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영어로 싸우기

남궁Namgung 2010. 4. 22. 07:04

 

대학 시절, 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위한 투자는 당시로서 (90년대 중반) 꽤나 파격적인 것이으로 생각된다.

 

약 30명 정도의 비교적 작은 클래스를 위해 (주로 미국, 캐나다 출신의) 원어민 강사들을 그 외진 학교로 매주 "모셔" 오곤 했었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그때의 나에게는 아주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에게서 배운다고 뭐 엄청나게 영어 실력이 향상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원어민 앞에서 크게 당황하지 않는 기술이라도 배울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그 이전에는 외국인과 직접 대화를 한 것이 거의 없었는데, 1대 30이라는 교수와 학생 비율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발음을 테이프가 아닌 육성으로 직접 듣는 것은 내게 꽤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자기가 더 좋아하는 과목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영어 회화" 시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며, 혹은 영어를 싫어(증오?)하는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수업시간에도 제복입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좀 신기하면서 열의를 갖던 강사들도 조금씩 실망하거나 지치는 경우가 어쩌다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 2학년, 혹은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영어 회화"를 가르치러 왔던 한 여자 원어민 강사가 있었다. 지금은 당시의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 강사가 자신의 강의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이 못마땅 해서였는지, 뭔가 기분 나쁜 소리를 수업 중에 했다. 그래서 지금이나 그때나 "수업시간에는" 조용한 내가 따지듯이 반박을 했던 적이 있었다.

 

주된 내용은 '당신은 얼마나 이 수업을 위해서 준비하느냐? 그냥 와서 영어로만 얘기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준비도 해오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만 잘못한다고 하느냐?' 이런 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만약 같은 방식으로 한국분이 그랬다면 내가 그렇게 따질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당시에는 "나와 어울리지 않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렇게 주절대었으니 듣는 원어민은 더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당시 몇몇 동기들은 "야, 저 놈은 영어로 싸우네..." 하고 옆에서 격려(!)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운행하는 자동차의 옆문은 스위치나 리모콘으로 자동 개폐가 되는 자동문이다. 그래서 애들을 태우거나 내릴 때 아주 편했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얼마 전부터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수리하기로 미리 예약을 했었고 아침 9시 반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열쇠를 건네면서 얼마나 걸리냐고 했더니 최소한 1시간이라고 한다. 수리하는데 1-2시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했기에 볼 책도 가져갔었고, 새로 고친 3층의 고객휴게실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시간 반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보다 늦게온 다른 사람들이 천천이 물갈이 되기 시작했고, 2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슬슬 내 얼마되지 않는 인내심의 바닥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마침 올라온 직원에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더니, 10분에서 15분 정도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정도 시간을 더 기다렸는데,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어,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 담당했던 직원이 없어 다른 직원에게 물었더니, 지금 서류 작업 (paper work) 중이니 금방 부를 것이라고 하고, 밖을 보니 마침 내 차도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어쨌든 고치기는 고쳤나 보다"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원래 나를 접수했던 직원이 아닌 그 옆자리 직원이 나를 부르기에 가서 그 앞에 앉았다.

 

그런데, 가만 들어 보니, 내 차가 고쳐진 것이 아니었다. '차 컴퓨터의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고치려면 400불 정도, 만약 그래도 되지 않으면 모터를 교환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1,600불 정도가 걸린다. 부품이 없어 주문을 하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뒷 브레이크가 교환시기가 되었는데, 그것도 교환하려면 400불 정도, 앞 타이어도 교환시기가 되었는데, 그것도 교환하려면 400불 정도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즉, 아직 고쳐지지도 않았거니와, 나의 주 목적인 그 차 문에는 관심도 없고, 다른 부품 장사를 해 먹으려는 소리로만 들렸다.

 

순간, (나에 걸맞지 않게!) 열이 확............................................................ 올랐다.

 

"아니, 사람을 두시간 반 정도나 기다리게 해 놓고서 고작 하는 소리가 고쳐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냐.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중간에 한번 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거나, 내가 요구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부터 미리 하고 다른 부분을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돈이 많이 들 것 같으면 다른 차를 한대 더 사고 말겠다." 는 취지로 북받친 나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물론 내 취지가 그랬다는 것이고, 영어로 그 취지가 얼마나 "강하게"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어서 그랬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사람을 그렇게 기다리게 해 놓고서는 장사만 하려고 하는 행태에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어, 그런 식으로 화를 냈다. 그랬더니, 그 사람도 순간 당황되었는지, 불편 (inconvenience)을 끼쳐서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 하면서, 오늘 했던 체크업 (check-up) 비용이 90불 정도 넘는데, 그것은 받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를 진정시키려고 한다. 아니, 그럼 그렇게 해 놓고 돈 받으려 했어? 참 나...

 

그 직원 말로는 원래 그런 체크업에는 비용이 소모된다는데, 그것을 면제 (waive)하겠다는 것이었다. 하도 화가 나서 별로 반갑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고칠 것은 더 생각해 보고 다음에 오겠다는 말만 하고 열쇠를 받아 그냥 돌아 왔다.

 

고치려고 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도 못한데다가, 오랜 만에 "영어로 싸워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이거, 돈은 없지만 그냥 새차를 확 사서 질러 버려... 라는 과격한(?) 생각도 들고, 이것들이 나의 인종을 보고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침에 차를 고치러 갈 때와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상태로 다시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찝찝했다.

 

집에 가서 자초지종 얘기하니, 아내도 내 말에 따르다가 감정을 누그려뜨리려는 말도 건네고, 또 시간이 좀 지나고 학교에 와서 다른 친구들 만나 다른 얘기를 하다 보니 많이 가라앉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은 차를 볼때마다 그 경험이 당분간 생각날 듯 하여 좀 개운치 않으면서, 오래전, 거의 10년도 더 전에 영어로 싸웠던 그 때 생각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