수들이 된 그들을 바라보고 꿈을 키우게 할 수 있는 그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이번 월드컵 경기는 다행히 ESPN3.com에서 경기를 보여주는데, 한국에서 차범근 감독과 캐스터가 하는 우리말 해설로 같이 보여주는 옵션이 있어서 아주 실감나게 경기를 봤다. 나에게는 아주 새벽인 6시 반에도 일어나야 했던 적이 있지만, 정말 재밌었고 즐거웠다. 오히려 나보다는 와이프가 더 열성적으로 경기를 분석하고,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의 반응을 전달해 주곤 했었는데, 당분간은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www.espn3.com에서 오늘 경기 장면을 캡쳐한 화면.

이전에 WBC 경기를 다음에서 문자 중계로 봤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볼 수 있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

 

 

아, 이제 앞으로 뭐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