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사는 법

프로젝트팀 회합 스토리

남궁Namgung 2010. 1. 19. 09:38

지난 연말, 지금 프로젝트를 이끄는 교수님과 다른 젊은 교수님, 포닥, 박사과정생 등과 한해 쫑파티를 하던 중, 교수님이 이전에는 프로젝트 팀을 당신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다 집으로 부르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 초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지난 주 금요일에 교수님이 프로젝트 팀 전부에게 메일을 보내셔서 휴일인 오늘 자기 집으로 초대하겠다면서 올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 달라고 하신다.

 

 

사실, 원래 수줍음이 많은데다가(??) 온통 영어 잘하는 애들 속에 끼어서 함께 낄낄 거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과 전체적으로 모이는 모임에는 잘 가지 않았었는데, 이 프로젝트 팀의 성격은 그와는 많이 달라서 웬만하면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은 배우자나, 애인, 가족들을 데리고 와도 좋다고 해서 나는 유빈이를 데리고 갈 계획이라고 이메일 답장을 보내드렸다. 이곳에서 한 시간정도나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신데, 그날 오후에 찾아 오는 길을 다시 보내주셨다.

 

오늘 아침.

 

처음 교수님 댁에 가는 날이라고 하니 아내가 더 바빠졌다. 뭐라도 사서 가야 된다는 예의바른 조언이었고, 그에 따르는 것이 옳을 듯 싶어 가까운 마트에 가서 아주 비싸지 않은 꽃바구니를 샀다. 그리고, 일전 대화 중에 그 교수님 생신이 이번 달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한국에서 출국 당시 가져왔던 우리나라 전통 기념품 중에서 좀 괜찮은 것을 골랐다. 혹시, 당신 생신이라서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밥 한끼 먹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이렇게 준비를 하면서도 내내 기분이 편하지는 않았다. 다른 젊은 애들을 그간 보아온 바로는 이런 날이라고 해서 뭔가를 들고 올 것 같지 않았고, 그렇다면 나만 괜히 표 나게 하는 것 같은 부담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런 선물 같은 것을 잘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어쨌든, 나보다 몇개월 오래 더 산 아내의 조언에 따라 꽃바구니와 조그만 선물을 하나 들고 유빈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교수님은 아주 시골길이라 찾기 어려우면 전화하라는 내용까지 이메일에 포함시키셨었는데, 다행 내 내비게이션은 그 주소를 알아 채고 안내했다.

 

한 시간여를 북서쪽으로 달리니 가는 중에 정말 들과 밭도 많고,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났다. 교수님 말씀대로 집은 그야 말로, 예전 영화에서나 볼 듯한 전원주택이었고, 다른 집과는 한참 떨어진 그 집의 앞뜰 수백평, 옆 "초원" 수백평이 있는데다, 말을 네 마리나 키우고 계셨다. 두 양반이 심심하고, 때론 힘들수도 있게 이렇게 사실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프로젝트 팀에서는 한명 남자 박사과정생만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했고, 거의 모두 배우자나 애인을 데리고 왔다. 간단하게 준비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맥주를 홀짝 거리면서 그저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지하에서 포켓볼을 치기도 하고, 밖에서 잠시 바람도 쐬며서 오후를 보냈다. 유빈이는 그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네마리랑 나름대로 지루하지 않게 보내고...

 

예전같지 않게 그래도 계속 얼굴 보는 사이고 해서 이런 사적인 모임이 한번 두번 할 수록 참여하는데 부담감은 덜하지만, 그래도 계속 영어와 얘네들 대화에 묻혀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좀 피곤한 듯...) 그래도 서로 조금씩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개인사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친해지는 것이니, 이런 모임이 꽤 유익하다. 그리고, 오늘 같이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내가 언제 그런 집을 구경할 수 있었겠나...

 

예상했던 대로 다른 애들은 모두 빈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온 것을 보면서, 얘들은 내가 좀 오버한다고 생각하겠다라고 짐작도 해 봤다. (하지만, 아내말대로 내가 너희들보다 몇년을 더 살았는데...) 교수님과 사모님은 선물과 꽃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특히 자개로 만든 연필통을 무척 신기해 하셔서 선물로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일찌감치 이렇게 "인사"를 잘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으려나??? ^^)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제 저녁마다 반드시 읽고, 쓰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겠는데, 그래도 다른 때와는 달리 약간 부담이 덜 한 것을 보니, 내가 아주 실력이 늘었(다고 착각하)거나, 배짱만 늘었거나 둘 중 하나이겠다.

 

새 학기, 아프지 않고, 쳐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많은 것 배울 수 있는 "건설적인" 한 학기가 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