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
사투리를 잘 쓰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내 어머니가 쓰시는 말을 나도 이제 자주 쓰게 된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나 표현이 사투리인지, 아니면 국어사전에 실린 표준어인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사전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정의가 내려졌다. 사투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
5일 장이 열리던 고향에는 "대목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명절 바로 직전의 장날을 보통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장보다 보통 규모도 컸다. 어렸을때 어머니 손 잡고 장날에 가 보면 물건이나 선물을 사시기 위해서, 그리고 명절 음식 준비를 위해서 장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다른 시골 장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갈수록 그 규모가 작아지고, 다른 큰 마트 등에 밀려 지금은 그 장날이 열리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어릴 적에는 그런 "대목" 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북적북적함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대목"이, 여기로 따지면 바로 지금 시기인듯 하다.
유빈이네 반 친구 안드레가 반 친구 몇몇을 실내 놀이터에 초대해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세인트찰스로 데려다 주었고, 남는 시간에 그 바로 주위에 있던 보더스 (Borders)라는 서점에 잠시 들렀다. 큰 쇼핑몰 안에 그 서점이 있었는데, 와... 평소 주말에도 사람이 많았기는 했겠지만, 오늘은 바로 그 "대목장"의 분위기가 난다.
서점에서도 책을 고르고 계산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 책을 사더라도 20-30분 정도는 기달려야 할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사려던 책도 없었고 해서 그냥 나오는데, "야... 정말 여기는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엊그제는 지금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돕고 있는 사무실 사람들이 한 펍 (pub)에 모여 다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미리 자기 집으로 간 "믹"이란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조교수 1명, 포닥 1명, 박사과정은 나 포함해서 4명 이렇게 모두 7명이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거의 대부분이 고향으로 간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한국에 가지 않냐고 조교수가 묻는다. 가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데이나"라는 친구가 "문화적인 이유 (cultural thing)" 아니냐고 끼어든다. 즉,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가 자기네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와는 차이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당연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재정적인 이유 (financial thing)"이라고 "재치있게(?)" 받아 쳤다.
모두 웃고 넘겼지만, 사실 우리의 크리스마스와 얘네들의 크리스마스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단, 예수의 탄생이라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상업화 되어 그 본질이 크게 잊혀졌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 얘네들의 크리스마스가 주로 가족들이 모여 즐기는 날임에 비해, 우리나라는 주로 친구들과 즐기는, 그저 또다른 휴일의 하나로 생각되는 경향이 많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같은 사무실을 쓰는 "마이크"가 라스베이거스로 제 여자친구와 함께 부모님을 만나러 가고, 지도교수님이 아들 딸이 있는 도시를 방문 하는 것 같이 가족들이 회합하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이고, 그런 점에서 내가 한국으로 가지 않(거나 못하)는 이유는 "재정적이 이유"도 크겠지만, "문화적인 이유"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암튼, 그래서 우리 사무실도 다음주와 그 다음주까지 긴 휴가에 들어간다. 애들과 시간 좀 보내고, 평소 읽고 싶던 것도 책도 좀 읽고, 보고 싶던 드라마와 영화도 좀 보고 하면서, 말 그대로 "재충전" 할 계획이다.
벌써 2009년이 거의 지났다.
나의 1년과 지난 10년도 되새겨 보는 시간도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