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컨퍼런스
유빈이네 학교 (Ross Elemetary School)은 삼학기제(trimester)로 운영되고 있다. 즉 8월부터 5월말경까지의 1년 학기를 나눠서, 학기가 바뀔때면 짧은 방학도 있고, 무엇보다 학기가 바뀔 즈음해서 학교에서는 학부모와의 컨퍼런스 (conference)를 열면서 학생의 성취도나 다른 학교 생활과 관련된 부분은 교사가 학부모에게 설명해 주시는 시간이 있다. 부모라면 누구나 관심 있는 시간일 것이다. 원래는 오후로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수업 때문에 내일은 어렵다고 레터를 보냈더니, 오늘 낮이 어떻겠냐고 해서 오후 일찍 학교에 다녀왔다.
나 말고 다른 부모도 내일 못올 사정이 있는지, 유빈이네 교실 앞의 넓지 않은 홀에 있는 조그만 책상에 앉아 먼저 상담하고 있어서 밖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담임선생님, 미세스 화이트 (Mr. Fite)를 만났다. 지난 번에도 각 부모마다 약 15분 정도씩 밖에 할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긴 대화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실제 약 20분이 되지 못하게 만나고 온 듯 하다.
선생님이 미리 양식에 기재한 각 분야별 발달 사항을 보면서 설명을 해 주었는데...
제일 처음 나와 있는 분야 (Citizenship)를 설명하면서 내가 좀 표정이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인 자기에게는 아주 예의바르고, 착하다고 하는데 간혹 친구들과 놀면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말을 하신다. 싸우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같은 반 다른 남자들과 놀면서 말 실수를 하거나, 다른 친구에게 상처줄 수 있는 일이 몇번 있었던 듯 하다.
그러면서, 혹 지난 번 학교 다닐 때는 어땠냐고 내게 묻는다. 선생님은 미소지으며,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묻지만, 지난 번 학교 다닐 때의 상황을 물어 볼 정도면 심각한 상황인 듯 싶어, 여러가지 물었는데, 아무래도 유빈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학기때도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약간 산만한 면이 있다는 점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 점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으면서 친구들과도 그렇다고 하니 여간 속상한게 아니다. 더구나, 일례로 든 보리스라는 친구는 얼마전 우리집에 플레이데이트를 한다면서 놀러오기도 했던 친구였고, 유빈이가 항상 베스트 프렌드라고 집에 와서 자랑하는 친구였는데... 아마도 제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좀 더 조심하고 신경쓰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짐작만 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혹시나 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같은 정보는 이메일로든 전화로든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했더니, 그러겠노라 답하신다.
그 이외에 다른 학과 성취도는 괜찮은 것 같다. 모든 부모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전반적으로 잘 하고 있고, 지난 학기처럼 리딩 레벨은 2학년 중간 정도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신다. 아는 것도 많은 것 같다고 하시며, 반에서 또래보다 약간 나은 친구들만 모이는 "모자이크 (MOSAIC)" 프로그램이 있는데, 1주일에 두번 하는 그 프로그램에도 뽑아서 보내고 있다고 말해 주신다.
정말이지 선생님이 주신 성취도의 결과만 봐서는 다른데는 크게 나무랄데가 없는데, 왜 그 사회성이나 책임감, 자제력, 협동심 등은 잘 발달하지 않는지 내 모습을 자꾸 되돌아 보게 된다. 이것도 유전 탓이니 그저 내 피를 받은 탓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집에서 내가 혹은 나와 아내가 생활하는 모습에서 배우거나 우리의 가정 교육에 대한 어떤 반응으로 그런 모습이 나오는지 혼란스러웠다. 크면서 저절로 극복하고 나올 수 있는 면인지, 아니면 덧셈 뺄셈을 가르치듯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번에는 그런 얘기를 듣고 집에와서 유빈이에게 꼬치꼬치 캐 묻고 잘못하는 점을 탓했는데, 그럴 성질의 것도 아닌 듯 했다. 아내와 상의했는데, 아내도 차근히 조금씩 가르치고, 책이나 비디오도 그런 예의나 사교성을 키울 수 있는 것을 찾아 줘야겠다는 제의를 한다. 사리에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문이다. 일부러 가르치지도 않은 그런 점은 어디서 배우는 것인지, 그런 부족한 점은 어떻게 개선시켜야 하는지...
나는 저만한 때가 기억나지 않는데, 나중에 어머니 뵈면 정말 진지하게 여쭤봐야할 문제인듯도 싶다. 나도 정말 저런 모습이었으면, 유전이란 것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