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의 진주?
정확치는 않은데, 대학 1학년 혹은 2학년 때 겨울방학 혹은 여름방학을 주는 날이 아니었나 싶다. 한달여 정도 되는 방학을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학기 혹은 학년을 맞이해서 방학 주는 날에는 쓰던 책이며 다른 여러가지 쓰레기 들이 기숙사에서 많이 배출되곤 했었다.
그때 집으로 갈 채비를 다 하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려는데 갑자기 쓰레기통 맨 위에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그 영어 원서가 눈에 확... 들어 오기에 그 책을 쓰레기 통에서 꺼내 봤는데 다행 원래 책 주인을 잘 만난 덕(!)인지 상태가 아주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깨끗했고, 쓰레기 통에서도 다른 배출물을 닿지 않아서 완전 새 책 같았다.
아마도 그 책에 관심이 없던 선배 중의 한명이 버린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누가 주인이었든 쓰레기 통에 버렸으니 소유권까지 완전 포기된 것으로 생각하고 집에 가져가 가끔 보고, 개학할 때도 다시 학교로 들어와 책을 보곤 했었다. 문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참고 도서였고, 영국 영어와 미국영어를 함께 설명하고 있는, 영국에서 발간된 책자였다.
그리고, 그 책을 획득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책이 아주 유명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마이클 스완 (Michael Swan)이라는 분이 지은 "Practical English Usage"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바른 영어를 쓰기 위한 참고 도서로 영미권에서는 널리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나도 모든 책을 소중히 하지는 않는 편이고, 나의 취향과 관심 사항에 맞게 좋아하는 책만을 소중히 하는 "편애"가 있을 것이다. 휴지통에 그 책을 버린 선배에게는 소중하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 책은 다행히 나에게는 아주 좋은 책으로 받아들여지는 책이었기에 그 뒤로 오래오래 수년 동안 내 책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가 한두번 훑어 보고 버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학대"한 책들 중에는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대우를 받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 이 곳의 "굿윌 (Goodwill)"이라는 중고물품 판매점에 가곤 한다. 굳이 새것을 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끔가다 들러서 이것저것 골라 오는데, 당연히 새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비영리 기관으로서 일반인들로부터 옷이나 가구 등을 기증 받아 되파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파는 물건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 이곳에서 파는 것들이 더 싸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곳의 책 코너에서 주로 기웃거리다가 오는 편인데, 어쩌다가 꽤 괜찮은 책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페이퍼 백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70센트 정도 하니 우리 돈으로 천원도 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사오는 책을 모두 다 읽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리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장에서 예전부터 들어 본 유명한 책을 만나면 예전 학교 휴지통에서 좋은 책을 골랐던 그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