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St.Louis) 정착기

원한의 공동묘지, 시네마 천국, 그리고 Ice Age 3

남궁Namgung 2009. 7. 3. 01:10

어릴 적, 고향이던 그 시골에서 여름이면 가끔 5일장이 열리던 시장 한 가운데에 극장이 마련되곤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시장 한 복판에 망루 비슷한 시설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영사기가 설치되던 것이었고, 널찍한 시장 한 복판을 높다란 천으로 둘러 싸서 야외 극장을 만든 것이었다. 여름에만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운 여름철, 저녁이 되면 커다란 확성기를 실은 차가 동네마다 다니면서 그날 저녁에 영화를 상영한다는 방송을 하고 다녔는데, 얼마나 다양한 영화를 상영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본 것은 "원한의 공동묘지"라는 공포영화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 때였던가... 어머니와 같이 보러 갔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보고 와서는 무서워서 부모님이 주무시던 방에서 같이 자자고 졸랐었다.

 

 

이 "야외 영화관"의 묘미 중 하나는 "무료 입장 통로"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VIP나 미리 돈을 낸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고, 극장 주위를 둘러싼 천막과 천막 사이가 좀 벌어졌거나, 다른 식으로 몰래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간혹 있었는데, 일명 "개구멍"이라고 불렸었다. (나는 이용해 본 적은 없다.)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30분 정도 달려 읍내로 나가야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그 때, 동네에서 그런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알게 된 것은 한참 이 후였다.

 

그런 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친구들과 꽤 자주 읍내 "금성극장"에 가서 이 영화, 저 영화 많이 봤었고, 특히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었다. 그 영화 내용 중에도 주민들이 모두 극장에 모여 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 장면도 있고, 건물 벽을 스크린 대용으로 해서 영화를 보는 장면도 있었는데, 내 어릴적 환경과 비슷한 면이 있어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아직도, 엔리요 모리코네의 그 영화 음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다.)

 

지금도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소위 말하는 "문화생활"을 나서서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것 보다 "열심히" 하는 것은 영화 감상이다. 특별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감상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내 게으른 체질에 맞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찐한" 감동을 받은 적이 꽤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기 때문에, 극장은 내가 돈 내고 일부러 찾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의 그 꼬마가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고 꿈을 키웠듯이 내 아이들도 거실에 있는 조그만 텔레비젼이 아니라, 커다란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들과 웅장한 음악들에서 나름대로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어제는, 어제 날짜로 개봉한 "Ice Age 3: Dawn of Dinosaur"를 보고 왔다. 지난 번 "UP"이라는 영화를 3D로 보고 실망한 경험이 있지만, 이 영화는 좀 낫겠지 하는 기대로 집 가까이 있는 "갤러리아 6" 극장에 가족 모두가 나들이 했다. 오후 다섯시지만 "마티니 (martinee)"라 해서 정상 가격보다 좀 싼 가격 (8.5달러)을 받았고, 혜빈이는 세살이라고 했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어릿광대가 쓰는 테 두꺼운 안경과 비슷하게 생긴 플라스틱 안경을 쓰고 보면 정말 3D라는 것이 실감나고, 더구나 이 영화는 스트레스가 적게 영어 대사도 적다! 애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족 영화로 생각되고, 어른이 보더라도 (큰 폭소가 터지지는 않지만) 계속 미소지을 수 있게 재미가 이어진다.

 

 

 

혜빈이가 아직 영화 보기에는 어려서 그런지 잘 집중하지 못했지만, 유빈이, 그리고 같이 갔던 유빈이 친구 지원이는 깔깔 거리며 꽤 재밌게 보는 듯 하여 뿌듯했다. 영화를 본 후에는 항상 맥도널드에서 파는 해피밀을 먹고, 거기에 끼워주는 장난감까지 만지작 거려야 우리 "문화생활코스"가 마무리 된다. 별 네개.

 

다음 번엔 어떤 재밌는 영화를 보러 갈까...