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Namgung 2010. 6. 13. 13:16

 지난 토요일, 아, 어제다.

 

나와 아내는 간단히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애들한테는 버거킹에서 Kids Meal을 하나씩 시켜 줬다. 낮부터 맥도날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버거킹으로 메뉴를 전환한 유빈은 버거킹으로 저녁을 대신한다는 말에 기분이 한층 더 업 되었다.

 

애들이 치킨 너겟과 칩스를 다 먹고, 버거킹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좀 논 후에 집으로 돌아 가려다가 갑자기 아내가 호숫가로 잠시 들렀다가 가자고 한다.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었고, 해는 졌는데도 아직 환해서 바람을 쐬거나 산책을 하자는 얘기인데...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약 10분 정도를 달려 크리브 코어 호숫가로 갔다.

 

낮 동안에 계속 천둥번개와 소낙비 같은 굵은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뜸한 것인지, 눈에는 10명도 채 안되는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거나 낚시질을 하거나 그냥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특별한 일 없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안정되는 느낌이 드는, 편안한 분위기다.

 

엊그제 산 낚시대에 미끼를 엮어 호숫가에 던져 놓고, 야외용 의자에 잠시 앉았는데, 아... 앞에 보이는 빛이 너무 곱고 예뻐 보인다. 전에 숱하게 사진책과 인터넷 사진 사이트에서 보던 그 예쁜 색의 경치들은 저 빛과 비슷한데, 내가 카메라로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던, 그런 경치다.

 

플래시를 터뜨리기에는 너무 가당치도 않은 일이고, 그렇다고 내가 손으로 잡고 그냥 찍기에는 음주로 인한 수전증이 렌즈를 그대로 고정시키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삼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혹시 몰라, 플래시 없이 그냥 저 빛 그대로를 이용하고, 다소 떨리는 손이기는 하지만, 약 5초 정도만 숨을 참기로 하고 셔터를 눌렀다.

 

 

2010년 6월 5일 저녁 8시 반경 크리브 코어 호수 (Creve Coeur Lake).

사진작가 남궁 현. 도구: 2001년 구입한 올림푸스 Camedia c-3020 (ISO가 어쩌니 하는 전문적인 용어는 알 수 없음) 

 

 

오... 그냥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호수와 하늘의 경계가 약간 더 아래 쪽으로 왔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지만, 그래도 10년 가까이 된 나의 올림푸스 디카로 저정도 찍었다는 것은, 나의 촬영 감각이 특출(?)하기 때문이라는 자만감이 들 정도다.

 

 

내가 생각해 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표현이어서, 분명 어디서 읽은 것이 어렴풋 기억나는 것이겠지만, 사진은 빛을 어떻게 해석하는냐의 작업이라고 본 기억이 있다. 빛을 조리개에 얼마나 담고, 그 빛을 얼마나 통제하고, 그 빛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하고, 또는 "악용(?)"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피사체도 달리 찍힌다는 말이다.

 

내게는 너무 철학적인 말이고, 너무나 멀리 있는 표현이어서 감히 그런 것을 체감할 날은 훨씬 멀었지만, 그래도 저 사진 한장은 좀 뿌듯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